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현재 남아있는 아마도 유일한 서울 노면전차 보존차량일게요. 예전에 직접 찍어둔 물건이오. 아마도 일본쪽의 전쟁 전 전차 모델과 동일한 것으로, 아마도 경성전기 시절에 도입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오.
아래는 병용궤도 구간의 사진이오. 케이한(京阪) 케이신(京津)선의 하마오오츠(浜大津) 역 부근에 있다고 하오. 철도-궤도-지하철로 이어지는 직결 구조 덕에 궤도임에도 일반철도에 가까운 전동차 4량편성(원래 궤도는 40m이상의 차량 운행이 금지이나 여긴 특례를 적용받소)이 다니는 나름대로 유명한 곳이고, 여기에도 이 곳 사진이 몇 번 올라온 바 있을게요.
오늘날의,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궤도와 철도의 차이를 알기는 어렵소. 흔히 궤도라고 하면 기갑장비의 무한궤도나 아니면 행성이나 위성의 행적인 궤도(Orbit)을 생각하기 쉽소. 또는 궤조(軌條)라는, 레일 자체를 의미하는 전문용어나 아니면 그냥 단순히 침목, 궤조, 도상등을 모두 묶어서 말하는 의미의 철도와 혼동하여 쓰는 경우이거나 말이오. 어원은 대강 맞긴 하지만. 다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 둘은 같은 것이 아니오. 특히, 법률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말이오.
궤도는 원래 법적으로 도로용지를 공유하는 철도, 즉, 노면전차 종류를 통칭하는 행정적인 용어로 사용되었소. 철도는 도로와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였고 말이오. 이러한 구분은 일제시대 당시에 생겨난 개념이고, 이 개념이 궤도법의 폐지가 결정된 1979년까지 대충 이어져 내려왔었소.
우리나라에서의 궤도는 생각만큼 성업하지 못했는데, 경성전기가 운영하던 서울시가전차, 한일와사전기였던가가 운영하던 부산시가전차 정도, 그 외에 함평의 함평궤도, 서울의 서울궤도(당인리선, 성동-광나루간 등 2개 노선을 가졌소) 등이 존재하였으나 현재 단 1개 노선도 남아있지 않고 전폐된 상태이오. 이후, 이 궤도법의 폐지 후에는 크게 지하철법(현재의 도시철도법)과 궤도·삭도법(사실상의 로프웨이/케이블카 법령이고, 현재 케이블카와 광차용 궤도를 빼면 적용대상이 없을게요)에 의해서 계승이 되었는데, 노면을 공유하는 철도로서의 궤도는 그 계승자가 없는 상황이오.
이 궤도, 철도의 구분의 원조는 당연히 일본이었소. 원래 일본은 관설철도와 사설철도로 양분되어 철도 인프라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러일전쟁 전후한 애국적 풍토 하에 두 차례에 걸친 간선 사설철도의 국가 매입(이라고 쓰고 염가 강탈이라 해도 되오)을 거치면서 도시권의 사철, 간선의 국철 체제로 정비가 되었소. 이후 철도 쪽이 팽창하면서 국가수송적 측면 중심으로 철도원, 이후의 철도성이 성립하게 되었고, 이들에 의해서 "보통철도"라 불리는 현재의 철도 시스템이 규정되게 되었소.
한편으로, 도시 내부 교통의 개선 등을 위하여 일본의 내무성 쪽에는 별도로 노면 전차등을 관장하는 "궤도"라는 개념이 존재하였소. 이 궤도는 한마디로 말해서, 노면전차라 할 수 있소. 도로와 같은 수평면을 가지고, 도로를 공유하여 다니는 철도는 관리적 필요성(도로랑 같이 관리해야 되지 않겠소? 도로와 한몸인데) 때문에 도로 등을 관장하는 내무성 관할이 되어 있었소.
