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의 꿈에 나타난 신이
무학에게 궁궐을 세우라고 말한 방향은 서북방이 아닌
동북방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지요
바로 그 땅이 자미원국의 땅이라고
신이 말했지요
그럼에도 무학은 서북방으로 가서
궁궐을 세웠습니다
이는 분명히 무학이 잘못했던지
혹은 무학의 말을 조선의 신하들이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서북방으로 가서 지금의
조선 궁궐을 세웠기에
조선은 자미원국의 땅에 궁궐을 세우지 못했고
그래서 천년이 아닌 500년 밖에 못 간 것입니다
그럼 신이 무학에게 말한 땅이 어디일까요???
그것은 많은 비기에도 나오듯이
<서북방은 사기의 차가운 기운이 불어오니
항시 서북방을 높은 산으로 막은 곳에
궁궐을 세우고 매일 하늘에 천제를 올리라>
라는 것이 지켜지는 땅입니다
그 땅이 바로 가오리입니다
저의 자녀가 말하더군요
대기오염 측정 사이트로 보면
항시 이 땅이 가장 공기가 맑다고 하더군요
중국 미세먼지가 오면
강남이 미세먼지 수치 100마이크로 일때에
이 땅은 미세먼지 수치 40마이크로 정도라고요
심하게 차이날 때에는 3배나 4배가 차이나는 경우도 있어요
서울이 전부 대기오염 심각할 때에
이 땅은 사방의 산에서 맑은 산공기가 내려와서 정화시켜 주거든요
그래서 가오리의 땅인 강북구는
5년 전에 서울시에서 공기가 제주도보다 더 좋아서
표창도 받았던 그런 곳입니다
강남권은 미세먼지 측정기가 공원이나 산에 일부러 만들어서
좋은 척으로 강남사는 시민들을 속이기도 한답니다
대표적으로 송파구는 측정기가 올림픽공원 안에 있거든요
물론 강남권이 아닌 다른 구도 그런 곳들이 있을 겁니다
반면에 가오리가 속한 강북구는
공기 질도 자신감이 있으니까
공기 측정기가 8차선 수유역에 떡하니 있거든요
서울에서 가장 공기가 깨끗한 땅이
바로 가오리의 땅이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올림픽 공원의 나무에 있는 공기측정기보다도
강북구의 8차선 대로변에 있는 공기측정기의 수치가
심지어는 3분의 1까지도 낮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가오리가 대체 무엇이기에????
가오리는
고구려의 순우리말로 "세계의 중심지" 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과거에 태왕사신기 등을 비롯한 모든 고구려 드라마에는
<가오리> 라는 고구려의 호칭이 들어갑니다
저는 충격이어서 더 자세히 알아보니
백제도 순우리말로는 "밝지" 라고 했다는 군요 "밝은 땅" 이라는 의미지요
그럼 왜 갑자기 강북구 수유동에 과거에 가오리의 지명이 있었는가?
많은 학자들은 다들 가까운 조선시대의 흔적만 찾기 바쁩니다
그래서 오리를 더가라고 했기에 생긴 지명이라는 엉뚱한 해석만 하지요
왜냐하면 현재 쓰고있는 한자 지명은 다섯오자니까요
근데 이는 고구려의 후세인 조선시대나 일제시대에 변질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보다는 소수의 학자들 주장이지만
고구려의 남평양성이 있던 곳이기에 가오리 라는 지명이 남아있다는 해석이
더 역사적인 신빙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그 덕분에 역사적으로 더 깊이 연구하면서 알게 된 것은~~
1. 백제가 처음 시작한 하북위례성이 있던 곳이 이곳 수유동 가오리였다는 것입니다
2. 이후에 백제는 고구려의 위협으로 수도를 하남위례성인 송파로 옮깁니다
3. 백제의 13대 근초고왕은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하여 다시 수도를 하북위례성으로 옮깁니다
즉, 근초고왕은 수도를 수유동 가오리로 다시 옮긴 것입니다
4. 이후에 광개토 태왕은 백제를 정복한 이후에 이곳을 남평양성으로 정합니다
5. 그 때부터 고구려의 중심부대가 여기에 오래 있었기에 가오리가 지명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6. 이후에 신라의 진흥왕은 서울을 빼앗아서 이곳을 제2의 수도로 하고 "신주" -새로운 땅- 이라고 지었다고 하더군요
7. 일제 시대까지도 서울 사람들은 북한산을 백한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흔적은 수유동의 많은 독립유공자들과 애국지사들의 묘비를 보면 전부다
<백한산> 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데 수유동에서 사방의 산들을 보면 정말 북한산은 정상은 백한산답게 백호의 모습을 한 돌산입니다
그렇게 보니 도봉산은 현무산이고 수락부람산은 청룡산의 모습을 했지요 그리고 지금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정릉개운산 일대가 바로 주작산의 모습을 했습니다
이것이 외4방 산이라면 내4방산은 지금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서방의 인수산과 동방의 초안산과 남방의 오패산과 북방의 상운산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참으로 신기한 것은 풍수와 역사의 흔적이 뱅뱅 돌고 돌아서
지금 이 곳 수유동에 이들의 흔적이 모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구려의 흔적은 <가오리> 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고요
백제의 흔적인 <하북위례성>은 <강북구>라는 지명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신라의 흔적인 "신주" 는 "신일중고" 라는 학교의 이름을 통해서 남게 된 듯합니다
따라서 이곳 가오리역 생길 곳과 가오리 일대는
백제의 수도였고, 고구려의 제2의 수도였으며, 신라의 제2의 수도였습니다
다만 이런 사실 조차도 우리의 국사 교육 시간이 적고, 국사 책이 얇기 때문에
자세하게 배우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1500년이 지난 현대의 후손들이
<가오리> 라는 지명의 의미조차도 몰라서
후세의 조선과 일제가 마음대로 한자도 바꾸면서 지어준 지명으로 여기며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조상들이
원통하게 여길 사실로 보여집니다
우리 모두 바른 역사를 알아서
<가오리>라는 지명과 <가오리역> 이라는 역 이름에
자부심을 가집시다
대부분 처음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게 바로 허접한 역사 교육의 산물이지요.
