참고로 외곽에 있는 역은 광주역이 아닌 광주송정역을 말하는거란다.

요즘이야 전라도가 강원도 다음으로 지역인구가 적지만 1920년대만 해도 수도권보다 더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단다. 인구가 많다는건 그만한 배후수요가 있다는거고 상권집결지임을 뜻하는데 약삭빠른 쪽본이 모를리가 없겠지?

근데 일제가 호남선 철로를 놓겠다고하자 봉건사상에 빠진 전라도의 유생들은 5.18마냥 폭동을 일으켰어

철로 깐다고 알리기만 했더니 갑자기 고을 관아가 털리고 횃불들고 불지르는 방화에다가 양반들은 상투를 자르고 심지어는 목숨을 끊기까지했지.. 요즘같으면 안놔준다고 터널폭파협박도 하는데 목숨을 끊을정도라니까 전라도새끼들의 수준을 알만하지?

아무튼 여론이 너무 안좋아지자 결국 호남선은 당초 전주와 광주에서 한참 벗어난 이리와 송정리를 지나게 되는데, 이리는 원래 익산이 아니고 송정리도 광주에 속한 지역이 아니었어. 그러니 외곽이 될 수밖에 없던 셈이지


결국 그 총칼정치에 힘만 앞세운 일제도 어쩌지못한게 호남선 철도인데 안놔주겠다가 아니라 오히려 놓아주겠다고 한건데 그렇게 피꺼솟하면서 반대해놓고서 이제와서 광주착발이 어쩌니, 북구 주민들이 어쩌니, 시내 접근성이 떨어지니.. 이러는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지.

놓으면 놓는다고 지랄, 안놓으면 안놓는다고 지랄..


그나마 깨어있던 젊은 학생들은 철도라는 신문물의 이점을 깨달아서 철도를 요구했고 결국 익산~전주는 좁은 협궤로나마 깔리게 되었지.

지금 기차역 승객수 3위가 어디지? 1위는 단연 서울이고 2위가 동대구 3위가 수원인가? 1920년의 승객수 3위역이 익산, 5위가 송정리라는 것만봐도 당시 호남새끼들이 얼마나 철도를 많이 이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