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이 박정희가 경상도 출신이라 경상도를 주로 발전시키지 않았느냐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고
소위 전라도차별론에서도 이런 관점을 많이 이야기 하곤 함

 

 

 


박정희 시절만해도

네덜란드가 예가 될 저개발국은 계량경제학 분석에서 출발한 중앙기구에 의해 균형개발해야한다 쪽이 우세했는데,

계량경제학에서 분석 결과로 이렇게 나왔다 식으로 몰아가서(변행윤센세)
한국은 다른 길을 걸었고 성공해버림. 불균형

 

 

 


일단 당시 관료 간에 출신 지역 갈등은 존재했고 과거부터 존재했음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고, 박정희 정권기 서북지역 사람들이 권력에서 밀려나면서
이에 원한을 품은 엘리트 중에는 반박정희로 돌아선 사람들도 있었음


다만 박정희 정권이 경-부축을 내세운 것은 결코 박정희가 경상도라서가 '아님'
그리고 지금처럼 극심하지도 않었고.

 

 

 

 

위의 첫번째 표를 봤으면 좋겠는데


해방 이후 중국과의 무역 비율이 오르다 공산화와 함께 서해안의 무역은 급감.
그리고 한국전쟁 전후로 미국의 장기적인 구상이었고
고도성장기의 축이되는 한-미-일 삼각 무역 체제로 점점 전환되어 가며(애초에 미국은 배정한 원조자금도 물건은 일본에서 구입하라고 했음)

 

점령 초기에는 강력한 단절을 원했으나(한-일) 곧 바뀌었기에

 

 

 

 

특히 양적으로 한국전쟁 때 나라 지키면서 싸운 과정과 그 결과로
부산이 팽창되며 경제 규모가 커졌고

 

 

이 풍부한 노동력과 기존의 기업(예들 들면 신발사업) 거기에 기술 가진 사람들이 새로 옮겨와 만든 기업들과
대외무역의 관문 역할이
정부는 경부축을 중심으로 전후복구사업을, 박정희 정권기에는 산업의 중심으로 둘 수 밖에 없었음

 

그리고 규모는 커졌지만 50년대 부산 노동 상황은 역시 전후 혼란 속에 전쟁 전보다 별로 안좋아짐.

 

 

 

 


50년대 후반 수도권 중심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다른 지역들은 특화 산업이 자리잡기 시작한 상황에서
'박정희는 집권 후 그 상황을 인식하고 이용한 것임'

 

 

 

 

70년대 후반 넘어가며 중공업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하고(애초에 투자액도 이쪽이 많고)
대외의존적 경공업 중심의 부산은 이미 하락세로 돌아서기 시작
정치적 소요가 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부산과 주변지역은 고도성장기 초중반을 이끌다 역할을 다하고 내려오기 시작한 것임
이제는 중국과 교역이 열린지 20년이 되고 경부축이라는 말조차 쇠퇴한지 오래지.

 

 

 

 


박정희 정권은 대내외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고
그 과정은 6.25당시 나라 지키기 위해 싸운 결과물의 하나였던 것이지
결코 어디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와서 이런 단순한 결과가 아님

 

 

 

그런 수준의 지도자였으면 나라 망쳤지

어디 지역에서 대통령 나와서, 어디 지역에서 표 얻어야 해서
이런 정치공학적인 자기 당파의 이익을 되지도 않는 것으로 치장하고 꾸며서 표 따내면서
실제로는 국민, 국가에 별 도움 안되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으로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이후고

 

 

 

 

그리고 군을 매개로 한 충성심과 학연이 70년대 들어가서 강해지기는 했는데

이때도 최고 피해자는 전라도가 아님.

 

또한 60년대 박정희 집권 초기 파워엘리트에서 밀려난 것은 이승만 시절 중용되던 이북출신들.

5.16 직후만 해도 오히려 너무 이북 출신이 많이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모 인사가 괜히 사석에서 우리 평안도 사람이 정권잡아야 한다면서 이갈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