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 신설선 즉 우이 신설 경전철은 풍수로 보면
드디어 서울이라는 봉황의 머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미원국의 기초가 드디어 놓여지는 것입니다
자미원국은 천년을 가는 수도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황제의 자리이며 천하를 다스릴 황제가
태어나고 또한 나중에 수도로 정할 자리입니다
그 땅이 바로 가오리인데
특이한 것은 바로 근처에 자미원시장도 있다는 겁니다
사실 소수만 아는 역사적인 비밀이 있다면
그것은 무학의 꿈에 나타난 신이
무학에게 궁궐을 세우라고 말한 방향은 서북방이 아닌
동북방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 땅이 자미원국의 땅이라고
신이 말했지요
그럼에도 무학은 서북방으로 가서
궁궐을 세웠습니다
이는 분명히 무학이 잘못했던지
혹은 무학의 말을 조선의 제자들이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서북방으로 가서 지금의
조선 궁궐을 세웠기에
조선은 자미원국의 땅에 궁궐을 세우지 못했고
그래서 천년이 아닌 500년 밖에 못 간 것입니다
그럼 신이 무학에게 말한 땅이 어디일까요???
그것은 많은 비기에도 나오듯이
<서북방은 사기의 차가운 기운이 불어오니
항시 서북방을 높은 산으로 막은 곳에
궁궐을 세우고 매일 하늘에 천제를 올리라>
라는 것이 지켜지는 땅입니다
그 땅이 바로 가오리입니다
저의 자녀가 말하더군요
대기오염 측정 사이트로 보면
항시 서울에서 가장 공기가 깨끗한 땅이
바로 가오리의 땅이라고 말입니다
가오리가 대체 무엇이기에????
가오리는
고구려의 순우리말로 "세계의 중심지" 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과거에 태왕사신기 등을 비롯한 모든 고구려 드라마에는
<가오리> 라는 고구려의 호칭이 들어갑니다
저는 충격이어서 더 자세히 알아보니
백제도 순우리말로는 "밝지" 라고 했다는 군요 "밝은 땅" 이라는 의미지요
그럼 왜 갑자기 강북구 수유동에 과거에 가오리의 지명이 있었는가?
많은 학자들은 다들 가까운 조선시대의 흔적만 찾기 바쁩니다
그래서 오리를 더가라고 했기에 생긴 지명이라는 엉뚱한 해석만 하지요
왜냐하면 현재 쓰고있는 한자 지명은 다섯오자니까요
근데 이는 고구려의 후세인 조선시대나 일제시대에 변질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보다는 소수의 학자들 주장이지만
고구려의 남평양성이 있던 곳이기에 가오리 라는 지명이 남아있다는 해석이
더 역사적인 신빙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그 덕분에 역사적으로 더 깊이 연구하면서 알게 된 것은~~
1. 백제가 처음 시작한 하북위례성이 있던 곳이 이곳 수유동 가오리였다는 것입니다
2. 이후에 백제는 고구려의 위협으로 수도를 하남위례성인 송파로 옮깁니다
3. 백제의 13대 근초고왕은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하여 다시 수도를 하북위례성으로 옮깁니다
즉, 근초고왕은 수도를 수유동 가오리로 다시 옮긴 것입니다
4. 이후에 광개토 태왕은 백제를 정복한 이후에 이곳을 남평양성으로 정합니다
5. 그 때부터 고구려의 중심부대가 여기에 오래 있었기에 가오리가 지명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6. 이후에 신라의 진흥왕은 서울을 빼앗아서 이곳을 제2의 수도로 하고 "신주" -새로운 땅- 이라고 지었다고 하더군요
7. 일제 시대까지도 서울 사람들은 북한산을 백한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흔적은 수유동의 많은 독립유공자들과 애국지사들의 묘비를 보면 전부다
<백한산> 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데 수유동에서 사방의 산들을 보면 정말 북한산은 정상은 백한산답게 백호의 모습을 한 돌산입니다
그렇게 보니 도봉산은 현무산이고 수락부람산은 청룡산의 모습을 했지요 그리고 지금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정릉개운산 일대가 바로 주작산의 모습을 했습니다
이것이 외4방 산이라면 내4방산은 지금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서방의 인수산과 동방의 초안산과 남방의 오패산과 북방의 상운산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참으로 신기한 것은 풍수와 역사의 흔적이 뱅뱅 돌고 돌아서
지금 이 곳 수유동에 이들의 흔적이 모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구려의 흔적은 <가오리> 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고요
백제의 흔적인 <하북위례성>은 <강북구>라는 지명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신라의 흔적인 "신주" 는 "신일중고" 라는 학교의 이름을 통해서 남게 된 듯합니다
따라서 이곳 가오리역 생길 곳과 가오리 일대는
백제의 수도였고, 고구려의 제2의 수도였으며, 신라의 제2의 수도였습니다
다만 이런 사실 조차도 우리의 국사 교육 시간이 적고, 국사 책이 얇기 때문에
자세하게 배우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1500년이 지난 현대의 후손들이
<가오리> 라는 지명의 의미조차도 몰라서
