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홋카이도~사할린~시베리아’ 러, 일본에 대륙횡단 철도 건설 제안[한겨레] ‘산케이’ “푸틴 방일 앞서 양국 논의중”한반도 철길 부진에 일본 쪽 돌린듯남북한 철도보다 도쿄발 철도가 홋카이도를 …한겨레2016-10-03 22:15










일본 역사가들이 자조적으로 말하는 일본근대화 성공비결

 

 

19-20세기 걸쳐서 아시아에서 오직 일본만이 독립국 유지하고 
열강의 위치에 진입했다고 뻐깁니다. 

특히 메이지 유신을 통한 성공적인 근대화에 대해서 초인적인 
개인과 집단에 대한 영웅담으로 미화가 되는데 왜곡이 심하죠. 

그래서 이런 저런 잡다한 왜곡을 배제하고 까놓고 일본 역사가 
가 말하는 간신히 근대화하고 독립을 유지한 2가지 이유는. 

첫째,일본이 개국하던 1870년대는 대영제국이 지배하던시기로 
당시 유럽에서는 자유주의가 절정에 달해 새로이 개화 대열에 
진입하는 나라들에게 대단히 우호적이었답니다. 이 시대 이후 
에 민주혁명이 일어난 러시아와 중국은 절대 그런 대접을 못받죠. 
시기를 잘 만난 거라고 일본 역사가들이 말한 답니다. 

둘째,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기인되죠.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의 입장에서는 중요해상교통로(동아시아-북서태평양) 상의 요 
충지 역할을 하는 약 3만킬로에 달하는 해안선을 가진 일본열도가 
그 쓰임새를 제대로 할려면 중립을 유지하고 열강에의해 분할 되지 
않는 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일본 
역사가들이 스스로 거론한 이유랍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재수가 좋았던 것이고. 목이 좋았고. 때를 잘만나서 
라는 말이 됩니다. 

여기에 한국인으로서 일본 근대화 성공 비결을 덧붙인다면 

거의 300여년간에 걸쳐 이어진 막부의 쇄국정책에도 큐수나 시코쿠 
혼슈의 몇몇 항구를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스페인 문물수입을 위해 
지속적으로 정보수집 문물수입을 위해 일본애들이 열어 놨다는 점. 
정보전이 그래서 중요하죠. 

네덜란드가 조선과 직접 교역을 한다고 하면 대외적으로 공식적 우방 
으로 표방하던 유일한 국가 조선이지만 뒤로 호박씨를 까면서 네덜란 
드와의 교역중단을 협박하며 조선과의 직교역을 못하게 해 주변국가의 
근대화를 지속적으로 방해 견제 했다는 점. 

세계유일의 귀족적 중산층 상인자본이 형성되어 문화 정치적으로 선진 
적이던 네덜란드-영국라인으로 이어진 해양국가의 문물을 부단히 수입 
흡수 하였다는 점이겠죠. 

거의 18-19세기 초부터 메이지 유신을 태통할 배양 베이스를 준비했다는 점 
이겠죠. 러시아에서의 유태인 박해(포그룸)로 러일전쟁때 유태인들이 일본 
에 군비 조달도 해주고, 메이지 유신 때는 유태인들이 대거 일본의 근대 
국가화 작업(헌법제정, 은행 우체국 설립 등)에 참여 했죠. 

즉, 자신들의 지속적인 노력, 지정학적 위치, 거기다 선진적 해양국가들의 
문물 정책의 수입 거기다 대륙세력을 견제하고자 하는국제자본가들과 이해 
가 맞아 떨어진 결과의 작품이 근대 일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