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와 개나리, 목련이 피기 시작한 길을 10여분 걸으면 풍산역이다. 이내 도착한 전철을 타고 스마트 폰 검색을 하다가 눈을 들어 바깥을 보니 눈앞에 가득 전개되는 풍경, 아 봄이다!
버드나무는 연두색 빛을 더하고 개나리와 목련이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봄빛에 잔뜩 꽃을 피운 매화는 화사하기 그지없었고 벚꽃도 하나 둘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저 멀리 북한산이 가까이 다가오고...
전철을 타고 바깥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멋질 줄이야!
바깥을 볼 수 없는 지하철은 얼마나 갑갑했던가. 맞은 편 낯선 사람의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모두들 스마트 폰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경의선은 스마트 폰에 정신을 팔 겨를이 없게 한다.
경의선을 지상으로 건설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경의선 복선화사업은 반드시 지하로 건설되어야 한다고 시민들은 주장했다. 대책위가 만들어지고 현수막을 걸고 농성용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장기농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장실을 점거하고 수시로 시청을 쳐들어 왔다. 경의선을 지상으로 건설하면 기차소리가 시끄러워 살 수가 없고 수시로 지나가는 기차 때문에 도로가 막히고 도시가 양분될 거라고 했다.
언제부터 경의선 복선이 지하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어느 때 대책위가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른다. 2002년 시장에 취임했을 때는 이미 경의선 복선 지하화는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이었고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시민의 공감대가 완벽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난감했다. 지하건설을 계속 주장하다가는 경의선 복선 건설은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경의선은 여객수송만을 위한 철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군사물자도 실어 날라야 하고 언젠가는 유라시아 철도와도 연결되어 져야 하는 철도였다. 즉, 여객과 화물을 동시에 싣고 운행해야 하는 여객, 화물 겸용철도였던 것이다.
여객과 화물을 겸용해야 하는 철도가 지하로 건설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나라 철도는 대도시 곳곳을 지나가고 어떤 곳은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가기도 한다. 고양시민들이 경의선 지상건설을 반대하는 데모를 한다고 철도를 지하로 건설해 준다면 철도가 지나가는 모든 도시는 다 지하화 해 달라는 데모를 할 것이다. 도시 구간 철도를 모두 지하로 건설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도 경의선을 지하로 건설해주고 싶어도 지하로 건설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지상화를 반대하면 그 피해는 고양시민들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까지 정부는 미적거리며 경의선 복선공사를 착공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춘천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다.
오랜 기간 고심을 하다가 건설교통부 장관과 담판을 짓기로 결심을 하고 장관실을 찾았다. 경의선 지상 건설을 수용하겠으니 대신 지상 건설로 인해 예상되는 문제점을 모두 해결해 달라고 요구를 하기로 했다. 장관을 만나 결심을 밝히고 지상건설로 인한 예상되는 문제점과 그에 따른 대안을 제시했다. 야당 시장으로서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결단을 해 주어 고맙다며 장관은 제시한 대안을 검토하여 빠른 시일 내에 가부를 통보하겠다고 약속했다. 강동석 장관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절대 보안에 부쳐졌다.
보름쯤 후에 건교부로부터 답신이 왔다. 우리 시가 지상 건설을 수용하면서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던 내용은 ①경의선은 2007년 말까지 개통하고 ②경의선 철로 변과 아주 가까운 일산역을 인공 터널로 건설하되 이 터널을 흙으로 덮어 인공 산을 만들어 나무를 심고 ③건널목에서의 체증을 막고 도시를 가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차도나 고가 차도를 15곳에 만들어야 하며 ④소음을 막기 위한 방음벽을 아파트 단지가 인접한 곳에는 다 세우고 ⑤철로 변에는 조경수를 울창하게 심어 소음을 차단하면서 경관을 좋게 하며 ⑥경사도로 인해 반 지하 건설이 불가피한 구간은 일부 육교를 만들되 육교에 나무를 충분히 심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 중 건교부는 지하차도를 일부 줄여 건설하자는 것 말고는 모두 고양시의 제안을 수용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에 우리 시는 지하차도 문제는 계속 협의하자고 답신을 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경의선을 지상으로 건설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기자회견을 끝내자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시장이 주사보다도 못하다는 등 시장을 비난하는 글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각오한 바였다. 경의선 복선 지상화 발표를 결심할 때 이미 한 달 정도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지낼 각오까지 했었던 것이다.
