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한양대역이 생긴 이유는 시위 진압에 불리한 여건을 지형을 바꿔 반전시키려는 정부 당국의 꼼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건 그냥 설일 뿐이다.

여하튼 한양대역은 경찰의 눈에서는 유닛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시공의 문으로 보여졌을 수도 있다. 또한 왕십리역에서 캠퍼스로 진격하는 루트보다는 한양대역에서 캠퍼스로 가는 루트가 더 차단하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울지하철공사와 서울특별시청,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양대 캠퍼스는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한양대생은 전국 최강의 대학생 시위대였다.

때는 극렬한 시위로 전국의 대학가가 불타던 1980년대, 그 중에서도 중심에 있던 한양대학교.

한양대의 시위가 너무 극렬하자 특단의 대책으로 한양대역을 폐쇄하고 열차들은 한양대역을 무정차 통과하기로 한다. 한양대로 가는 길은 아예 원천봉쇄.

시위학생들을 가득 싣고 달리던 내선순환 열차는 왕십리역을 출발해 한양대역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릴 준비를 하던 한양대 학생들의 앞으로 한양대역 승강장이 그냥 지나쳐갔다.

뚝섬역에서 내리게 된 한양대 시위대. 어떻게 했을까.

단체로 철도안전법을 위반하고 2호선 선로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시위구호를 외치며 성동철교를 건너갔다. 아마도 고가선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도로에 시위대도 없는데 어디선가 시위구호가 들려오는 것을 들으며 의아해 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한양대역에 들어왔고, 경찰을 따돌리고 캠퍼스에 입성할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이 철로 위에 있는 동안 2호선은 운행중지, 줄줄이 연착된다.

그날 저녁, 성동경찰서에서는 "우리가 졌다."며 패배를 인정하는 전화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풍경을 상상하기 어려운 회사원들의 철도가 된 2호선이지만, 당시만 해도 서울을 계속 순환하며 달리며 열차에서 계속해서 시위대를 뿜어내는 무서운 노선이었다. 비단 한양대역만 폐쇄된 것이 아니고, 서울대입구, 교대, 건대입구, 이대, 신촌, 홍대입구 등이 밥 먹듯이 폐쇄되던 시절이었고, 시내로 향하는 을지로입구역과 법원으로 향하는 서초역은 최루가스 가득한 역이었다고 한다. 출구 밖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의 전투가 벌어지는 그런 풍경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9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80년대 대학을 다니던 아버지에게는 그런 추억으로 남은 2호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