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반가운 조치 몇 가지가 최근 시행됐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11월 11일 적자를 이유로 폐지했던 KTX 마일리지 제도를 3년 만에 부활시켰다. 코레일 인터넷 홈페이지나 모바일 웹 회원의 경우 결제금액의 5%를 기본 마일리지로 적립해 주고, 평균 승차율이 50% 미만인 열차(더블적립 열차)를 타면 5%를 추가로 적립해 준다. 전체 KTX의 3분의 1 정도가 더블적립 열차로 지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선불형 교통카드인 ‘레일 플러스’로 승차권을 결제하면 추가 1%를 보너스로 받는다. 최대 11%까지 마일리지 형태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KTX 마일리지 제도는 2000년 도입됐다가 경영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2013년 폐지됐다.

코레일은 기존 할인제도도 더 확대했다. 예상 승차율이 낮은 티켓에 대해 운임 할인을 해주는 ‘인터넷 특가’는 현재 할인율이 5~20%인데, 10~30%로 확대한다. 만 24~33세를 대상으로 한 ‘힘내라 청춘’은 최대 할인율이 30%에서 40%로 올라간다.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의 할인폭도 커진다. 코레일의 사정이 갑자기 나아진 것일까.

코레일의 대대적 요금인하는 12월 9일 수서발 KTX(SRT) 개통에 대비한 조치로 보인다. SRT는 2014년 KTX의 자회사로 설립된 SR이 운영한다.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 노선은 거의 동일한데 요금은 KTX 대비 평균 10% 정도 저렴하다. 수서~부산 구간의 요금은 5만1800원으로, KTX 서울~부산 요금(5만9800원)에 비해 약 11% 싸다. 수서~목포 구간은 SRT가 4만5800원으로, KTX 용산~목포의 5만2800원보다 7000원 더 싸다. 할인이나 주말 할증을 반영하는 요금은 더 내려갈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승무원을 호출하고 열차가 출발하거나 도착할 때 알림을 받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일반실은 기존 KTX보다 발 뻗을 공간이 넓고 좌석을 뒤로 더 젖힐 수 있다. 전 좌석에 콘센트가 설치돼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충전할 수 있다. 기존 코레일 승객 중 서울 강남·강동권 주민들은 지리적 여건상 SRT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코레일이 긴장할 만하다.

국토교통부는 SRT 출범을 두고 ‘117년 만에 철도경쟁시대가 열렸다’고 자부한다. 경부 혹은 호남고속철도를 이용하는 서울권 승객들은 서울역과 수서역 둘 중 하나를 골라서 갈 수 있으니 언뜻 그래 보인다. SRT 도입으로 고속열차 투입이 대폭 늘어나 열차 운행 횟수는 경부축 183회에서 256회, 호남축 86회에서 128회로 대폭 증가했다. 심지어 개통 전부터 KTX의 요금까지 내려갔으니 벌써부터 ‘경쟁의 효과’가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SRT는 국토교통부의 야심작이다. 2003년 철도산업발전법이 통과된 이래 정부는 코레일 외 다른 사업자도 철도산업에 뛰어들게 해 서비스 향상과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철도 민영화’는 요금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정반대 결과다. 그러나 철도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코레일과 SRT가 서로 출혈경쟁에 나서면 경영상태가 나빠져 결국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적자 노선을 대폭 줄이고, 안전·서비스 인력의 외주화로 ‘제2의 스크린 도어 참사’가 우려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공적 역할을 부담하는 코레일에 타격이 갈 가능성이 크다. 2013년 12월 9일부터 12월 30일까지 철도노조가 파업하는 동안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지적했던 내용이다.

SRT 운영사의 정식 명칭은 ‘주식회사 에스알(SR)’이다. 주주는 코레일(41.0%), 한국산업은행(12.5%), 중소기업은행(15.0%),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31.5%)이다. SR 정관은 “배당가능 이익 범위 내에서 회사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투자 및 주주가치 제고, 경영환경 등을 고려하여 적정 수준의 배당률을 결정한다”고 돼 있다. 코레일이 의사결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주주여서 ‘철도공기업’의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 주주들도 국책은행들과 연금공단으로, 민간 상업자본은 포함돼 있지 않다. 국토교통부는 이를 들어 SR의 설립은 철도민영화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주식회사가 아닌 코레일은 모든 수익이 노선 정비, 직원 재교육, 적자노선 보조 등 철도 내부로 재투자된다. 철도 노선 대부분은 코레일과 공유하며 정비업무도 코레일이 맡는다. SR은 열차 운행만 담당한다. 코레일의 부채 대부분이 시설투자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코레일이 경쟁에서 불리하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연구원은 “코레일 노선 중 유일한 흑자 노선은 KTX 경부노선이다. 여기에서 나는 수익으로 다른 지방의 적자 노선을 보조한다. 공기업이기에 가능한 형태이다. 코레일은 이 때문에 요금할인 등에는 한계가 있다. SR로 인해 수익성이 약화되면 지방 적자노선부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레일과 SR은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를 경쟁체제로 비유하는 것에 대해 타당성 문제도 제기된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SR은 경쟁회사인데 자회사다. 자회사의 수익 강화가 모회사의 경쟁 악화로 이어진다. 그런데 회사는 배당을 받는 기형적 구조”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SR이 코레일의 보조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철도 민영화의 혐의를 벗어나지 않으려면 SR은 계속 코레일의 자회사로서 통제받아야 한다는 점도 모순이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원은 “철도는 본질적으로 통합 운영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가 20년 만에 통합을 단행했다. 분리해 운영해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레일은 철도청에서 공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철도시설공단과 분리돼 연 수익의 31%를 시설이용료로 철도시설공단에 지불한다. 조직이 분할돼 있어 발생하는 가장 불필요한 비용으로 꼽힌다. 김 위원장은 “만약 신규 노선에 대해 SR을 설립하지 않고, 코레일이 맡았다면 수서-평택 구간에 승무사업소만 설치하면 된다. 그러나 SR을 설립함으로써 사옥 신축, 이사진(5명)의 임금 등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안전이다. 김영훈 위원장의 설명이다. “SR과 코레일은 노선을 공유한다. 어떤 열차에 문제가 생기면 SRT든, KTX든 줄줄이 연착하고 멈출 수밖에 없다. 구의역 사고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19살 청년은 연착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이번 지진 때 김천에서 철로 정비 중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조직이 쪼개지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미룬다. 즉 은폐한다.”

코레일이 2012~2013년 큰 폭의 적자에 허덕인 이유는 용산 개발에 착수했다가 역세권 토지의 대금을 돌려받지 못해 이를 메우는 과정에서 차압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공공성 역할을 담당하는 철도회사에 ‘수익 창출’ 압박이 도리어 발목을 잡은 경우다. SRT 개통과 ‘철도경쟁시대’라는 슬로건, 코레일의 마일리지 부활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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