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충청과 호남의 의견을 절충해서 오송 분기로 정한 듯한데

호남에서는 천안아산 분기를 원했고 당시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도 이뤄지던 시점이니 오숭 분기 결정이 청사모 핌피 때문이라고만 단정짓기도 힘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