문제는, 역시 민간사업자와 철도성과의 대립구도였다 할 수 있소. 민간사업자는 안그래도 한 방 먹었던(저 국가매입 건) 것도 있고, 국가 주도에 의한 철도규격을 맞추다가는 중앙정부 등에 의한 부설의 방해(당시 철도사업은 면허제였소), 국철의 직결, 그리고 이에 따른 군 등의 징발이나 더 나아가 노선 매입의 위험이 상존하게 되오. 또한, 수송속도 면에서도 협궤는 아무래도 좀 느린 것도 있었으며, 철도 운용에 따르는 제반 규제들을 회피할 필요도 있었소(플랫폼, 차량한계, 하중설계 등등). 그런 와중에서 궤도법은 철도성과 무관한데다가, 내무성 주관이라지만 사실상 지방관청(도도부현 관할)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서, 이러한 철도와의 대립을 피할 아주 좋은 "백도어" 역할을 할 잠재성이 있었소.
그 시초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특히 알려진 것으로는 위의 병용궤도구간을 가진 케이한이었소.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이 회사는 쿄토와 오사카를 연결하는 도시간 철도 수송을 기획하고 있었소. 그러나, 이 구간은 이미 도카이도선이 있었고, 따라서 중앙정부에서 철도성의 병행노선을 허가해 줄 가망은 별로 없었던 모양이었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저 궤도법이었소. 쿄토와 오사카 양쪽의 지방관청 쪽을 설득하여 좀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내무성 쪽에다가 이 궤도법에 따라 도시간 교통과 전용 궤도를 가질 수 있는지를 찔러보았다고 하오.
내무성에서는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렸다고 하오. "노선 중 일부라도 노면을 공유하는 구간이 있다면 궤도법의 관할이 될 수 있음." 게이한은 그래서 두 도시에 각각 도로병용구간을 설치하여 철도를 깔고 영업을 하여 철도성을 물먹이는데 성공하였다고 하오. 현재 표준궤간이 아닌, JR과 경쟁하는 2차대전 이전부터 영업한 사철 노선들은 대개 이러한 "뒷구멍"을 써서 궤도로서 영업허가를 받아 사업을 한 것이라고 하오. 도쿄에는 케이오와 케이세이, 약간 류는 다르지만 케이큐가 이런 케이스였다고 하고, 오사카 쪽은 뭐.... 수두룩 한 상황이오. 특히 오사카는 이게 심했는데, 도쿄의 경우 중앙정부의 통제가 상당히 강했지만(지금도 도쿄도로 특별대우를 받으니) 오사카는 국철의 현지사무소들 부터가 좀 느슨했고 중앙정부가 어찌 하기엔 좀 먼 곳이어서 그랬다고 하오.
이러한 괴이쩍은 시스템은 이후 종전 이후에 정부가 싹 한번 뒤집히면서, 각각 운수성과 건설성으로 정립되면서 점차 그 구분이 희미해지고, 현재는 국토교통성으로 이 둘이 통합되어버리면서 사실상 이렇나 구분 시스템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소. 물론, 전후에 이미 사철들 다수가 철도면허로 갈아타 버리기도 했고 말이오.
현재도 노면전차 등이 남아있기 때문에 궤도법은 명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소. 이 궤도법에서는 여전히 노면 부설을 원칙으로 잡고 있고(철도법에서는 원칙 금지), 차량의 길이 제한(원칙적으로 40m이하(표준철도차량 2량)), 속도 제한(철도보다 낮소) 및 도로용 신호의 준수 등이 조건으로 달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소.
그러나, 역시 아무리 그래도 궤도법과 철도법은 사실상 그리 명확한 분리가 안되기는 하오. 그 이유로, 지방정부 등이 어떤 사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철도 보다는 궤도로 해서 도로의 일부로 취급, 이를 정비하는 쪽이 예산 확보나 법적인 부담이 적다고 하오. 그래서 지하철 중에 궤도면허로 다니는 경우가 잦소. 여기에, 아무래도 이전에 인허가 해 주었던 사항을 다시 갱신하는데 상당히 까다로운 경우가 있다거나(위의 병용궤도 구간 등) 한 경우가 있어서 그냥 궤도로 남는 경우가 있다고 하오. 그래서, 가끔은 철도구간, 궤도구간으로 노선이 법적으로 나누어진 노선도 존재한다고 하오.