현재 학계는 하북위례성의 위치를 수유동과 우이동 일대로 봅니다
삼국사기에 나온 대로 정확히 말씀하셨네요
또한 그 이후에 대한 언급도 모두 역사지식이 맞습니다
전체적으로 삼국사기에 나온대로 정확히 언급했고 그 이후의 역사도 역사서들에 맞게 서술하셨어요
위인전에도 올라있는 일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도 고구려의 국호에 문제를 제기하셨지요
바로 그것을 여기서 언급하셨습니다 다만 가오리의 한자는 후기에 조선시대에 와서 변형시켰다고 보시는군요
즉 "가오리" 라는 지명은 삼국시대부터 백성들 사이에 백제와 고구려의 옛성이 있었기에 오랜 세월동안 가오리로 남아있었다가
나중에 조선시대에 와서 한문이 변화되고 의미도 바뀌었다고 보시는 입장입니다 가능성도 높지요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위인전에도 올라 계신 위대한 분이십니다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고구려"라는 우리가 부르는 국호는 그 한문을 신라식으로 읽은 것이고 같은 한문을 고구려식으로 발음하여 읽으면 "가오리" 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나라의 역사 학자들은 대부분 맞다고 봅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다만 경상도계열의 학자들 극소수가 아니라고 주장하지요
그들 극소수는 신라에 대한 자부심만 강한 분들이라서
즉 신라의 영토와 흔적을 넓혀서 주장하는 사람들이라서
신채호 선생님의 언급을 개무시하는 경우가 많지요
일제시대에 일본이 알았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고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그래서 일본은 중국과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조선사편수회를 통한 역사 왜곡입니다
그래서 국사교육을 시작하신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아 방금 전 것은 잘못친 겁니다
그것이 바로 조선사편수회를 통한 역사 왜곡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런 것을 이용하는 수법입니다
고구려의 영토를 제대로 알려면 중국에서도 “가오리” 라는 지명이 들어간 지역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구려 사람들도 자기나라를 “가오리”라고 했고, 중국도 “가오리” 라고 했으니까요
제가 그래서 찾다가 보면 심지어 중국의 서북쪽에서도 “가오리” 의 지명이 있지요
그래서 국사교육을 시작하신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가오리" 또는 "가우리" 라고 우리가 표기를 하고 그렇게 읽는 것을 잃지 않는 것이
중국 북부의 고구려의 후손들과 통하는 길이라고 하셨죠
나아가 이것이 진짜 고구려의 영토를 정확히 아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노인 분은 정말 아무래도 역사학자이신 듯 합니다
하북위례성의 위치는 학자들이 보통 우이동과 수유동 일대로 봅니다 그것까지 정확하시네
이 사실은 국사학과를 졸업한 평범한 학부 학생들도 모르는 지식입니다 석사나 박사까지 가야 접할 수 있는 지식인데
무슨 과목이든지 학부는 공부의 깊이가 얕습니다 역사학과도 마찬가지죠
왜냐하면 취업도 준비해야하는 대학생 학부에서는 어렵고 깊은 지식과 정보는 다루지 않습니다
백한산에 대한 언급에 대해 제가 직접 수유동과 우이동의 북한산 인근 약수터가는 길목을 다녀보았습니다
이시영 초대부통령을 비롯하여 일제와 싸운 독립유공자들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중요 인물들의 묘소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내각의 장차관등 모든 분들의 묘소가
전부 수유동 일대에 다 있더군요 놀랐습니다 현충원은 그저
대통령의 묘소만 있는 것이더군요
그런 걸 보면 정말 수유동이 명당인 것으로 조상들이 본 듯 합니다
수유동에 “대한민국 유공자 현충원”을 세우면 좋을 듯 하더군요
지금의 현충원은 625 중에 병사들의 무덤을 세운 것이 계기가 되어
전직 대통령들의 묘소도 있는 것이지요 결코 풍수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독립유공자들과 대한민국 건국유공자들의 묘소가 수유동에 공원처럼 많더라구요
그것도 다 붙어있는 게 아니라 1개씩 따로 떨어져 있어서
힘들었지만 대신에 공기도 맑고 각각이 공원같이 잘되어 있었습니다
