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C식당차 내부는 그동안 많이 봐오지 않았었나? EEC찍은날 좀 밝았으면 했는데 해질녁이라 외형사진들이 흐리고 흔들린게 아쉽고 또 사람들 타기전에 급하게 찍느랴 실내도 흔들린게 많아 아쉬운 차종임
댓글 20
EEC가 도입되던 초창기에는 탄광경기가 좋았던 때라, 식당차 영업이 매우 잘되었다고 함. 특히 맥주를 비롯한 주류는 태백을 출발하자 마자 동이 나버려서 부랴부랴 제천에서다 다시 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ESC(222.235)2017-06-24 17:39
EEC 일반실이라면 몰라도 특실이나 식당칸 내부는 의외로 자료가 잘 없을 거라고 봄. 적어도 국내 웹에서라면.
권선생(endlessflower1029)2017-06-24 17:44
ESC (222.235.*.*) // EEC가 도입되던 초창기라면 1980년대 초중반일텐데, 통념처럼 탄광경기가 좋아서 영업이 잘 되었다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석탄 수요가 줄어드는 80년대 후반 가서 석탄산업합리화조치 등으로 슬슬 폐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었는데 그렇다면 그 징후가 80년대 초중반부터 있었을 거라고 생각함. 태백-영동선 연선 지역에서 당시 기준으로 EEC 같은 고급 교통수단에 대한 운임은 물론이거니와 특실칸이나 식당차 같은 기타 부대요금의 지불능력이 되었으려나?
권선생(endlessflower1029)2017-06-24 17:49
EEC 식당차 내부 디자인을 보니 뭔가 식당이라기보다는 독서실 공부방스러운 느낌이 들긴 하는군 ㅋㅋㅋㅋㅋㅋ 통일호로 격하되고 난 뒤에 식당영업을 중지했던가? 한창 식당 영업 뛰던 시절에는 철도청에서 직영했으려나, 아니면 똑같이 서울프라자호텔 외식사업부 같은 데서 영업했으려나. 판매 메뉴는 새마을 식당칸하고 똑같았겠지?
권선생(endlessflower1029)2017-06-24 17:52
통일호 막판 달릴땐 식당영업 했을것 같진 않고..입석 자유석용이었음??
ㅁㅁ(221.151)2017-06-24 17:59
권선생//통일호 격하후로는 영업을 안했었음. 저걸 떼놓고 다닐수가 없어서 억지로 붙이고 다녔다고 들었음. 무궁화 시절이야기는 나도 몰라서 궁금하긴함. eec사진중 특실이랑 식당차 사진을 약 십년전에 내가 카페에 공개한적이 있는데 시간이지나 없어진듯... 이사진보면 아는사람이 나올줄알았는데
4209(223.62)2017-06-24 18:01
ㅁㅁ//막판에 청량리~제천 구간을 왕복했는데 10량으로 다녀서 자리가 부족하진 않았을거 같음
4209(223.62)2017-06-24 18:02
권선생//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노동자들의 상황은 열악한 것은 맞으나, 목숨걸고 일한다는 직업이고 사북 대규모 파업사태를 겪으면서 처우도 그나마 개선이 많이 되었다는걸 감안한다면, 무궁화 열차 운임이나 식당차를 이용할 만큼 돈을 받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봄. 탄광 근처에 유흥 및 환락시설도 많았고, 돼지고기 소비도 많았다는걸 감안한다면.
ESC(222.235)2017-06-24 18:07
조선업계와 그 일대 지역 경기를 보더라도 훅가는데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음. 거시적인 지표상으로는 1980년대 초중반부터 쇠락징조가 보였을지 몰라도, 그게 진짜 체감으로 다가오는데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감안한다면, EEC 운행 초기에는 탄광 경기 호황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봄.
ESC(222.235)2017-06-24 18:09
EEC특실은 통일호 특실과 비교해서 다를바 없었음. 56석 편성되었고, 좌석은 무궁화호 유선형열차(구특전이라 불리던 열차)나 원조새마을호 좌석에 비해서 더 낡은 좌석이었음. 말년에는 두 편성가지고 한 편성은 서울-제천, 나머지는 서울-원주에 충당. 특실좌석에 앉으려고 개표 직후 100미터 달리기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리고 독서실 공부방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실제로 서울-원주 열차는 늦은시간에는 하행선(19시 출발), 상행선은 이른시간(5시 10분 원주 출발)이 다 보니까 통학하는 학생들이 공부방으로 많이 애용했다.
ESC(222.235)2017-06-24 18:14
4209 (223.62.*.*) // 한국철도차량 100년사 같은 서적이나 기타 한국철도 관련 서적에 실려있을 수 있는 EEC 특실, 식당칸 사진들을 스캔한 것 같은 이미지야 조금만 수고를 들이면 찾을 수 있긴 한데, 개인 저작자들이 촬영,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진짜 거의 드문 것 같음.
