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재현 운행중인 "날으는 함부르크인" 열차되겠소. 차량 도색은 당시 해당 노선의 특급 도색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알고 있소. 아래 사진은 대만 철도 애호가가 촬영한 뉘른베르크 철도 박물관 보관 차량이오. 동차 형으로 생긴 것이 그 물건이오. 지금은 고속철 시스템 위주로 경쟁의 공이 넘어간 상태지만, 철도에 있어서 속도라는 화두는 매우 골격에 닿은 것이라 할 수 있소. 물론, 네트워크의 충실화와 서비스적 측면을 간과한 속도는 그저 허울뿐인 것일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네트워크의 가치를 올리고 다른 경쟁자와의 대결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가장 본질적인 수요인 속도에 몰입할 수 밖에 없던 것이오. 이러한 속도경쟁은 19세기에 철도가 등장한 시점부터 이미 본격화 되었음은 누차 이야기드린바 있소. 그 중 1920~1930년대의 속도경쟁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기승을 떨치던 유럽에서 특히 본격화 된 바 있소. 2차대전기와 이후의 자동차화 시대라는 긴 암흑기를 앞둔 철도의 마지막 점화라면 점화인 셈이오. 하여간, 당시의 속도경쟁 과정은 지금도 서구측 애호가들의 논쟁거리가 될 정도인데, 이전에 다룬 바 있는 A4형 증기기관차 "맬러드(The Mallard)"의 기록(1938. 7. 3.) 외에도, 미국의 "히와타(Hiawatha; 인디언 추장 이름)" 특급열차 견인기 F7 Class의 추정최고기록(계획속도 160km/h, 최대속도 193km/h), 미국의 디젤동차이자 최초의 스테인레스 동차인 "서풍(Zephyr)"호의 186km/h 기록(1934), 그 외에 독일 증기기관차의 기록 등이 당시에 이미 나온바 있었소. 이 경쟁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 바로 1933년 데뷔한 SVT877 차량되겠소. 독일 철도의 기록에 대해서는 아직 좀더 파 보긴 해야 하는데, 일단 이 SVT877 디젤차 외에도, 제펠린 비행선 용의 엔진과 프로펠러를 이용해 추진해서 230km/h의 속도를 달성한 예도 있다고 하오. 그러나, 실험적인 것이 아닌, 실제 영업을 뛸 수 있는 실용적인 차량으로서는 SVT877이 가진 기록이 당대 최고속이라 할 수 있소. SVT라는 이름은 독일어로 SchnellverkehrsVerbrennungTriebwagen인가를 줄여서 SVT가 되었다고 하오. 의미는 "고속교통용 내연기관 동차" 라는 의미라고 하오. 이 차량은, 그 이름에 걸맞게 초기에 개념적인 설계에서부터 상당히 공을 들인 물건이라고 하오. 당대에 흔히 쓰이던 증기 대신에 디젤기관, 그것도 디젤전기식 추진장치를 본격적으로 채용을 했고, 또 대차도 연접대차를 사용하였소. 아울러, 열차의 디자인도 과거와 달리 본격적인 공력 설계를 적용했는데, 단순히 외관을 다듬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항공기 내지 비행선 설계에 쓰이던 풍동실험까지 하면서 차량의 외관을 설계했다고 전해지오. 물론, 고속화에 필수적인 경량화도 병행하였고 말이오. 특히, 이 차량의 구동계는 독특하게 디자인 되어 있는데, 2량 편성의 연접구조에서, 양 끝단, 선두와 후미의 대차에는 410마력짜리 마이바흐 디젤 엔진이 하나씩 탑재되어 있었다고 하오. 그리고, 이 디젤엔진의 구동력은 전기로 변환되어서 중앙 연접대차에 탑재된 2개의 모터 중 가까운 쪽 모터에 제공되는 방식을 취했다고 하오. 즉 2-B-2 휠 배치를 가진다고 보면 되겠소. 그럼에도, 이 2량 연접편성 전체의 중량이 당시의 어지간한 증기기관차들 보다 경량인 78톤이었다고 하며, 심지어 공인된 시험 최고속도 198.5km/h, 그리고 상업운행속도 160km/h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하오. 