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거기서 부산까지 가는 배편이 있었냐?
울 아버지 어렸을 적이 잠시 화제가 되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아버지께서 그게 기억난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데.
'그 때, 안동서 부산까지 낙동강 타고 가는 배편이 있었다.
그 때가 내가 국민학교 다닐 시절이었는데, 배부받은 교과서의 지도(아마 사회과부도 같은 교재를 말씀하시는 듯)에도 표기되어 있었고
그보다 좀 전의 윗사람들, 이를 테면 5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들어보면
안동 시내와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로 등산 가서 시내를 굽어보면 낙동강에 그런 배들이 가끔씩 들어오는 게 보였다고 하더라.'
물론, 강이 계속 흐르고 세월도 흐르면서 모래가 자꾸만 퇴적되고 그러니까 얼마 못 가서 부산까지 내려가던 낙동강 배편은 사라졌다고 하시는데
진짜 그런 게 존재했었냐?
도로교통이야 1974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부터 사실상 혁명이 시작된 거지
그 이전에는 깔짝깔짝 경인고속도로나 경수고속도로 같은 걸로 흉내나 잠깐 내던 시절이고
사실상 중앙선-동해남부선 같이 열차편으로 사람 실어나르느라 기차가 아주그냥 터져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런 배편도 있었음?
낙동강은 아니지만 내가 한참 부동산덕후 입문한다고 대전,세종,청주,공주를 탐방하러 다니면서 부동산 할배들에게 금강에 대해서 들은 얘기가 있는데, 금강의 경우에는 뱃길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대략 한국전쟁 정도까지 다녔다고 함. 장항,군산~강경까지 대략 2000톤 규모의 배가 다녔고 강경~부강까지 500톤규모의 배가 다녔다고 함. 사실상 이구간이 금강의 뱃길이고, 간혹 더 작은 배가 신탄진까지 가는 경우는 있었는데 드믈었다고 함. 강경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다 알거고, 부강포구에서 청주,보은,옥천 등 충청도 내륙물류 항구기능을 했다고 함.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에는 부강포구에 기찻길까지 있었다고 함(말듯고 나중에 찾아가봤으나 흔적도 못찾음). 강경이나 부강포구 주변이 굉장히 번화했다고 함.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터지고 포격전으로 산이 모두 민둥산이 되면서 장마때 토사가 흘러들어가서 강폭이 변하고 낮아져서 대략 50년대 언제쯤인가부터는 배가 뜸해지기 시작하다가 없어졌다고 함. 그 이후로는 그냥 강을 가로질러 건너는 쪽배들만 80년대 초반까지 있었다고 함. 여객보다는 주로 물류기능이 컸다고 함.
고려말까지는 강경,부강포구가 전국에서 꼽아주는 포구였는데, 조선시대부터는 남한강을 통해 한양과 교류가 많아진 충주가 역전을 하여 충청최대도시였던 청주가 충주에게 역전되어서 조선시대 때에는 충주가 청주보다 더 번성했다고 함. 이때까지 내륙도시의 번성이 강을 통한 물류기능에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다고 함. 그런데 언제 다시 청주가 충주를 재역전하여 지금에 이르렀는지는 잘 모르겠음. 일제강점기때, 경부선이 건설되고 곧이어 충북선이 청주시내까지만 건설되어서 여객운송목적 영업을 했다는데, 강을 통한 운송로는 전쟁에의한 토사유출과 철도의 출현으로 쇠퇴하기 시작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음.
낙동강은 금강과 멀리 떨어진 다른 지방에 있기는 하지만 강을 통한 운송로에 관한 운명은 금강이나 아니면 다른 강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함. 내가 한 얘기는 부동산 할배들에게 들은 말이라 신빙성은 잘 모르겠음. 그냥 재미로 읽어주길...
엠에스초보 (14.50.*.*) // 허허. 그런 사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