경의선지하화대책위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것도 다음날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는 연락이었다. 의외였다. 뭔가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신호가 아닌가.
다음날 경의선 지상화건설에 끝까지 반대한 몇몇을 제외하고 대책위 간부들이 모두 다 나왔다. 밤새 주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주민들의 79.8%가 지상화에 찬성을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즉시 대책위는 해산하고 컨테이너는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지하화대책위는 지상화대책위로 전환하여 경의선의 지상 건설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고도 했다.
대신 경의선이 제대로 건설될 수 있도록 시장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줄 것과 경의선 건설에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각종 회의 등에 주민대표를 참여시켜 달라는 요구를 했다.
이후 주민들은 경의선 복선화 지상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건교부도 고양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기획예산처였다. 예산을 제대로 확보해 주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고양시와 건교부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일산역의 터널건설은 실현되지 못했다. 완공도 1년 반이나 지연되었다. 아직까지도 지하차도는 일부 건설되지 못하고 있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고양시 출신 당시 여당 국회의원들의 힘을 빌리고자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우리 지역 출신 국회의원으로 국무총리를 하고 있던 분은 온갖 경로를 통해 면담을 요청했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지역 단체장들은 총리 공관으로 불러 만찬까지 제공하면서도 시장은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지휘서신까지 보냈지만 답장도 없었다. 야당 출신 시장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총리를 그만두고 나서 한 모임에서 만나 왜 만나주지도 않았느냐고 따지듯 물었지만 웃기만 할 뿐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반면에 건교부 강동석 장관은 만날 때마다 고마워하고 약속을 다 지키지 못해 미안해하며 우리 고양시를 도와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KTX 행신역 증차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KTX 행신역 증차를 철도공사에서 들어주지를 않아 강 장관을 찾아 가 부탁을 하자 그 자리에서 철도공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까지 쳐가며 증차를 지시했고 몇 달 후 행신역 출발과 도착 편이 여러 편 증차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의선 복선은 완공되었다. 문산에서 가좌까지 미완의 완공이긴 했지만. 2009년 7월 1일이었다.
개통식이 있는 날 아침 뿌듯한 마음으로 개통식장인 행신역을 찾았다. 많은 시민들이 반겨주었다.
개통식에는 경의선 복선화에 큰 기여를 한 사람들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별로 공로도 없는 사람들만 나와 생색을 내고 있었다. 강 전 장관은 부르지도 않았고 경의선이 약속대로 건설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던 수많은 공무원과 철도시설공단 직원들은 모조리 찬밥이었다.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았다. 새로운 장관과 철도공사 사장, 지역 국회의원들만 축사를 하고 생색을 내고 있었다. 많이 씁쓰름했다.
경의선하면 특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경의선 복선화 과정에서 했던 건교부의 약속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건교부 공무원이었다. 경의선 복선화를 위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양시 경의선 철로 전체 구간을 수없이 왔다 갔다 한 사람이다. 구두가 다 닳았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려 구두까지 사주기도 했던 사람이다.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 데 책임을 진다면서 사표를 던지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김용상 사무관이 그 사람이다.
이렇게 경의선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서울시 구간이 다 개통되고 이제는 중앙선과 양평 용문까지 연결이 되어 많은 직장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전철이 되었다. 백마역에서 급행열차를 타면 30분이면 용산역까지 갈 수 있는 편리한 노선이 되었다. 이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 경의선 복선건설에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가 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경의선을 탈 때마다 가슴 뿌듯함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일 것이다.
[출처] 경의선 전철을 타고 가면서|작성자 강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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