훃들 안녕하세요! 일본에서 공부중인 찌질이 푸딩입니다. 얼마전에 책을 보다가 철갤에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글이 있어서 번역해서 올려 봅니다. 고수 훃들은 아마 다 잘 아시겠지만.. 아직 일어 공부중인 관계라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양해해 주시고요. 알바님 이거 짜르시면 ㅠㅜ 원본은 학연출판사 전후사건사戰後事件史입니다. 짤방은 시모야마 총재 가족사진. 맨 오른쪽이 시모야마 총재 모습을 감춘 총재 국철노동자의 대량해고를 둘러싸고 노사가 격렬히 대립하던 고비의 시기에 국철총재가 수수께끼의 죽음을 맞았다. 전일본이 크게 흔들렸다. 쇼와 24년 (1949년) 7월 5일 아침 8시를 지난 시각, 국철총재 시모야마 사다노리(下山正則,48세)는 언제나처럼 마중차 나온 차로 다이토구 카미이케가미의 자택을 나섰다. 도중, 미츠비시은행 본점에 들린후, 니혼바시의 미츠코시앞에서 차를 멈춰 운전수에게 5분정도 기다릴것을 지시하고 백화점 안으로 사라졌다. 운전수가 아무리 기다려도 시모야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카가야마 유키오 부총재는 총재가 출근하지 않은것을 경찰에 연락했다. 전날, 국철은 3만7천명의 제1차 해고를 통보했기에, 시모야마는 GHQ (연합군최고사령관총사령부)에 갈 예정이었다. 경찰은 온 힘을 다해 수사를 시작했지만, 어떠한 단서도 없었다. 하루가 지난 7월 6일 오전 0시 25분, 우에노발 마츠도행 최종전차의 운전사로부터 아야세역의 조역(助役 역장을 보좌하는 일이라네요;) 에게 역사체(轢死 차에 깔려 죽음-_-)같은것이 있다는 통보가 있었다. 때마침 가랑비가 점점 본격적인 비로 되어 있었다. 역무원이 황급히 뛰어와서, 몸통이나 오른손목등을 발견했다.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소지품으로 시모야마의 사체임이 판명되었다. 자살이라면 대량의 피가 흐르고, 사후역단(轢斷 깔려서 잘림-_-)이라면 심장이 정지해 있기때문에 출혈은 적다. 격렬한 비가 피를 씻어 내려 출혈량의 확정은 불가능했고, 수사는 난항을 거듭했다. 당초에는 타살설이 유력했다. 동경대법의학교실은 해부결과, 사후역단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정부관계자는 정치적의혹도 있어 타살설을 강하게 시사했다. 마스다 카네시치 관방장관은 '폭력이 일본을 그르치고 있는것에 대해, 정부는 엄연한 태도로 국민의 신탁에 답하겠다'고 말했고, 카가야마 국철부총재도 '타살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대량인원정리의 고뇌 동서냉전이 격화되던 시기, 미국의 점력정책은 일본을 경제적으로 안정시켜, 공산주의의 침투에 대한 방벽으로 하는 방향으로 크게 전환하고 있었다. GHQ는 일본정부에 '경제9원칙'을 내밀어 인플레 퇴치로 몰아가고 있었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은행가, '닷지'가 'GHQ경제재정 최고고문'으로서 파견되어 공무원의 대량감원을 포함한 초균형예산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도했다. 특히 국철은 전쟁이 끝나 복귀한 인원에, 만주철도로부터의 인원도 포함해, 전쟁전의 3배인 60만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GHQ는 7월중으로 9만5000명을 절리할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안의 제1차 정리분이 사건의 전날 통고되었던 것이다. 국철노조는 '최악의 경우 파업을 포함한 실력행사'로 대항하는 방침을 정했다. 조합내부는 합법투쟁의 번위안에서 싸우고자 하는 사회당계와, '지역인민투쟁'을 포함해 요시다내각 타도를 외치는 공산당계로의 분열기미였으나, '9월혁명설'이 유포되는등, 답답한 공기가 짓누르고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자살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보도 늘어갔다. 시모야마는 기술현장(전문) 출신으로, 현장의 직원들과의 강한 일체감을 갖고 있었다. 해고 결단을 잘 내리지 못해 GHQ의 담당자에게 질책당한 일도 있다고 한다. 해고의 결정자로서 깊은 고뇌가 있었음은 틀림없으리라. 시모야마 부인은 '요 근래 피곤한것 같았고, 잠을 자지못해 수면제를 먹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실종전날 아쿠타가와 철도공안국장을 방문했던때의 시모야마가 극도로 혼란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차는 필요없다'고 말하면서, 아쿠타가와가 남긴 차를 마시거나, 아이스크림을 무릎에 똑똑 흘리는등... 또 7월 5일의 오후 현장 근처의 여관에 복장이나 인상이 시모야마와 닮은 인물이 나타난것이 드러났다. 여관의 여주인에 따르면, 그 남자는 숙박부의 기입을 '봐 주게'라고 거절한뒤 3시간정도 쉬었다고 했다. 이 주변에서 시모야마같은 사람을 봤다고 하는 목격자가 열 한명이나 나타났다. 시모야마가 죽을 장소를 찾아 이 부근을 5시간 가까이 왔다갔다한것을 짐작하게 하는것들 이었다. 한편, 해부결과이외에 타설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같은것들도 나왔다. 바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팬티에는 겨기름이 뭍어 있었다. 시모야마는 다른 장소에서 전라의 상태로 되어, 살해당한 끝에 선로에 옮겨졌다는 추리가 가능했다. 현장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공장의 오두막에서 겨기름이 발견되어, 혈흔이나 안경의 파편도 발견됐다는 정보도 있었다. 타살설, 자살설의 대립 검찰과 경시청수사 2과는 타살설, 수사1과는 자살설로 수사진 자체가 대립했다. 신문도 아사히, 요미우리가 타살설, 마이니치가 자살설로 격렬한 보도전쟁을 전개했다. 게다가 수사에 이런저런 정부의 압력이 내려오는 기미가 있었다. 검찰은 도(동경도)내의 빈민가에 사는 깡패집단에 유력한 용의자가 있다고 보아 쫓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담당검사가 지방으로 전근되었다고 한다-_- 경시청의 수사본부는 자살의 결론을 내고, 발표하는 계획으로 되어있었다. 배후의 점령군의 압력을 느꼈다고 한다. 점부와 점령군은 이 사건을 타살도 자살도 아닌 미궁의 사건인채로 두는 편이 좋았다. 뭔가 사정이나 의혹이 있었던것은 아닐까. 경시청 수사1과 주체의 시모야마사건 특별본부는 연말에 해산했다. 지검과 수사2과에 의한 '타살'선상의 수사는 다음해 여름까지 세밀하게 계속되었으나, 수사관계자는 '용의를 완전히 잡지못하고 수사가 끝났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타설설에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고, 상황증거는 우울증이 심해진 끝에 자살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사본보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부르는 결과가 되었다. 마츠모토 세이쵸의 '일본의 검은 안개'를 필두로, 이 사건을 토대로 한 추리물이 범람했다. 결국, 시모야마의 죽음이 국철노조, 특히 좌파그룹의 기세를 약화시킨것을 틀림없다. 국민의 미스테리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철의 제1차 정리는 조용히 진행되었던 것이다. 아 옮겨놓고 보니 정말 번역 뭐 같네요-_-;;; 암흐튼 긴 글 읽으신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반응 좋으면 다른 국철 관련 사고도 올려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