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리가 고구려의 순우리말로 "세계의 중심지" 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과거에 태왕사신기 등을 비롯한 모든 고구려 드라마에는
<가오리> 라는 고구려의 호칭이 들어갑니다
저는 충격이어서 더 자세히 알아보니
백제도 순우리말로는 "밝지" 라고 했다는 군요 "밝은 땅" 이라는 의미지요
그럼 왜 갑자기 강북구 수유동에 과거에 가오리의 지명이 있었는가?
많은 학자들은 다들 가까운 조선시대의 흔적만 찾기 바쁩니다
그래서 오리를 더가라고 했기에 생긴 지명이라는 엉뚱한 해석만 하지요
왜냐하면 현재 쓰고있는 한자 지명은 다섯오자니까요
근데 이는 고구려의 후세인 조선시대나 일제시대에 변질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보다는 소수의 학자들 주장이지만
고구려의 남평양성이 있던 곳이기에 가오리 라는 지명이 남아있다는 해석이
더 역사적인 신빙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그 덕분에 역사적으로 더 깊이 연구하면서 알게 된 것은~~
1. 백제가 처음 시작한 하북위례성이 있던 곳이 이곳 수유동 가오리였다는 것입니다
2. 이후에 백제는 고구려의 위협으로 수도를 하남위례성인 송파로 옮깁니다
3. 백제의 13대 근초고왕은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하여 다시 수도를 하북위례성으로 옮깁니다
즉, 근초고왕은 수도를 수유동 가오리로 다시 옮긴 것입니다
4. 이후에 광개토 태왕은 백제를 정복한 이후에 이곳을 남평양성으로 정합니다
5. 그 때부터 고구려의 중심부대가 여기에 오래 있었기에 가오리가 지명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6. 이후에 신라의 진흥왕은 서울을 빼앗아서 이곳을 제2의 수도로 하고 "신주" -새로운 땅- 이라고 지었다고 하더군요
7. 일제 시대까지도 서울 사람들은 북한산을 백한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흔적은 수유동의 많은 독립유공자들과 애국지사들의
묘비를 보면 전부다 <백한산> 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데 수유동에서 사방의 산들을 보면 정말 북한산은 정상은 백한산답게 백호의 모습을 한 돌산입니다
그렇게 보니 도봉산은 현무산이고 수락부람산은 청룡산의 모습을 했지요 그리고 지금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정릉개운산 일대가 바로 주작산의 모습을 했습니다
이것이 외4방 산이라면 내4방산은 지금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서방의 인수산과 동방의 초안산과 남방의 오패산과 북방의 상운산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참으로 신기한 것은 풍수와 역사의 흔적이 뱅뱅 돌고 돌아서
지금 이 곳 수유동에 이들의 흔적이 모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구려의 흔적은 <가오리> 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고요
백제의 흔적인 <하북위례성>은 <강북구>라는 지명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신라의 흔적인 "신주" 는 "신일중고" 라는 학교의 이름을 통해서 남게 된 듯합니다
따라서 이곳 가오리역 생길 곳과 가오리 일대는
백제의 수도였고, 고구려의 제2의 수도였으며, 신라의 제2의 수도였습니다
다만 이런 사실 조차도 우리의 국사 교육 시간이 적고, 국사 책이 얇기 때문에
자세하게 배우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1500년이 지난 현대의 후손들이
<가오리> 라는 지명의 의미조차도 몰라서
후세의 조선과 일제가 마음대로 한자도 바꾸면서 지어준 지명으로 여기며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조상들이
원통하게 여길 사실로 보여집니다
우리 모두 <가오리>라는 지명과 <가오리역> 이라는 역 이름에
자부심을 가집시다
이 글의 가치는 고교 졸업 후에도 역사 공부와 연구를 꾸준히 한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역사학 석사 이상에서 듣는 지식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역사학과를 나와서 잘 알지요
만약 역사학자가 아니시라면
역사 천재인 노인이라고 할 수 있죠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의 가치는 고교 졸업 후에도 역사 공부와 연구를 꾸준히 한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정확히 나오죠 근초고왕이 하북위례성으로 다시 수도를 옮긴 것에 대하여 학계는
학자들은 지금의 송파구 일대의 하남위례성으로는 고구려 북벌과 그 이후를 대비하기 힘들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봅니다
온조대왕이 백제를 처음 세운 곳은 지금의 송파구 하남위례성이 아닙니다
삼국사기에도 나오듯이 온조가 처음 백제를 세운 곳은 하북위례성입니다
다만 하북위례성에 대하여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것이지요
현재 학계는 하북위례성의 위치를 수유동과 우이동 일대로 봅니다
경기 북부로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거기는 송파구의 하남위례성과 너무 멀어서
삼국사기의 하북위례성과 하남위례성은 멀지 않았던 것으로 나옵니다
하여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실테니 이쯤에서 넘어가지요
삼국사기에 나온 대로 정확히 말씀하셨네요
또한 그 이후에 대한 언급도 모두 역사지식이 맞습니다
전체적으로 삼국사기에 나온대로 정확히 언급했고 그 이후의 역사도 역사서들에 맞게 서술하셨어요
위인전에도 올라있는 일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도 고구려의 국호에 문제를 제기하셨지요
바로 그것을 여기서 언급하셨습니다 다만 가오리의 한자는 후기에 조선시대에 와서 변형시켰다고 보시는군요
즉 "가오리" 라는 지명은 삼국시대부터 백성들 사이에 가오리로 남아있었다가
