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기술수준상 영산강 두번건너기 싫어서 광송 광주하남으로 호남선 건설했지?

그리고 나중에 다시 광주 구도심 가까이(상무대 창설 전 상무지구 땅)로 이설할 생각을 하긴 어려웠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