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착공하여 1927년 아사쿠사 ↔ 우에노 구간의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으며, 이것은 일본 최초만이 아닌 아시아 최초의 지하철이다. 이 노선을 처음 개업한 것은 오쿠라 재벌을 등 뒤에 두고 하야카와 노리츠구가 설립한 도쿄 지하철도라는 회사였는데, 여섯 차례 연장으로 우에노에서 신바시까지 이르는 노선이 되었다. 참조로 만세이바시역도 이 연장공사 중의 역이었다. 이후 도쿄 고속철도에서 1935년에 첫 개통, 이후 1939년 시부야 ↔ 신바시까지 확장한 지하철 노선과 직결운행을 하게 되어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사실 도쿄 지하철도와 도쿄 고속철도의 직결운행은 무마될 뻔한 상황이 있었는데, 1935년 직결운행 협정을 해 놓고서 1937년 케이큐 전철과 합작회사를 설립, 케이큐와의 직결운행을 계획하고 이 회사에 신바시 ↔ 시나가와 간의 미성선을 양도하기까지 한 것. 당연히 도쿄 고속철도와의 직결 계획은 파토날 상황이었다. 그리고 도쿄 고속철도의 경영권을 쥔 사람이 다름 아닌 도쿄 급행전철의 실질적인 창립자이자, 무자비한 사업 확장으로 악명 높던 '강도' 고토 케이타였다. 도쿄 고속철도 노선의 기점이 시부야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닌 셈. 1939년, 고토가 케이큐와 도쿄 지하철도의 주식을 매점하기 시작, 경영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이 싸움은 1년이 넘게 지속되어 결국 1940년에야 철도부의 중재로 하야카와가 은퇴하고 도쿄 지하철도의 경영권이 도쿄 고속철도에 넘어가는 대신 고토가 도쿄 지하철의 임원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근데 이 직후, 철도를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국유화하려던 철도의 의도가 끼어들어가는 바람에 1941년 도쿄 메트로의 전신이 되는 제도고속도교통영단에 두 회사가 통째로 넘어가게 되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철도성이었고, 도쿄 고속철도의 주식 대신 전후 인플레이션으로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영단의 채권만 떠안게 된 고토나, 반생을 바친 도쿄 지하철도를 통째로 뜯기고 고향으로 내려가 곧 사망한 하야카와나 모두 상처만 남은 싸움이 되어버렸다. 근데 솔직히 어느 쪽이던 불쌍하단 생각은 안 든다...
철도사 같은 거 알아보는 걸 좋아해서 위키질도 그런 쪽으로 하곤 하는데, 긴자선 문서 손 대다가 재밌는 이야기가 있길래 여기에도 가져와 봄. 사업은 서로 통수치면서 해야 제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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