권선생(endlessflower1029)2017-06-24 18:26
ESC (222.235.*.*) // 탄광산업이 호조기였다던 70년대조차 태백선의 임시승강장, 간이역들 중 실적 안 좋은 역들이 속속 생겨나서 정리심사대상으로 찍히던 판이긴 했었지만 뭐...... 하긴 그렇겠네. 주요역들은 아직 건재했을 것이고 그 주요역들 위주로 정차하는 EEC였다면 아직 버틸 만 했으려나.
권선생(endlessflower1029)2017-06-24 18:36
권선생// 그건 탄광경기 영향보다는 도로교통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크게 향상되어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보는데? 단군이래 최대호황이었다는 3저호황이라는 때에도 철도는 오히려 계속 쇠퇴해서 폐선, 편수 감축, 적자 심화 말이 계속 나왔고.
70년대의 철도 정리작업은 철도청이 경영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쳐낸거고,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오일쇼크 두번 거치면서 석탄이 떠오른거지 60년대에 주유종탄으로 정책이 잠깐 변하면서 폐광하는 곳이 많았음. 10년 정도 지나서 오일쇼크로 다시 석탄이 각광받고 다시 양적인 성장을 이룩해서 오히려 80년대 초는 최절정기임. 당장에 태백이 언제 시 승격했는지,
익명(39.116)2017-06-24 19:18
고한이 언제 사북에서 떨어져나가 읍이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옴. ---- 그리고 EEC 식당칸은 그 어느 사이트인지 기억은 안난다만 2000년쯤에 청량리-원주 뛸땐가 그 닉이 기억안나는데, 영업안하는 통일호 찍어서 인터넷에 올라오고 그랬던게 기억난다. 현역땐 우등/무궁화였으니 새마을보단 무궁화에 걸맞게 서비스됐겠지. 인테리어도 딱 무궁이구만.
익명(39.116)2017-06-24 19:23
아 그리고 맥주가 좀 특별히 기분낼때 마시는거긴 했어도 비싸서 쳐다보기만 할정도는 아니었음. 크라운맥주같은거 종이컵 뒤집어 씌워서 파는 그거아냐? ---- 위에 덧붙이면 60년대에만 해도 일반 교사월급이나 웬만한 그저그런 회사원들보다 광부 수입이 월등했다는건 말할것도 없고, 80년대에도 후생복지는 도시 노동자들보다 괜찮은 수준이라 지불능력이 충분했음
익명(39.116)2017-06-24 19:26
39.116 멀 좀 아시네...
성징드라마반꼴림(ks1018h)2017-06-24 20:15
여기 처음에 그렇게 안봤는데 수준급 철덕님들이 많은듯함... 연령대도 어리다고 생각해서 옛날사진 올리면 다 모를줄알았는데 그게 아니였음
4209(223.62)2017-06-24 20:46
4209// 다음이나 네이버카페, 그리고 각종 개인사이트들 가장 활발이 왕성했던 때, 최전성기가 2000년대 초반에서 중후반까지임. 그 때 활동했던 사람들 나이가 당시 중학생(13세)~대학생(20대 초주반) 정도 나이정도 였는데, 지금은 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나이들(20대 후반 ~ 40대 중반)이잖아. 그리고 이 사람들 중에 활동은 접었어도 눈팅은 하는 사람들도 많을거라고 봄.
EEC가 도입되던 초창기에는 탄광경기가 좋았던 때라, 식당차 영업이 매우 잘되었다고 함. 특히 맥주를 비롯한 주류는 태백을 출발하자 마자 동이 나버려서 부랴부랴 제천에서다 다시 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EEC 일반실이라면 몰라도 특실이나 식당칸 내부는 의외로 자료가 잘 없을 거라고 봄. 적어도 국내 웹에서라면.
ESC (222.235.*.*) // EEC가 도입되던 초창기라면 1980년대 초중반일텐데, 통념처럼 탄광경기가 좋아서 영업이 잘 되었다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석탄 수요가 줄어드는 80년대 후반 가서 석탄산업합리화조치 등으로 슬슬 폐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었는데 그렇다면 그 징후가 80년대 초중반부터 있었을 거라고 생각함. 태백-영동선 연선 지역에서 당시 기준으로 EEC 같은 고급 교통수단에 대한 운임은 물론이거니와 특실칸이나 식당차 같은 기타 부대요금의 지불능력이 되었으려나?
EEC 식당차 내부 디자인을 보니 뭔가 식당이라기보다는 독서실 공부방스러운 느낌이 들긴 하는군 ㅋㅋㅋㅋㅋㅋ 통일호로 격하되고 난 뒤에 식당영업을 중지했던가? 한창 식당 영업 뛰던 시절에는 철도청에서 직영했으려나, 아니면 똑같이 서울프라자호텔 외식사업부 같은 데서 영업했으려나. 판매 메뉴는 새마을 식당칸하고 똑같았겠지?
통일호 막판 달릴땐 식당영업 했을것 같진 않고..입석 자유석용이었음??
