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고속철도 관련해서 조금 찾아보신 분들이나, 지하철 신호체계 관련해서 ATC나 TVM430 같은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 보셨을게요. 각각 신칸센과 국내 지하철, 그리고 TGV 및 KTX의 신호체계 이름이오. 열차가 운행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허용 속도를 지정해 주고, 필요시 제동을 체결하도록 하는 장치들로, 철도 운행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중대한 신호 및 보안 장치라 할 수 있소.
독일의 ICE 역시도 고유의 신호 시스템을 가지고 있소. LZB(linienförmige Zugbeeinflussung)라는 물건이오. 독일어 표현이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긴 한데, 뜻 풀이를 하면 Linear Train Control 이라는, 선형 철도차량 제어 정도의 의미가 되오. 이는 ATC나 TVM300/430과 유사한 시스템으로, 열차가 어느 정도 속도로 다녀도 되는지, 또 정지거리는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는 장치 되겠소.
독일의 철도 신호는 ATP(Automatic Train Protection) 계열의 신호체계 부터 그 운용 방식이 달랐소. 완목신호기 시절에도 우리나라나 일본, 미국 등에서 쓰는 판자 모양의 것과 다르게, 둥그런 원판이 달린 적백의 얼룩무늬 신호기를 썼는데, 색등 신호기에 이르러서는 정말로 많은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소. 우선, 색등의 배열이 우리와 다르게 4각형을 취하오. 2열식으로 등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2x2 또는 2x4와 같은 인식 면에서 그리 좋지 않을 듯한 형태를 취한다오. 여기에 또 뜨악한 것은, 색등의 신호 표시에 on, off 이외에 점멸 신호라는 것이 있다는 점이오. 대만이나 중국 철도(이 둘은 또 신호기가 약간 다르오)에도 이 점멸 신호가 있긴 한데, 우리나 일본, 미국 처럼 심플한 신호를 가진 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좀 어려운 감이 있소. 여담이지만, 독일에서는 동독은 러시아계 ATP계 신호를 썼다는데, 이게 또 독일제 신호와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던가.-_-
이런 ATP 베이스의 신호체계에서, 독일의 철도는 최고 160km/h 까지 운행을 허용하였다고 하오. 이러한 최고속도 하에서, 신호기 간 거리, 즉, 열차 1대가 점유하는 폐색 거리는 1km가 주어졌소. 이 1km라는 숫자는 고속의 열차가 비상제동을 했을 때 확실히 멈출 수 있는 그런 거리를 의미하오. 이 거리가 짧다면 밀도가 올라가지만, 대신 열차가 멈추지 못하면 추돌사고가 나기 때문에 저 기준은 특별한 선구들(S-bahn 같은 중저속 통근노선들)에 대해서만 완화를 하던가 그렇소.
그러나, 고속화가 시작되면서 저 폐색거리는 매우 불충분하게 되었소. KTX만 해도 300km/h에서 비상제동인가 상용만제동을 하면 3.3km를 미끌어지오. 이 말은, 전통적인 ATP신호 하에서는 최소 폐색 거리가 4~5km 정도씩 벌어져야 한다는 이야기 되겠소. 실제 열차는 수 개의 폐색을 떨어져서 달리는 고로, 이래서는 밀도도 맞추기 어려울 뿐더러, 운행속도도 담보하기 어렵소. 거기다가, 고속주행시에는 색등 신호를 보고 반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만큼, 운행의 안정성 확보가 매우 어려워지게 되었소. 그래서 독일은 200km/h 운전을 실시하기 위해 LZB라는 신호 시스템을 만든 것이오.
이 시스템은 궤도 회로(TVM430)나 별도의 특수 유도선(ATC)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궤도면에 2가닥의 유도용 선을 설치하는 방식을 취하오. 위의 짤방이 그 사진이오. 위 사진에서는 1개의 선만 보이는데, 다른 한 가닥의 선은 궤도쪽에 붙여서 부설을 해 둔 것이오. 이 유도선은 100m 단위로 상호 교차하도록 하고 있고, 2.5km였던가 10km 단위로 블럭을 잡아 제어 컴퓨터에 연결을 하던가 그렇소. 이 컴퓨터는 해당 노선의 열차와 유도선을 통해 계속해서 통신을 유지하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오.
여기에, 차량에는 아래 짤방과 같은 차상 장치가 설치되어 이 정보를 표시하오. 짤방의 왼쪽은 열차의 가감속도를 표시하는 장치고, 가운데의 막대는 정지위치를 표시하는 장치로, 앞 차와의 거리에 따라 숫자가 가변하오. 4km 밖에 정지점이 위치하는 경우 위의 숫자 표시기에 거리가 표시된다고 하오. 오른쪽은 속도계 되겠소. 계기의 둘레에는 제한 속도를 표시하는 장치가, 아래에는 목표 속도가 표시되오. ATC와 큰 차이는 없지만, 거리 표시가 좀 독특한 부분이라 할 수 있소.
