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조선총독부 소학교 6학년 조선어 교과서)
3.1 운동이후 총독부 정책은 문화통치로 바뀜
그냥 한 번 바뀐정도가 아니라 조선인 권리가 점점 향상되고 있었지

1920년대 경성이 1970년대 서울보다 자유로웠을 정도. 독립운동 때려잡은거야 뭐 일본 입장에서 독립운동은 한국 입장에서의 종북활동이나 마찬가지였을테니 그렇다치고

이 시기에는 뭐 알려졌다시피 보통경찰제가 시행되고, 회사 설립과 문화 활동도 자유로워지고, 형법은 일본 본토 형법을 적용시켜주고, 조선인에게 점진적으로 투표권을 부여하고, 조선인이 일본 본토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뭐 그랬지. 그러다보니 독립운동에서 민권신장으로 돌아선 사람들도 많았고.

교과서에서는 민족분열책이라고 써놓긴 했지만 실제로는 총독부가 3.1 운동으로 전국적 시위대의 맛을 빡세게 본 거지. 마침 일본에서도 민주화 열풍이 한창 불던 때고.

실제로 교과과목에 '조선어' 과목이 존재했고, 수업시수는 '국어(일본어)'와 1:1로, 심지어 조선어 고전문학으로는 퇴계 이황의 시조 등도 실려있었을 정도임. 안창호도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일본인은 조선인에게 있어 '아(我)'라고 하였음.

이걸 내지 외지 할거없이 뒤통수 존나쎄게 후려친게 군부의 폭주와 2차대전이었을 뿐.

만약 지금의 일본처럼 정상적인 친미국가로 돌아갔다면 2차대전도 없었고, 2차대전이 없었다면 강제공출/강제징용/위안부/민족말살정책 같은 건 없었다는 소리.

실제로 20년대 말엽으로 가면 독립 요구는 대폭 사그라들음.

일본은 제국을 유지하려면 병신같은 식민지정책 대신 민주주의로 갔어야 했지.

그랬으면 일본은 만주의 유전을 가진 산유국이자,
산세이 전자의 폭발하는 케-따이, 에루지 전자의 테레비,
휘갸-와 삿카-의 킨 요나, 파쿠 시세이의 고향이자,
세계가 열광하는 J-POP 코우난 스타이루,
세계 최고의 아니메 키무치 사무라이, 여류 정치가 파쿠 킨에를 배출하는 멋진 나라가 되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