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속화철도 논란


▶ 춘천~속초 구간을 35분에 주파하는 동서고속화철도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예산만 2조100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대형사업이다. 하지만 이미 운영 중인 서울~춘천 구간이 상당한 적자를 보고 있는 마당에 속초까지 철도로 연결된다면 적자 폭은 더 커질 게 분명하다. 더군다나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2017년 개통을 목표로 원주~강릉 철도 공사가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도로 중복 투자의 시대가 저물자 이제 철도 중복 투자의 시대가 다시 찾아오는 것인가.


철도 투자가 폭주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도로에 밀려 낙후를 면치 못하던 철도가 이제 과잉 투자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수서~평택 고속철도(KTX)’를 비롯해 원주~강릉선 사업, 경북 포항~강원 삼척 동해중부선 사업, 충북 단양~경북 영주 중앙선 복선화 사업, 경기 이천~경북 문경 중부내륙철도 사업 등이 공사 중이거나 착공을 준비 중이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을 넘는 굵직굵직한 철도사업들이다.

‘수서발 케이티엑스’라고 불리는 수서~평택 고속철도처럼 무난히 흑자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노선도 있지만, 상당수 노선이 적자가 분명한데도 ‘국토 균형발전’이란 명분 아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과잉투자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또 하나의 대규모 건설사업이 멍석을 깔려 한다. 바로 ‘동서고속화철도사업’이다. 


‘늘어나는 BC 비율’의 기시감

동서고속화철도는 케이티엑스처럼 시속 300㎞를 넘나드는 ‘고속철도’는 아니지만, 시속 200㎞ 이상으로 달리며 춘천~속초 구간(93.95㎞)을 35분 만에 주파하는 ‘준고속철도’다. 예산만 2조1천억원 이상 소요되는 대형 국책사업으로,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비롯해 강원도가 ‘숙원사업 해결’을 요구하며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도 내남없이 선거 때마다 강원도의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번 20대 총선에서도 여야 모두 강원도 공약 첫머리에 이 철도 건설을 올려놓았다.

1980년대 말부터 선거 때만 되면 거론되던 동서고속화철도 건설론이 본격화한 것은 2014년부터다. 강원도가 상당한 공을 들여 전력투구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강원도와 국토교통부가 한국교통연구원 등에 사업 근거를 담은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국토부와 강원도가 연대하고 강원권 정치인들이 총력을 펼치면서, 애초 요지부동이던 기획재정부도 사업의 예비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분위기다. 애초 기재부가 선뜻 동의하지 못한 이유는 대규모 예산 투자에 견줘 현실의 교통수요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순수하게 예산의 타당성만 검토하면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구 28만명의 춘천시와 8만3천명의 속초시에 고속화철도를 신설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적지 않다.

적극적으로 검토해봐도 혜택을 보는 주민은 양양군 2만7천명과 고성군 3만명을 더해 영동 북부권 인구 15만명 안팎이다. 철도를 놓았을 때 혜택을 보는 주민 규모가 비교적 작다. 과거 세 차례 실시된 예비타당성조사에서도 비용 대비 편익(BC)이 0.49(2001년), 0.73(2010년), 0.67(2012년)로 낮게 나왔다.


지난해 강원도가 한국교통연구원에 의뢰해 나온 분석 결과에서는 0.97까지 나왔지만, 조사 때마다 수치가 높아진 과거 국책사업의 경제성 부풀리기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서울에서 이 고속화철도를 타고 가려면 서울(용산역)~춘천 구간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구간도 운영 면에서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아이티엑스(ITX) 청춘열차’가 달리는 이 구간은 주말 이용객은 제법 있지만 평상시에는 적자 운영 중이다.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서울(청량리역)~춘천(춘천역) 구간을 아침저녁으로 10여차례 오가면서 관찰했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열차가 만석이지만 나머지 시간대에는 빈 좌석이 제법 보였다.

남이섬을 가기 위해 가평역을 오가는 관광객을 제외하면 서울~춘천을 평일에 이용하는 승객은 통근수요가 대다수였다.

이 노선에 춘천~속초 구간이 추가될 경우, 2조원이 넘는 건설 예산은 물론 고속화 노선에 걸맞은 운영 예산이 필요하다. 열차 정비, 여객 및 승무 관리, 역사 관리 등이 더해지면 실제 운영경비는 더 늘어난다. 문제는 승객이 얼마나 될 것이냐다.


서울(용산)~춘천 구간도 적자인데, 속초까지 연장되면 적자가 커지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의 철도 체계는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부와 관리운영을 맡고 있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 건설만 담당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이뤄진다. 철도 건설 계획은 국토부가 세워 정부 예산을 쓴다. 운영은 코레일 몫이다. 동서고속화철도처럼 신설 노선이 생기면 코레일 내부에선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조직과 인력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주름살이 늘어가는 것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코레일의 한 간부는 “신설 노선의 경우, 정부가 적자 노선의 손실을 보전해주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코레일의 경영 악화로 이어진다. 적자 노선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없이, 관리할 노선만 늘어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코레일로 전가되고, 최종적으로는 철도 서비스의 질 저하와 안전 문제로 이어진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신설 철도사업에 대해 100% 국가예산을 지원받아 건설만 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스스로 경영을 책임져야 하는 코레일은 각자 처한 위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코레일은 케이티엑스에서 벌어들인 흑자로 나머지 전국의 적자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토부가 관리운영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정치적인 고려를 통한 철도사업을 펼칠 경우, 코레일은 시름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경춘선의 한 역무원은 “코레일의 주름살이 늘어가다 나중에 더 악화되면, 국토부는 살을 도려내라는 요구를 할 것이다. 적자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건설만 하는 철도정책이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