이 LZB신호는 1963년에 테스팅이 종료되어, 1965년에 뮌헨-아우크스부르크 간의 노선에 시범적으로 설치되었다고 하오. 이후 1974년에 주요 개량 노선에 설치되기 시작하였소. ICE와 고속신선의 데뷔 보다 15년 이상 빠른 설치 되겠소. 이것은, 독일 철도의 운영 이념을 보여주는 케이스 되겠소. 이 LZB 신호는 당시의 특급열차인 인터시티 열차에 처음 적용된 것으로,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200km/h 운전을 땡길 수 있게 되었소. 재래선의 개량과 LZB화를 통해서 어지간한 노선은 200km/h 운전이 적용되었고, 이후 ICE-1의 데뷔 후에는 230km/h까지 그 운행속도가 향상되기도 했다고 하오. 흔히 독일이 고속철 개업이 늦은 후발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미 그 이전에 네트워크의 확충과 고속화가 달성되어 있었던 만큼 만만하게 볼 수 없소.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그런 신호체계 이야기지만... LZB의 무서움은 여기까지가 아니오. 이 넘아는 기본적으로 오버레이 체계라고 하오. 즉, 기존의 ATP 기반의 신호도 LZB와 병용해서 사용하는게 가능하다는 이야기 되겠소. 뭐, 신칸센이나 TGV계열도 재래선 진입은 기본으로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LZB는 색등 신호기가 설치되어 있다면(저번 글의 ICE-3 사진에 보면 신호기가 보일게요), 고속선에도 ATP 기반 차량이 들어가 혼합운행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오. 이땐 정밀하게 열차 간격을 조절하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본선 열차와 ATP 열차가 자기 속도 찾아먹어 가면서 다닐 수 있는 모양이오. 덕분에, 야간에는 화물열차가, 주야간 관계 없이 가끔 IC도 고속신선에 기어들어가는 일이 있다고 하오. 물론, 사고가 아니라, 운행 계획이 그렇게 잡혀 있다는 모양이고.
근래 유럽에서는 ETCS라고 하는 차세대 신호를 연구중에 있다고 하오. 이것은 RF-CBTC(미, 한)나 CARAT(일), FZB(독)과 유사한 무선 기반의 열차 제어 시스템인데, 다만 LZB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일종의 오버레이 시스템 처럼 개발하고 있다고 하오. 유럽은 20여종의 신호 시스템이 난립하고 있는데, 이런 신호시스템을 한 열차에 모조리 넣을 수는 없는 만큼, 이들을 묶기 위한 신호 시스템으로서 개발중에 있다고 하오. 다만, 개발이 지지부진해서 독일은 LZB와 FZB(Funkt Zugbeenflussung) 쪽에 좀 더 무게를 둔다던가...
우리나라의 경우, 재래선을 현재 160km/h를 넘어 200km/h나 그 이상의 속도를 베이스로 노선의 설계와 개량 사업을 실시하고, 차량을 설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말이오. 따라서, 신호 체계의 개선 문제가 곧 불거질 가망이 크오. 또한, 호남고속철 계획에서도 재래선 직결을 활용하고, 더 고속(160~200km/h)로 열차 운행을 하기 위해서는 역시 신호 문제가 발생하게 되오. 현재 RF-CBTC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당장에는 도시철도 쪽에 적용하려는 듯 한 분위기고, 재래선 쪽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개량을 할지는 미지수인 상태인 듯 하오. 토목에서의 고속화와 차량의 고속화는 되어 있지만, 그 사이의 간극을 메꿔줄 중간 매개의 고속화가 없다면 속도 개량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될텐데 어떤 대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지오.
P.S.:
LZB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에서도 채용한 실적이 있고, 특히 스페인의 경우는 고속선용으로 채용하는 등 꽤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소. 그러나, 이 넘아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었소. 바로 이번의 ICE-3가 데뷔한 프랑크푸르트-쾰른 고속선이었소. ICE-3는 레일 와전류 브레이크를 채용했다고 하는데, 이게 LZB 신호를 교란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오. 덕분에 이 브레이크 사용은 중지되었고, ICE-3의 속도 향상은 발목이 잡혀버렸다고 하오....-_- 합리, 우직, 철두철미의 독일친구들이지만 ICE 쪽에서는 어째 운이 없달까.
언제나 잘보고갑니다~~ ICE의 삽질은 고무차륜의 압박....사고-_-;
저 디지털 속도계가 아날로그보다 의외로 감도가 떨어진다고 하네요..ㄲㄲ 구관이 명관이라는게 딱 맞는듯.
ATS=> ATP 이걸로 바뀌고 있지 않나요?? 부장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난독증..ㅡ.ㅡ;;에혀.
선박갤에 그런 글이 있었죠. 디지털 계기판보단 아날로그 계기판이 시인성이 훨씬 뛰어나다구요. 숫자개념보단 확실히 막대기가 움직이는 것이 훨씬 눈에 잘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원래 값의 변위는 아날로그 쪽이 시인성이 높다오. 디지털은 값의 변위 보다는 정확한 한 숫자를 보는데 유리한 방식이라오. 독일 양반들은 디자인이나 인간공학에 조예가 있는 편이어서 저런건 잘 설계하는 편이오.
저도 언제나 잘 보고 갑니다. 엄청난 내공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드네요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