권선생//통일호 격하후로는 영업을 안했었음. 저걸 떼놓고 다닐수가 없어서 억지로 붙이고 다녔다고 들었음. 무궁화 시절이야기는 나도 몰라서 궁금하긴함. eec사진중 특실이랑 식당차 사진을 약 십년전에 내가 카페에 공개한적이 있는데 시간이지나 없어진듯... 이사진보면 아는사람이 나올줄알았는데
ㅁㅁ//막판에 청량리~제천 구간을 왕복했는데 10량으로 다녀서 자리가 부족하진 않았을거 같음
권선생//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노동자들의 상황은 열악한 것은 맞으나, 목숨걸고 일한다는 직업이고 사북 대규모 파업사태를 겪으면서 처우도 그나마 개선이 많이 되었다는걸 감안한다면, 무궁화 열차 운임이나 식당차를 이용할 만큼 돈을 받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봄. 탄광 근처에 유흥 및 환락시설도 많았고, 돼지고기 소비도 많았다는걸 감안한다면.
조선업계와 그 일대 지역 경기를 보더라도 훅가는데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음. 거시적인 지표상으로는 1980년대 초중반부터 쇠락징조가 보였을지 몰라도, 그게 진짜 체감으로 다가오는데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감안한다면, EEC 운행 초기에는 탄광 경기 호황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봄.
EEC특실은 통일호 특실과 비교해서 다를바 없었음. 56석 편성되었고, 좌석은 무궁화호 유선형열차(구특전이라 불리던 열차)나 원조새마을호 좌석에 비해서 더 낡은 좌석이었음. 말년에는 두 편성가지고 한 편성은 서울-제천, 나머지는 서울-원주에 충당. 특실좌석에 앉으려고 개표 직후 100미터 달리기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리고 독서실 공부방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실제로 서울-원주 열차는 늦은시간에는 하행선(19시 출발), 상행선은 이른시간(5시 10분 원주 출발)이 다 보니까 통학하는 학생들이 공부방으로 많이 애용했다.
4209 (223.62.*.*) // 한국철도차량 100년사 같은 서적이나 기타 한국철도 관련 서적에 실려있을 수 있는 EEC 특실, 식당칸 사진들을 스캔한 것 같은 이미지야 조금만 수고를 들이면 찾을 수 있긴 한데, 개인 저작자들이 촬영,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진짜 거의 드문 것 같음.
ESC (222.235.*.*) // 탄광산업이 호조기였다던 70년대조차 태백선의 임시승강장, 간이역들 중 실적 안 좋은 역들이 속속 생겨나서 정리심사대상으로 찍히던 판이긴 했었지만 뭐...... 하긴 그렇겠네. 주요역들은 아직 건재했을 것이고 그 주요역들 위주로 정차하는 EEC였다면 아직 버틸 만 했으려나.
권선생// 그건 탄광경기 영향보다는 도로교통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크게 향상되어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보는데? 단군이래 최대호황이었다는 3저호황이라는 때에도 철도는 오히려 계속 쇠퇴해서 폐선, 편수 감축, 적자 심화 말이 계속 나왔고.
ESC (222.235.*.*) // 하기사, 우리나라에서 왠지 도로교통하고 철도교통은 상극이긴 하지 ㅇㅇ...
70년대의 철도 정리작업은 철도청이 경영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쳐낸거고,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오일쇼크 두번 거치면서 석탄이 떠오른거지 60년대에 주유종탄으로 정책이 잠깐 변하면서 폐광하는 곳이 많았음. 10년 정도 지나서 오일쇼크로 다시 석탄이 각광받고 다시 양적인 성장을 이룩해서 오히려 80년대 초는 최절정기임. 당장에 태백이 언제 시 승격했는지,
고한이 언제 사북에서 떨어져나가 읍이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옴. ---- 그리고 EEC 식당칸은 그 어느 사이트인지 기억은 안난다만 2000년쯤에 청량리-원주 뛸땐가 그 닉이 기억안나는데, 영업안하는 통일호 찍어서 인터넷에 올라오고 그랬던게 기억난다. 현역땐 우등/무궁화였으니 새마을보단 무궁화에 걸맞게 서비스됐겠지. 인테리어도 딱 무궁이구만.
아 그리고 맥주가 좀 특별히 기분낼때 마시는거긴 했어도 비싸서 쳐다보기만 할정도는 아니었음. 크라운맥주같은거 종이컵 뒤집어 씌워서 파는 그거아냐? ---- 위에 덧붙이면 60년대에만 해도 일반 교사월급이나 웬만한 그저그런 회사원들보다 광부 수입이 월등했다는건 말할것도 없고, 80년대에도 후생복지는 도시 노동자들보다 괜찮은 수준이라 지불능력이 충분했음
39.116 멀 좀 아시네...
여기 처음에 그렇게 안봤는데 수준급 철덕님들이 많은듯함... 연령대도 어리다고 생각해서 옛날사진 올리면 다 모를줄알았는데 그게 아니였음
4209// 다음이나 네이버카페, 그리고 각종 개인사이트들 가장 활발이 왕성했던 때, 최전성기가 2000년대 초반에서 중후반까지임. 그 때 활동했던 사람들 나이가 당시 중학생(13세)~대학생(20대 초주반) 정도 나이정도 였는데, 지금은 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나이들(20대 후반 ~ 40대 중반)이잖아. 그리고 이 사람들 중에 활동은 접었어도 눈팅은 하는 사람들도 많을거라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