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소로(糞小路)와 노방변소
19세기 근세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은 노상에서 방뇨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당시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노상에서 방뇨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어 자기 나라에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교토(京都)에는 '분소로(糞小路)'라는 거리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거리가 바로 화장실처럼 누구나 가서 대. 소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거리에는 언제나 오줌, 똥이 쌓여 있어서 누구든 이 거리로 들어갈 때에는
신고 갔던 신발을 벗고 입구에 놓여 있는 굽 높은 나막신으로 바꾸어 신고
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그후 천황(天皇)이 우연히 이 거리를 지나다 그 내력을
듣고 거리 이름을 바꾸도록 지시해서 오늘날의 금소로(錦小路)가 되었다.
메이지(明治)3년(1870) 일본 정부는 '방뇨 취제의 포고'를 내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요코하마 시내에는 83개소의 노방(路傍)변소가 만들어졌다.
이 노방변소는 일본 최초의 공중변소였는데 큰 변조를 땅에 묻고 그 주위를
판자로 막은 어설픈 것이었다. 일본 정부의 노력에도 불고하고 노상방뇨의
풍습은 쉽게 근절(根絶)되지 않았다. 그러나 노방변소의 개량은 계속되었고
명칭도 노방변소에서 공동변소 또는 공공 변소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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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오줌 누는 일본 여성
에도(江戶,1596∼1686)시대 일본 교토(京都)의 여자들은 길가의 소변통에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예사롭게 소변을 보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풍습은 메이지
시대 말기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여염집 아가씨. 하인을 거느린 상류층
부인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도로변 벽을 향해 엉덩이를 내놓고 선 채로
오줌을 누면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두고 비웃는 사람도
없었다.
당시의 왜국 여인들이 선 채로 오줌을 누는 풍습은 아주 일반적인 것이었는데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나 작업 바지인 몸빼를 입었을 때에도 오히려 서서 일을
보는 것이 더 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기모노 끝나락은 늘 누런 오줌으로 물들어 있었다.
기모노차림을 했을 때에는 윗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다리를 벌린 다음 무릎을 구부리고 옷자락을 옆으로 걷으면 되고
몸빼를 입었을 경우에는 윗몸을 크게 구부리고 다리를 벌린 다음 옷을 밑으로
내리고 일을 보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서 오줌 누는 습관은 팬티를 입지 않았던 시대에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일본의 여성들도 팬티를 입게 되었고 서서 오줌 누는 습관은
차츰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여성들의 경우일 뿐이다.
태국 북부 라후라 지방에 사는 여성들은 지금도 선 채로 오줌을 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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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백성들이 고생스럽고 인색한 것은 아마 천하에서 최고일 것으로 비록 우리 배를 끄는 격졸(格卒)로 말한다 하더라도 매일매일 익힌 고구마 뿌리를 두 번 먹고 그 뒤에 밥을 먹는 사람은 오분의 일에 불과하다.또한 수저질 몇번에 나무 그릇 바닥에 닿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비록 같이 앉아서 먹는 사람이 (밥이)없다고 해도 양식 한 톨도 나누어 주지 않는다.
(우리)여섯 배에 타고 있는 왜의 사공들은 예에 따라 우리가 음식을 먹이는데, 모두 큰 통을 가지고 와서 반드시 음식을 많이 달라고 한다.(우리)격군들이 그들의 음식을 탐하는 것을 비웃으며 질책을 하여도 또한 부끄러움을 알 지 못하였다. 백성들은 날로 번창하는데(숫자는 많아지는데)살아가는 형편이 이와 같이 심하게 고통스러우니, 만일 그들의 배를 만드는 능력이 우리의 열배가 된다면 우리 앞날에 닥칠 근심이 또한 적지 않으리라 저어된다.
마을은 가히 백 호쯤 되는데 모두 초가집이었고 사는 것이 궁핍했으며 모두 남루했고 빗질도 안 했으며 씻지도 않았다. 여자들은 나오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으니 의복이 깨끗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만날까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널로 덮은 3층짜리 집들이 있었는데 모두 신사(神舍)와 승사(僧舍)라고 한다.
고공사 아래에 머물렀을 때 작은 배에 나무 손잡이가 있는 둥근 어망을 실은 어부가 그 아내와 더불어 배를 저어 오징어를 잡고 있었다.
어부는 한 자쯤 되는 베로 음부를 가리었고 그의 아내도 한 자쯤 되는 베로 치마폭을 만들어 앞뒤를 가리었으니, 남녀가 온몸을 벌겋게 내놓고 있었다.
-승사록(乘사錄, 18세기)-
3줄 요약
1. 19c 노상방뇨 똥 오줌 천국 일본
2. 벌거숭이 노팬티 오줌 기모노 나막신 왜인
3. 왜인에게 사실 요강을 가르친건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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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없으면 생리할 때는 어떻게해?
일뽕들의 일상.txt - dc App
개추
???: 아입nida 우리 갓본인들이 그럴리 없습nida 빼애애애애애액!
ㅇㅂ
ㅇㅂ
ㄱㅊ
갓본인들의일상 개추다!!
ㄱㅊ 』
마치 503의 북한편지를 부정하는 틀사모와 같구만 허허허
비추: 일본학과
일본인들이 팬티 본격적으로 입기 시작한건 메이지도 아니고 다이쇼 때일걸? 1920년대 그 전엔 도입은 됐는데 잘 안입다가 화재사건 일어났는데 팬티 안입어서 못뛰어내려가지고 그 담부터 입엇다더라
조선도 별다를건 없었는데. 현재가 중요하지
이건 좀 왜곡인데... 여성들 노상방뇨는 지역마다 달랐음. 에도에서는 그런 풍습이 전혀 없었고, 시골이나 관서 지방에서는 좀 일반적이었으나 교토 여자에게도 노상방뇨는 상처가 되는 부끄러운 일이었다는 기록이 있음. 그리고 그냥 노상방뇨 하는 게 아니라, 당시에 오줌과 똥이 비료로 취급받아 소변을 주면 무를 주는 '소변상'이라는 직업이 있었을 정도라서, 소변 모으는 통에 쌌음. 서서 기모노에 쌌다는 건 말도 안되고, 앉아서 쌌음. (『やんごとなき姫君たちのトイレ 西洋かわや物語』) 소변보고 나서도 흔히 알고 있는 기모노를 입을 정도의 부자들은 종이로 닦았음. 立ち小便가 노상방뇨인데 저기서 (立ち-서서)라는 용어가 있어서 남녀 모두 서서 싼 줄 아는 것 같은데, 여자는 앉아서 쌈.
그리고 조선도 마찬가지였음. 광화문 네거리에 길따라 길가에 도랑이 있고 거기엔 오줌과 똥이 줄줄 흐르고 있었음. 일본은 관동 (에도) 지방은 노상방뇨 풍습이 없어서 여자들은 외출 전에 미리 화장실 가거나 외출하면 화장실 찾는 게 일이었고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본은 관서 지방에서도 여성들 노상방뇨 사라졌지만, 조선은 그런 거 없었음. 구한말 일본 조선 다 방문했던 외국인 기록에 의하면 조선은 정말 똥오줌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고 대로에 똥오줌이 흐른다고 기록한 게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