나중에 조선시대에 와서 한문이 변화되고 의미도 바뀌었다고 보시는 입장입니다 가능성도 높지요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고구려"라는 우리가 부르는 국호는 그 한문을 신라식으로 읽은 것이고 같은 한문을 고구려식으로 발음하여 읽으면 "가오리" 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나라의 역사 학자들은 대부분 맞다고 봅니다
다만 경상도계열의 학자들 그소수가 아니라고 주장하지요
그들 극소수는 신라에 대한 자부심만 강한 분들이라서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위인전에 오른 위대한 분이십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알았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고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그래서 일본은 중국과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조선사편수회를 통한 역사 왜곡입니다
그래서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가오리" 또는 "가우리" 라고 우리가 표기를 하고 그렇게 읽는 것을 잃지 않는 것이
중국 북부의 고구려의 후손들과 통하는 길이라고 하셨죠
이 노인 분은 정말 아무래도 역사학자이신 듯 합니다
하북위례성의 위치는 학자들이 보통 우이동과 수유동 일대로 봅니다 그것까지 정확하시네
이 사실은 국사학과를 졸업한 평범한 학부 학생들도 모르는 지식입니다 석사나 박사까지 가야 접할 수 있는 지식인데
무슨 과목이든지 학부는 공부의 깊이가 얕습니다 역사학과도 마찬가지죠
왜냐하면 취업도 준비해야하는 대학생 학부에서는 어렵고 깊은 지식과 정보는 다루지 않습니다
백한산에 대한 언급은 제가 직접 수유동과 우이동의 북한산 인근 약수터가는 길에서
립유공자 묘소들의 비문들을 직접 제가 걸어다니며 확인해보았더니 맞더군요
저는 역사 학도라서 직접 돌아다니며 봤습니다
저희 집이 잘사는 편이라서
먹는 것은 아무 걱정없이 역사 연구와 현장에 다닙니다
저희 가문이 독립운동가 집안이라서
그걸 다 이 노인 분이 보신 듯 해요
이 노인 분 말이 맞더군요 정말 비문들에 흰백과 한나라한 과 산산 의 한문이 적혀있는 것을 봤습니다
지금도 누구나 볼 수 있죠
시간 있으신 분들은 직접 보시죠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다고 찾아보지 않습니다
저는 역사학자의 길을 가려하는 사람이기에 그래서 직접 찾아봤습니다
모든 면에서 나이 먹으신 역사학자이신 듯 합니다 보통 역사학과 학부 졸업한 사람도 모르는 지식과 정보까지 아시다니
특히나 북한산과 삼각산으로만 알고 있던 저에게 백한산에 대한 언급은 충격이었어요
이건 현재 역사학계도 언급을 안하는 지식인데
몰라서 안 하거나 아는데 모르는 척을 하거나
제가 보기엔 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귀찮거든요
대부분의 교수님들과 학생들은 문화재 관리하기도 바빠서 현장가서 비문 보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 역사학도와 학자들이 지금보다 많아야 옳지요
하여튼 역사를 전공한 저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그건 바로 일제시대와 해방 초기까지도 백한산으로 불렸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북한산을 북쪽의 방위산이 아닌 백한산으로 서쪽의 방위로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동쪽이 청용이고 서쪽이 백호이고 남쪽이 주작이고 북쪽이 현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쪽산을 청용산 서쪽은 백호산 남쪽은 주작산 북쪽은 현무산으로 불렀으며
따라서 동을 청한산 서를 백한산 남을 주한산 북을 현한산 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높죠
일부는 이것이 중국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아닙니다
이는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가야의 무덤 양식에서 항상 과거부터 등장했습니다
나아가 고조선의 양식에도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현재 한반도에는 고조선의 단군들 무덤음 거의 없습니다
그 많던 삼한조선의 단군들 묘소가 다 어디이
어디에 있을까요? 당연히 중국이죠
중국에 있습니다 그럼 전부 중국의 것일까요?
아닙니다! 현재의 중국과 우리가 같이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공동의 유산입니다
다시 백한산에 대한 언급으로 돌아오죠
즉 조선시대 궁궐 사람들은 북한산이라고 불렀지만 백성들은 백한산으로 불렀기에 해방 후까지도 백한산으로 비석들마다 기록이 된 것이지요
근데 우리의 역사 연구는 주로 왕과 귀족에 집중되어 있고 백성에 대한 연구는 적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서 백한산에 대한 명칭 연구가 게을리 된 듯 해요
그만큼 아직도 우리의 역사 연구는 허접합니다
그것은 역사학도인 저도 인정합니다
역사학도들이 중심이되어 교수님들과 풀어갈 숙제
어쩌면 모든 국민이 다 함께 풀어갈 숙제
뭐 그렇게 볼 수 있죠
북한산과 삼각산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학도인 저도 접하지 못한 자료이기에 놀랐어요
향후에 백한산에 대한 언급은 역사 교과서에 실려야 합니다
반드시 우리 교과서에 넣어서 조상들의 사고방식이 어떠했는지 가르쳐야죠
결론적으로 이 글을 쓴 노인분은 역사학자이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렇습니다 다만 평범한 사람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역사는 고교까지만 공부하고 나온 역사의 겉만 외운 사람은 이런 것들을 모르지요
우리 국사 교과서는 역사를 외우게만 하는 교육이죠 이게 다 일본에 의해 생긴 역사교육 방식이라
그래서 모르다보니 자기가 외운 지식과 다르게 느껴지면 무조건 비정상으로 모는데 그건 착각입니다
보다는 자신의 역사 지식이 짧았던 것과 우리의 역사 교육의 잘못을 지적하는 게 옳지요
결론적으로 이 노인은 역사학자로 계시다가
은퇴하신 원로 역사 교수님이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말 누구신지 궁금하네요
취미생활로 하시는지
갖고 계신 역사 지식의 극소수를 취미로
방출하신듯 합니다
표출하신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