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 때는 걍 뚫을 이유가 없어서 안 뚫었음.


어차피 일제의 목적은 쌀 수탈과 일본인 거주구 여객 처리가 전부였기 때문에, 일본인 거주구가 없고, 쌀 수탈하기엔 생산량이 부족한 공주까지 철도를 넣을 이유가 없던거임.


간선의 도중 기착지로라도 불가능한게, 경부선은 미호천 때문에 자잘한 평야가 형성된 청주의 입구 격인 조치원 쪽으로 돌아가도록 짜여졌고,


호남선은 대전 방향으로 연결해야 일본 방향 향구를 향할 수 있었기 때문임.



통일 이후에는 중공업 주도 성장이 목표여서 나가리가 됨.


박통은 철강과 석유제품 생산량을 늘리고 싶은데 그만큼의 수요를 만들어야 했는데, 자동차와 도로는 철강과 석유제품을 왕창 쓰기 때문에 이거에 적합했음.


그래서 철도는 버려둔채 도로 위주의 성장을 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시골 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빠지기 시작하면서 들를 필요가 적어지게 됨.


70년대까지는 인구도 많고 차 보급율도 적어서 작정하면 들어갈 수야 있었는데 안 들어가게 된 이유고...



앞서 뭐 차령이 높은 고개라 했는데 200m(그나마도 190m라 이것도 안 됨) 정도 고개는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님. 터널 폭도 150m 정도에서 400m 정도고.


그냥 역사의 장난에 의해서 빗겨간 거고, 결과적으로는 지금 와서는 수요가 없어진 셈인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