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모스크바-비슈케크 구간을 철도로 여행했습니다.
보통 TSR이라고 부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본선 구간은 많이들 여행하셔서 블로그에 이야기도 많더라구요.
그런데 나름 간선(?!)급이라 할만한 모스크바-비슈케크 구간 여행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가 별로 없어 졸문이나마 남겨봅니다.
여행이 시작되는 모스크바의 카잔스카야역 입니다.
역 이름 자체는 카잔역인데 실제로 카잔행 열차는 전체의 몇편 안되는거 같았습니다.
한국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야로슬라브역(블라디보스톡-모스크바), 옥타브리스카야역(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와 이 카잔스카야
3역은 사실한 한 역으로 취급해도 무방합니다. 그냥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터미널만 3개 있는 구조네요.
조금 기다리니 제가 탈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왔습니다. 빈 객차를 찍고싶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탑승합니다.
블로그 같은데서 보던 1번기차 붉은 화살호 같은걸 상상하고 탔는데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이었습니다. 아~~주 좋게 말해서 JR큐슈의 느낌이 물씬 나는 목재 재질들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딱 봐도 요즘 기차는 아니었는데,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이 기차의 제작연도가 199X(마지막 숫자가 잘 안보였습니다)인걸 보고
고개를 끄떡이게 되더군요. 러시아에서도 이 구간 별로 신경 안쓰는구나 싶었습니다.
제일 기겁한건 이거였습니다. 러시아 장거리 기차에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중 하나인 물끓이는 기계!
이거 전기도 아니고 석탄 넣어서 물 끓입니다... 아랫쪽에 두개의 구멍이 있는데, 윗쪽으로 석탄을 넣어 불을 붙이면
아랫쪽으로 떨어진 재를 회수하는 매우 Energy efficiency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는 개뿔, 대체 이런 물건을
언제 마지막으로 봤나 가물가물하던 와중에, 제 옆을 지나가는 다른 손님 손에는 사과폰7+가 쥐어져있더군요.
하- 20세기, 당신이란 시대는...
72시간의 여행 아닌 고행중에도 사람들을 들어오고 내립니다.
플랫폼의 풍경은 기차가 후진거 빼곤 TSR 여행기 블로그에서 흔히 보던 풍경이었습니다.
여러 인종들이 뒤섞인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또는 내리고 하며 러시아-카자흐-키르기즈 3개국의 초원을 달리는 이야기,
어찌보면 흔할수도 아니면 정말 특별할 수도 있겠네요.
TSR 본선도 그렇지만 이쪽 라인도 점점 동네 아줌마들이 머리에 물건을 이고와서 승객에게 파는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갑니다.
아직 없어지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판매상들은 이렇게 번듯한 부스를 만들어 플랫폼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격은 얼린 물 1.5L 50루블(약 천원), 샤슬릭 한꼬치에 150루블(약 3천원) 정도입니다. 나쁘지 않아요. 굳이 기차타기 전에
바리바리 싸들고 탈 필요는 없어지네요.
낮의 풍경도 있다면 저녁의 풍경도 있습니다.
기차 뒤로 넘어가는 해를 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기분은 정말 새로웠습니다. 특히 중앙아시아의 초원 위에서라면요.
하지만 그것도 3번째 저녁이 찾아오자 점점 사람이 이상해져 가는걸 느꼈습니다.
벽보고 얘기하고... 어... 뭐, 그런거 있잖습니까. XD
하지만 여행 중간중간 스쳐가는 풍경들과 그 모습을 바라봐주는 지평선 덕에 꾹 참고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야생마도 봤는데 미쳐 찍질 못했네요. 하지만 양떼를 몰고가는 목동들, 얼굴이 빨간 몽골계 아이, 인형같은 러시아 소녀들을 추억하며
시간을 보내보았습니다.
TSR도 그렇지만 러시아의 장거리 기차여행은 '재미'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어요. 오히려 지루한게 사실입니다. 진짜 지루해요ㅋ
그런데 인생도 그런거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사실 별 의미없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지 않나요?
그 와중에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했다는 기억이 있기에 우리는 내 인생 꽤 행복했다고 말하게 될겁니다.
러시아 장거리 기차여행은 알려줍니다.
그렇게 95%의 시간이 지루하더라고 5%의 순간이 여행의 질을 결정하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다고.
그렇게 72시간 20분의 시간을 달려, 비슈케크 현지시간 기준 18일 새벽 2시, 그 먼거리를 칼같이 시간을 지켜 결국 도착하고야 맙니다.
키르기즈스탄 출신이라는 차장 아저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며
비슈케크에 도착을 자축하였습니다.
모스크바-비슈케크 구간은 총 72시간 20분이 걸리며, 각 역에 출발/정차하는 시간은 전부 모스크바 시간을 작성되어 있습니다.
TSR 본선구간(모스크바-블라디보스톡)이 모스크바 시간으로 써있는건 국내선(!)이라 이해했는데, 국제선도 그럴줄은 몰랐네요.
가격은 3등석 기준 한화로 최저가 17만원 정도에 구매 가능합니다. 러시아 기차는 출발 약 한달반~두달 전부터 예매가 가능한데
일찍 할수록 싸져요. 출발하기 직전 가격은 아마도 24만원 정도가 아니었나 합니다. 거리에 비하면 싼거 아냐? 싶지만 비행기도 종종
20만원 정도에 풀리기도 하니까...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그리고 식당열차 영업을 안하더라구요? 헐.
여행중 주식은 그 유명한 도시락 라면입니다. 이건 모스크바-페테르부르크 구간이든 제가 탄 구간이든 TSR 본선구간이든 다 똑같습니다.
혹시 해당 노선을 타실 분이 있으시다면 정보가 되었으면 하네요.
...그리고 열차안에서 허리 다치는 바람에 비슈케크에서 이틀째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습니다. (쑻)
기 추
!!! 르바크아 후라알
힛갤로
올ㅋ 추천주고 감
장거리추추추 -진실은 탈선하지 않는다
개추
ㄹ데 72간짜리 기차를 정시운행 시키다니 ㄷㄷ 대륙횡단열차 지연문제 나몰라라 하는 암트랙은 x잡고 반성해야...
와우 멋지네요 - dc App
개추
개추
인생철학추
아니 암만 저상홈이라도 그렇기 플랫폼 너무 낮은 거 아니냐 ㅋㅋㅋ
러시아추
관심추
막줄 ㅋㅋㅋ 쾌차해라
발냄새콘
ㅊㅊ
야 이건 철스퍼거가 쓸만한 글이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