후세의 조선과 일제가 마음대로 한자도 바꾸면서 지어준 지명으로 여기며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조상들이
원통하게 여길 사실로 보여집니다
우리 모두 바른 역사를 알아서
<가오리>라는 지명과 <가오리역> 이라는 역 이름에
자부심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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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이 글을 쓴 분이 노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깊은 역사지식을 갖고 계시더군요
전체적으로 틀린 부분은 없습니다 공기에 대한 언급도 공기사이트로 보면 맞더군요
이 글의 가치는 고교 졸업 후에도 역사 공부와 연구를 꾸준히 한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역사학과를 나와서 잘 알지요
만약 역사학자가 아니시라면
역사 천재인 노인이실 수도 있지요
이 글이 아닌 다른 글에 달린 과거의 댓글을 통해 이 분이 노인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의 가치는 고교 졸업 후에도 역사 공부와 연구를 꾸준히 한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정확히 나오죠 근초고왕이 하북위례성으로 다시 수도를 옮긴 것에 대하여 학계는
학자들은 지금의 송파구 일대의 하남위례성으로는 고구려 북벌과 그 이후를 대비하기 힘들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봅니다
삼국사기에 나온 대로 정확히 말씀하셨네요
또한 그 이후에 대한 언급도 모두 역사지식이 맞습니다
전체적으로 삼국사기에 나온대로 정확히 언급했고 그 이후의 역사도 역사서들에 맞게 서술하셨어요
위인전에도 올라있는 일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도 고구려의 국호에 문제를 제기하셨지요
"고구려"라는 우리가 부르는 국호는 한문을 신라식으로 읽은 것이고 같은 한문을 고구려식으로 읽으면 "가오리" 가 된다고
그래서 "가오리" 또는 "가우리" 라고 우리가 표기를 하고 그렇게 읽는 것이 중국 북부의 고구려의 후손들과 통하는 길이라고 하셨죠
이 노인 분은 정말 아무래도 역사학자이신 듯 합니다
하북위례성의 위치는 학자들이 보통 우이동과 수유동 일대로 봅니다 그것까지 정확하시네
이 사실은 국사학과를 졸업한 평범한 학부 학생들도 모르는 지식입니다 석사나 박사까지 가야 접할 수 있는 지식인데
무슨 과목이든지 학부는 공부의 깊이가 얕습니다 역사학과도 마찬가지죠
왜냐하면 취업도 준비해야하는 대학생 학부에서는 어렵고 깊은 지식과 정보는 다루지 않습니다
백한산에 대한 언급은 제가 직접 수유동과 우이동의 북한산 인근 약수터가는 길에서
독립유공자 묘소들의 비문들을 직접 제가 걸어다니며 확인해보았더니 맞더군요
그걸 다 보신듯 해요
걸 다 이 노인 분이 보신 듯 해요
이 노인 분 말이 맞더군요 정말 비문들에 흰백과 한나라한 과 산산 의 한문이 적혀있는 것을 봤습니다
지금도 누구나 볼 수 있지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다고 안 찾아보는데 저는 역사학자의 길을 가려하는 사람이기에 그래서 직접 찾아봤습니다
모든 면에서 나이 먹으신 역사학자이신 듯 합니다 보통 역사학과 학부 졸업한 사람도 모르는 지식과 정보까지 아시다니
북한산과 삼각산으로만 알고 있던 저에게 백한산에 대한 언급은 충격이었어요
역사를 전공한 저도 몰랐던 사실
일제시대와 해방 초기까지도 백한산으로 불렸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북한산을 북쪽의 방위산이 아닌 백한산으로 서쪽의 방위로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동쪽이 청용이고 서쪽이 백호이고 남쪽이 주작이고 북쪽이 현무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역사학계에서 조차도 잘 언급이 되지 않는 역사적 지식입니다
즉 궁궐 사람들은 북한산이라고 불렀지만 백성들은 백한산으로 불렀기에 해방 후까지도 백한산으로 비석들마다 기록이 된 것이지요
근데 우리의 역사 연구는 주로 왕과 귀족에 집중되어 있고 백성에 대한 연구는 적습니다
북한산과 삼각산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학도인 저도 접하지 못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는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도 넣어야 할 언급해야 할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역사학계에서 조차도 잘 언급이 되지 않는 중요한 역사적 지식입니다
론적으로 이 글을 쓴 노인분은 역사학자이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글에 대하여 역사 전문가는 발로 뛰면서 정확한 자료를 찾습니다 제가 그렇게 했기에 이 분의 글이 많은 부분 참인 것을 확증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렇습니다 다만 평범한 사람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역사는 고교까지만 공부하고 나온 역사의 겉만 외운 사람은 이런 것들을 모르지요
그래서 모르다보니 자기가 외운 지식과 다르게 느껴지면 무조건 비정상으로 모는데 그건 착각입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역사 지식이 짧았던 것과 우리의 역사 교육의 잘못을 지적하는 게 옳지요