1곳을 보기 위해 5~10분을 걸어야 할 정도로 띄엄띄엄이어서
그래서 그 분들의 비문들을 직접 제가 걸어다니며 확인해보았더니 맞더군요
저는 역사 학도라서 직접 돌아다니며 봤습니다
저희 집이 많이 잘사는 편이라서
먹는 것은 아무 걱정없이 역사 연구와 현장에 다닙니다
저희 가문이 독립운동가 집안이라서
그걸 다 이 노인 분이 보신 듯 해요
노인 분 말이 맞더군요 정말 비문들에 흰백과 한나라한 과 산산 의 한문이 적혀있는 것을 봤습니다
지금도 누구나 볼 수 있죠 시간 있으신 분들은 직접 보시죠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다고 찾아보지 않습니다
모든 면에서 나이 먹으신 역사학자이신 듯 합니다 보통 역사학과 학부와 대학원 석사를 졸업한 사람도 모르는 지식과 정보까지 아시다니
특히나 북한산과 삼각산으로만 알고 있던 저에게 백한산에 대한 언급은 충격이었어요
이건 현재 역사학계도 언급을 안하는 지식인데
몰라서 못 했거나 아는데 안 했거나
제가 보기엔 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기에 직접가서 보는 것을 귀찮아 하거든요
그러니 이런 산에 있는 것을 보았을리가 없지요
대부분의 교수님들과 학생들은 문화재 관리하기도 바빠서 현장가서 비문 보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 역사학도와 학자들이 지금보다 많아야 옳지요
문제는 먹고 사는 게 문제라서 다들 피하겠지요
하여튼 역사를 전공한 저도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
그건 바로 일제시대와 해방 초기까지도
서울에 사는 백성들이 백한산으로 불렸다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의 해방 후에 돌아가신 독립유공자들과 대한민국 건국 유공자들의 묘소 비문에서
북한산이 아닌 백한산으로 그 산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당시 백성들이 다들 백한산으로 불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북한산을 북쪽의 방위산이 아닌 백한산으로 서쪽의 방위로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동쪽이 청용이고 서쪽이 백호이고 남쪽이 주작이고 북쪽이 현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쪽산을 청용산 서쪽은 백호산 남쪽은 주작산 북쪽은 현무산으로 불렀으며
따라서 동을 청한산 서를 백한산 남을 주한산 북을 현한산 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높죠
일부는 이것이 중국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아닙니다
이는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가야의 무덤 양식에서 항상 과거부터 등장했습니다
나아가 고조선의 양식에도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현재 한반도에는 고조선의 단군들 무덤들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것들이 고인돌을 단군의 무덤이라고 하신다면 결코 아닙니다
이게 바로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역사왜곡 교육의 결과물입니다
100명이 넘던 삼한조선의 단군들 묘소가 다 어디에 있을까요?
어디에 있을까요? 당연히 중국에 많을 것입니다
중국에 있습니다 그럼 전부 중국의 것일까요?
아닙니다! 현재의 중국과 우리가 같이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공동의 유산입니다 다시 백한산에 대한 언급으로 돌아오죠
즉 조선시대 궁궐 사람들은 북한산이라고 불렀지만 백성들은 백한산으로 불렀기에 해방 후까지도 백한산으로 비석들마다 기록이 된 것이지요
근데 우리의 역사 연구는 주로 왕과 귀족에 집중되어 있고 백성에 대한 연구는 적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서 백한산에 대한 명칭 연구가 우리 역사학계에서 게을리 된 듯 해요
70년 전의 것도 인력이 부족하여 관심도 적고 모르는 실정이니
그만큼 아직도 우리의 역사 연구는 허접합니다
그것은 역사학도인 저도 인정합니다
역사학도들이 중심이 되어 교수님들과 풀어갈 숙제
어쩌면 모든 국민이 다 함께 풀어갈 숙제 뭐 그렇게 볼 수 있죠
향후에 백한산에 대한 언급은 역사 교과서에 실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