이걸 두고 좋게 말하면 꼬장꼬장한 원리원칙, 나쁘게 말하면 율법지상주의 내지 행정편의주의라 할 수 있겠소. 궤도법이 저렇게 좀 비틀려 돌아간거냐 하면 그것도 아닌게, 에노덴처럼 원래 궤도인 걸 법률상의 특례를 두어서(안전시설이나 각종 규격에 예외를 두었소) 억지로 철도로 옮겨놓은 케이스도 있어서 서로 남 욕할때가 아니라 하던가 그렇소.
우리의 경우는 아시다시피, 해방 과정에서의 경제공황, 전쟁에 의한 대규모 파괴, 그리고 부패와 경제혼란 등으로 인해 이러한 궤도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적자만 양산하는 부실덩어리가 되었었소. 또, 전력의 부족으로 인해서 서울궤도의 경우는 가솔린 동차인 채로 계속 영업을 했었고, 전차들 역시도 운행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오. 당장에, 1963년까지 우리나라는 제한급전을 했었으니 노면전차라고 어디 쉬웠겠소. 여기에, 차량 제조능력이 없다보니 대부분 일제 당시의 차량을 그냥 쓰거나 한 예가 많아 낙후도도 심각하였소. 노선 연장같은건 말도 못할 지경이고 말이오.
결국 자동차의 증가 등으로 인해, 노면전차는 1969년을 기해 일제히 폐지, 기동차 노선들은 더 일찍인 1960년경 부터 폐지가 시작되어 1970년 시점에는 이미 전폐되었다고 하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는 궤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1974년에 돌관공사에 가깝게 완공되었던 지하철 종로선(현재의 1호선 지하구간)이 개업하게 되면서 이 녀석이 그 법통(?)을 잇게 되었소.
현재 우리나라의 궤도법은 연혁법령으로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건설 규칙에는 궤간을 762mm, 1067mm, 그리고 1435mm로 제한하고 있고, 구배율은 40퍼밀(특례시 67퍼밀)까지 허용되었소. 차량에 대해서는 일반 철도와 비슷한 저상 승강장을 원칙으로 했고, 차량은 기본적으로 중련까지만(즉 3량 미만 편성만) 허용되었으며, 운행하는 차량은 전기차량, 내연기관차량, 그리고 증기차량까지 모두 허용되고 있소(단, 증기차와 전기기관차는 차량 규격의 제한이 존재하오). 또, 노면과의 공유가 원칙이 되어 있어서, 도로 점용에 관한 권리관계(공사시의 조치나 점용료 등등)가 법 조항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도 특징이오.
일본도 궤도의 전성기 시절에는 전국 70개 도시에서 노면전차가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30개도 안되는 도시에만 노면전차가 남아 있고, 그나마도 몇몇은 낙후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오. 우리나라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노면전차는 참 긴 시간 동안의 침체기를 겪었었소. 다만, 근래 들어서 다시 이들 궤도 쪽이 각광받기 시작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조만간 궤도의 재등장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오. 영어마을의 사비이 노면전차 따위가 아닌, 제대로 된 도시교통으로서의 노면전차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오.
P.S.1:
개인적으로 저 서울궤도의 성동-광나루간 노선은 여러모로 아쉬운 감이 있소. 이게 지하철 건설 시점까지 어떻게든 버텨줬다면 비싸고 공사가 까다로운 지하철을 대신하여 교통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오.
사실, 당시에도 서울 시내 노면전차 시설물들을 철거해서, 시 외곽지역의 교통난 지역에 부설하는 것을 검토했었다고 하오. 그러나, 당장에 재정난에 시달리던 서울시 입장에서는, 좀 뽀대도 나고 윗선에(박통이라던가, 빡통이라던가, 뇌제라던가) 아부도 할 수 있는(등촌동길과 노들길, 강변북로가 언제 왜 건설되었는지 생각해 보시구랴) 도로가 좋았을 게요. 서민의 편의 따위야 그 높으신 양반들이 얼마나 신경썼겠소? 높으신 분 외유 철이 되시면 애들 불러다 아스팔트 미싱하우스 치라던 양반들이신데.
