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주 유림반대설
- 조선철도주식회사인가(?)가 그때 잘나가던 청주 상주 경유해보려고 머리 굴린건 사실임. 근데 소백산맥의 난관때문에 상주경유는 첫번째로 나가리됐다고 알려짐
2. 청주 유림반대설
위 말대로 청주 상주 경유해보려던건 사실인데, 호남선 연계를 위해 상주 나가리 먹은 이후 청주경유도 나가리 먹음. 대신 공주경유 채택
3. 공주 유림반대설
- 일제가 원활한 쌀 수송을 위해 공주 금산으로 돌아가는 루트 대신 대전 옥천으로 변경
4. 충주 유림반대설
- 애초에 경부선 충주 계획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함. 1894년엔가 이미 추풍령 경유로 확정
- 근데 청주 보은 상주로 넘어가는게 그렇게 난코스였나? 이화령이나 문경새재 경유라면 이해하겠는데 소백산맥 넘는게 그때 기술로 그리 힘듬?
머구가 경상감영 동네 임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건설한 것을 보면 그렇지
3번은 광복 이전의 향토사료(?) 가 꽤 남아있어서 썰 로 보긴 어려운데
민주주의라는게 없던 시절에 유림이고 자시고 나라에서 하는 일에 반대한다고 나섰다간 다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맞아죽었음.
흔히 말하는 핌피 님비라는게 등장한게 87년 6.29선언 이후다.
그냥 차령 이화령 험한 산 뚫기 싫어서 딴데로 뚫은건데 유림타령하는건 역알못 인증.
청주-보은이 난코스가 아니라고? 피반령을 차타고 지나가봐야 그소리를 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