역사와 동양철학을 올바로 아는 사람은 이 노인의 글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보통 평범한 사람은 청용 백호 주작 현무도 뭔지 모르거든요 그게 우리의 전통 동양사상과 연관된 것인지도 모르구요
일부는 풍수와 동양사상을 미신으로 보는데 그건 모르는 소리입니다 서양도 다 풍수를 따지거든요
미국의 워싱턴DC 도 풍수에 맞추어진 도시고 동양사상을 따라해서 세워진 도시입니다
역사를 전공한 제가 보기에는 확실히 다 자료와 근거가 있는 맞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제가 역사 전공자임에도 놀랐던 사실은
바로 백한산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한산과 삼각산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학도인 저도 접하지 못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제시대와 해방 초기까지도 백한산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입니다
또한 북한산을 북쪽의 방위산이 아닌 백한산으로 서쪽의 방위로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쪽이 청용이고 서쪽이 백호이고 남쪽이 주작이고 북쪽이 현무이기 때문입니다
즉 궁궐은 북한산이라고 불렀지만 백성들은 백한산으로 불렀기에 해방 후까지도 백한산으로 비석들마다 기록이 된 것이지요
이는 대부분의 역사학계에서 조차도 잘 언급이 되지 않는 중요한 역사적 지식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을 쓴 노인분은 역사학자이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인이시니 분명 물러나신 상태에서 취미로 하시는 듯 합니다
노인 분이 쓰셨구나
이 노인 분 정말 역사 전문가시네요
이 글의 가치는 고교 졸업 후에도 역사 공부와 연구를 꾸준히 한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역사학 석사 이상에서 듣는 지식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역사학과를 나와서 잘 알지요
삼국사기에 정확히 나오죠 근초고왕이 하북위례성으로 다시 수도를 옮긴 것에 대하여 학계는
학자들은 지금의 송파구 일대의 하남위례성으로는 고구려 북벌과 그 이후를 대비하기 힘들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봅니다
삼국사기에 나온 대로 정확히 말씀하셨네요
또한 그 이후에 대한 언급도 모두 역사지식이 맞습니다
전체적으로 삼국사기에 나온대로 정확히 언급했고 그 이후의 역사도 역사서들에 맞게 서술하셨어요
위인전에도 올라있는 일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도 고구려의 국호에 문제를 제기하셨지요
"고구려"라는 우리가 부르는 국호는 한문을 신라식으로 읽은 것이고 같은 한문을 고구려식으로 읽으면 "가오리" 가 된다고
그래서 "가오리" 또는 "가우리" 라고 우리가 표기를 하고
그렇게 읽는 것이 중국 북부의 고구려의 후손들과 통하는 길이라고 하셨죠
이 노인 분은 정말 아무래도 역사학자이신 듯 합니다
하북위례성의 위치는 학자들이 보통 우이동과 수유동 일대로 봅니다 그것까지 정확하시네
이 사실은 국사학과를 졸업한 평범한 학부 학생들도 모르는 지식입니다 석사나 박사까지 가야 접할 수 있는 지식인데
무슨 과목이든지 학부는 공부의 깊이가 얕습니다 역사학과도 마찬가지죠
왜냐하면 취업도 준비해야하는 대학생 학부에서는 어렵고 깊은 지식과 정보는 다루지 않습니다
백한산에 대한 언급은 제가 직접 수유동과 우이동의 북한산 인근 약수터가는 길에서
제가 봤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지요
독립유공자 묘소들의 비문들을 직접 제가 걸어다니며 확인해보았더니 맞더군요
그걸 다 이 노인 분이 보신 듯 해요
이 노인 분 말이 맞더군요 정말 비문들에 흰백과 한나라한 과 산산 의 한문이 적혀있는 것을 봤습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다고 안 찾아보는데 저는 역사학자의 길을 가려하는 사람이기에 그래서 직접 찾아봤습니다
모든 면에서 나이 먹으신 역사학자이신 듯 합니다 보통 역사학과 학부 졸업한 사람도 모르는 지식과 정보까지 아시다니
북한산과 삼각산으로만 알고 있던 저에게 백한산에 대한 언급은 충격이었어요
역사적 충격이죠
과거의 진실이 미래의 잘못된 지식을 암기한 사람과 만났을 때
조우했을 때의 그 충격은
우주적인 충격입니다 말 그대로 우주소녀
역사를 전공한 저도
백한산에 대하여 몰랐습니다
일제시대와 해방 초기까지도 백한산으로 백성들에게 불렸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북한산을 북쪽의 방위산이 아닌 백한산으로 서쪽의 방위로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동쪽이 청용이고 서쪽이 백호이고 남쪽이 주작이고 북쪽이 현무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역사학계에서 조차도 잘 언급이 되지 않는 역사적 지식입니다
즉 궁궐 사람들은 북한산이라고 불렀지만 백성들은 백한산으로 불렀기에 해방 후까지도 백한산으로 비석들마다 기록이 된 것이지요
이는 대부분의 역사학계에서 조차도 잘 언급이 되지 않는 중요한 역사적 지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