그 풍토나 결과는 지금에도 이어진다고 할 수 있소. 개념없는 행정이 오죽 오래되면, 궤도 시스템 정비도 아닌, 반쪽짜리 버스 시스템 개선에 시민들이 그리 열광했겠소... 당국은, 그리고 지자체를 지망하는 여러 정치인들은 상당히 반성을 해야 할 것이오.
...그렇다고 전시행정만 디립다하면 골때리겠소만.
P.S.2:
글을 쓰다 보니 이야기하려던 꼭지가 하나 빠졌구랴.... 현재 우리나라 지하철이 1호선을 제외하고 모조리 우측통행이 되어버린건, 도시철도 건설규정 만들때 얼빠진 민족주의자 하나가 끼어있었던 탓도 있는 듯 하지만, 다른 것 보다도 궤도법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오.
궤도법과 그 부속 시행령, 규칙에 복선상의 운행방향을 명시한 것은 없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면에 준하여 다녀야 하고 도로교통법 등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이때 이미 우측통행이 규정되어 있었지 않은가 생각되오. 그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대로 지하철이나 도시철도에 이어진게 아닌가 싶고 말이오.
앞으로 LRT도입이 가시화 되거나 하면 이 부분이 또 불거질 지도 모르는데, 만약 직통운전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역시 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다니는게 맞지 않을까 생각되오. 그쪽이 더 안전하니 말이오.
등촌동길과 노들길, 강변북로가 왜 건설되었는데요....? 청계고가는 박통이 워커힐 호텔 갈때 직통으로 가려고 지었다는 말이 있지만.... -_-?
김포공항에서 한강대교 까지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해 보시면 감이 빠를게요. 강북로 쪽도 워커힐 개발에 관련되어 건설된 도로고.
개념글 감사요^^
이분은 직업이 뭘지 궁금... 이 상당항 포스의 글이란 볼때마다 대단하다고 느끼는중. 오늘도 글 잘 봤습니다^^/
오~~ 상당히 흥미로운 사진이네요 ,자료 감사요 쵝오 ^^*
당시 강변북로는 지금 두무개길 ㄲㄲ / 2002년 OD를 분석했던 적이 있는데, 확실히 버스가 직통운행하는 구간에서 버스의 수송분담율이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승용차의 분담율이 감소하더구려. 물론 가장 큰 영향은 지하철이 주지만, 가로망 구석구석을 훑을 수 있고 또 도로의 활용을 극대화하는게 가능한 버스를 쓰지 않을 수 없으니. 많은 버스의 가로 진출입과 통과 운행이 있는 도심과 강남의 가로에 궤도를 도입하는건 설사 김석철이 주장하던 서울 상징가로가 들어서도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오. 트랜짓몰이 되냐 안되냐를 검토했던 거라, 버스차로가 따로 또 도입되어 차도가 넓어지는걸 좀 줄이는 쪽으로 생각해서 그랬겠지만서도.
그리고 지금 노들길도 일부 구간이 변경되었지요. 여의나루 (하) 인터체인지부터 선형이 바뀌었는데, 지금 영등포2가쪽 보면 새로운 택지개발지구 (근로복지공단-손희지사-영동초교-당산중)를 연결하는 땅이 구 도로 겸 제방 자리입니다 ㄲㄲ
은 비교적 많은수의 노상전차가 남아있고 최근에는 신선부설 로컬 철도와의 연계등등으로 점차 확대되는추세입니다....처음 유럽에 갔을때는 도로병용이 무척 낫설어서...자전거뒤를 따라가는 전철 소리없이 뒤에서 등장하는 전철에 사망하신분도 있고 .. 가끔은 100년도넘은 기념전차가 지나다니던 풍경등등...
개인적으로.... 강변북로는 이름을 '월드컵 대로'로 바꾸면 안될까 하는 것입니다. 올림픽 대로랑 쌍쌍으로 대칭을 이루도록.... 힘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