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가 부설된 일제시대
당시에 장거리 수송은 철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을정도로 철도가 우세였음
고속도로도 없고 도로상태도 안좋아서 고속버스 그런것도 없었지
개인승용차는 더더욱 없었고
그래서 그때는 철도선형, 이동시간 이런건 안중에도 없었음
그냥 "그 지역에 철도가 들어간다" 가 제일 중요했음
어짜피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노선을 어떻게 만들던 기차를 탈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이니
전주의 경우 전라선 계획이 있었고
호남선이고 뭐고간 어차피 전주시민들은 전라선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굳이 호남선을 우회해서까지 갈 필요가 없었음
광주도 마찬가지임
후에 경전선이 광주를 거치기 때문에 별로 신경 안썼음
만약 전라선 계획이나 경전선 계획이 없었으면
호남선은 병맛선형이 되더라도 전주광주를 억지로 지나게 만들었을 거임
(충북선 이설 전 청주역 처럼)
아무리 수탈이 목적이라도 여객운송수입이 있어야 그 철도를 유지할 수 있는거니깐
호남선이 전주광주를 안지나서 아쉽다... 이런건 근래에 들어와서 발생한 문제임
도로가 발달하여 철도보다 빠른 교통수단이 생겨났고, 철도가 다른 교통수단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온거임
그래서 전주광주가 호남선상에 위치하지 않는다는게 안타깝게 된 거지
노노. 대한제국에서 건설하려고 했던 경목선이라면 광주는 광주부 비껴가더라도 송정리는 아니었을거고.. 전주는 반드시 경유했을거임. 당시에 다른 철로계획 세우기는 어려웠을거고 전라선이나 경전선은 나중에 계획된것이니 애초에 상관이 없음. 애초에 호남선부설 목적이 식량수탈에있었기 때문에 저따위로 건설한것.
물론 추후에 경전선 전라설 부설되긴했지만 호남 1 2도시가 직결되지 않음으로해서 호남의 경쟁력이 저하됨.
당시 호남선의 부설목적 자체가 쌀수탈을 위한 것이였으니까 뭐... 일제가 당시 호남의 민중들에게 일본이 지배해주니 이런 혜택도 있다 이런 목적이였다면 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현실은 김제평야, 군산항 등을 활용한 엄청난 양의 쌀수탈을 위한게 더 중요했으니 전주하고 광주를 지나가게 만들 계획도 없었을듯
문제는 그리 쌀수탈 해놓고서 정작 일본에서 조선땅에서 공급된 쌀땜에 쌀값 폭락으로 소요가 일어나니 그 쌀생산 장려도 안해버렸다는거 난 그 점에서 결국 일제가 그때부터 호남에 대해 기형적으로 엿만 제대로 먹였다고 봄
당시 기사를 봐도 일제랑 친일파, 개화파던 사람들은 이미 지선보다 본선이 훨씬 값짐을 인식하고 있었고 유치운동도 활발하게 있었음. 역사에서 철도의 위치 상 민족사관에 입각해서 철도 부설 반대운동이 부각되었을 뿐이지
대한제국이었다면 적어도 전통적인 거점도시는 연결했을거라는거임. 전주는 조선왕조 발상지인데 어떻게 안지나감? 전주가 조선시대 3대도시임. 서울하고 평양과 함께. 광주는 도청소재지이고. 식민지이니 주인의식이 없으니 막지은거지. 작은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불러오는것임..
근데 전주는 모악산 때문에 당시 기술로 짓기 난감함
ㄴ 그러면 호남본선을 전주 지나가게는 하되 1단계를 전주에서 컷하고 익산에서 군산으로 해서 서해안따라 나주까지는 가는 지선을 파지 않았을까나
그렇게 파면 사실상 나주가는게 본선이지 전주가는걸 본선이라고 우겨봤자 현실적으로 본선 구실을 못하지
일본이 아니라 대한제국 할아버지가 주체적으로 건설했다더라도 반대했을것이여 ㅋㅋㅋ
반대운동반대운동 하지만 기술적인문제가 가장 크다고 봄. 식민지 경영은 정치경제적 목적을 위해서 하는 건데,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서든 뭐든 최상의 철도노선이 필요함. 유림반대? 그런 지역이 있었겠지만 철도 유치하려했던 곳이 더 많음
철도반대는 철도건설과정에서 있었던 강압적인 강제노동 무상몰수 등으로 인하게 더 컸지. 수탈목적이고 실제로 건설과정에서 부지기수로 죽어나감. 그래서 의병들이 철도건성현장 습격했던것임.유림반대가 있었더라도 그건 철도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일제에 대한 반대지..
ㄴ의병들 뛰어다니던 시기는 경부선이고(병합 직전 러일전쟁) 호남선은 병술국치 이후에 개통하는데? 니가 말하는 거 맞는데 그걸로는 경부선이 서울 수원 천안 대구 부산 지나가는 거 설명불가 설마 위 지역이 친일지역이라고는 안하겠지?
대한제국은 경목선 건설 등을 관장할 기구로 1898년 7월 철도사(鐵道司)를 설치했으며 곧 이를 철도국으로 개칭했다. 그러나 재원을 확보하지 못해 계획만 수립하고 공사는 시작도 못했는데, 1904년 6월, 사업가 서오순이 부설권을 얻어 ‘경목철도’라는 이름 대신 ‘호남철도’를 사업명으로 삼고 부설운동을 개시했다. 서오순을 중심으로 한 호남철도주식회사
서오순리 측량 등 다 하고 1908년 말에 부설권 뺐기고 일제가 1911년 부분개통하는데 그 사이에 그렇게 많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