이 열차는 그 우수한 성능에 걸맞게, 특급 열차로 투입이 되오. 그 제1착은 이 녀석의 별명처럼 굳어진 베를린-함부르크 간 특급에 투입되오. 두 도시간의 영업거리는 286.6km 였는데, 140분만에 이 거리를 주파했다고 하오. 표정속도로 본다면 초기 고속철도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 할 수 있소. 이후 베를린-프랑크푸르트간, 베를린-콜로뉴, 베를린-뮌헨, 콜로뉴-함부르크 간에도 동 형식의 차량이 투입되어 특급 영업을 했다고 하오. 표정 속도로 120km/h를 넘는 열차를 정기 운행한 건 거의 세계 최초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는 않다고 하오. 그러나, 전쟁의 암운은 이런 서비스를 지속하지 못하게 하였소. 아시다시피, 2차대전 당시에 독일은 석유 수급 문제가 심각했는데, 그 때문에 석유를 대량으로 소모하는 이런 열차는 쓰일 수 없게 되었소. 또한, 독일 내부의 교통 사정도 군사용 트래픽의 증가, 전략폭격 등으로 인해서 이런 특급을 굴릴만큼 여유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말이오. 결국 다시 등장하게 된건 전쟁 종결 이후의 일이었다고 하오. 이후 전후 복구 과정에서 이런걸 굴리는 것도 거의 어려웠었는데, 그래도 일단 어느정도 복구가 완료된 시점에서 전기구동식이 아닌 유압구동식으로 개조를 하여 잠시 현업에 등장하지만, 1959년 부로 모두 은퇴하였다고 하오. 박물관의 차량은 초대 차량을 다시 원상복구를 한 것이라고 하오. 내연기관의 활용에 있어서 이 녀석은 상당히 기록적인 물건이라 할 수 있는데, 일부 디젤 동차가 실용화 되기도 하고, 또 디젤기관차의 활용도 점차 시작된 시점이었지만 본격적인 특급 영업용으로 사용된 예는 별로 없었소. 디젤기관차 역시도 본선 용도가 아닌 대개 입환용도로 이용되는 상황이었소. 그러나, 고속, 그리고 고성능의 특급차로서 사용할 수 있음을, 그것도 기관차 견인이 아닌 동차를 사용해서 입증해 보였고,또 1930년대의 속도경쟁의 효시를 올렸던 역사적인 차량이라 할 수 있소. P.S.: 이번에 누출 문제로 상당히 시끄럽소. 해당 문제는 당사자가 책임을 질 일이지, 여기서 따로 뒷다마를 깔 이야기는 아닌 듯 하오. 관련자들, 특히 문제제기한 측과, 해명 당사자 측이 소속된 클럽에서 알아서 할 일이오. 다만, 보안이나 기업 내부정보를 가지고(오픈이 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공표 의지가 없었다는 건 이게 내부정보적인 성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이오)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입장이나, 그걸 또 마음에 안든다고 공공연하게 터뜨린 입장 모두가 좀 사려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소. 이런 누출 사고 터지면 동호인들이 욕먹는건 물론이고, 사업자의 정책이나 태도도 적대적이 되기 싶소. 아울러, 이게 어떤 화제로서 계속 확대되면 그것도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되오. 뭐...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 일을 키운 건, 이걸 가지고 민원에다 헛소리를 올린 어떤 철싸대 되겠소. 차라리 어디서 이런게 누출되었는데 괜찮은거냐 라고 물었다면 차라리 개념있다 하겠소. 그러나, 그게 아니라 열차가 뭐가 어떻고 하는 뻘소리를 올렸다는 건 참... 정신 상태의 문제가 있다고 보이오. 이쪽 바닥의 저변이 확대될수록 이런 문제는 확대 일로가 될텐데 참 우려되는 일이오. 저런 치들은 축출해버린다고 해서 사고 안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