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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리적으로 물류의 요충이기에 일제 강점기인 근세사에 와서도 제국주의 일본은 우리의 자원을 착취하기 위하여 경부선 철도를 설치, 강과 가장 가까이에 왜관역을 신설하고 왜관 시내를 관통하는 철로가 설치되었다.
그 당시 만들어진 궤도철로, 소철가(小鐵街) 구간은 왜관역을 출발해 구 우체국∼한성장모텔∼구 전매서(왜관4리)∼구 남일정미소(삼오창고)∼돌밭진(津)∼하포(下浦) 나룻터로 연결되었으나 지금 도로는 그대로이지만 소철가는 없어졌다.
낙동강 철교 측면 돌밭(津), 둔덕(돌)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왜관 하포(下浦) 나룻터 또한 말뚝으로 된 목책이 4대강 개발 이전에는 확연히 물목을 지키며 역사를 고증하고 있었다.
헉 아직도 흔적이 남아있다고??
http://www.idaegu.com/?c=1&uid=55458
한편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왜관역이 설치되자 안동지방의 목재가 수로를 이용 왜관까지 와서 왜관역에서 기차로 전국각지에 수송됐다.
이때 강안(江岸)에 내려진 목재를 왜관역까지 운반하기 위해 강안에서 왜관역 사이에 소철(小鐵)이 설치됐다.
이 소철은 소형 도르레식 무개차에 화물을 싣고 인부들의 미는 힘으로 운반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중앙선과 경북선이 개통되면서 없어졌다.
지금도 당시 소철이 지나간 자리를 소철가로 불지고 있다.
소철가는 공식 지명으로는 안남아있는 것 같은데 현지인은 알려나...
http://www.idaegu.com/?c=3&uid=272582
이 기사는 직접 찍은 사진도 있고 본격적으로 소철가를 다룬 기사
http://cginews.net/ArticleView.asp?intNum=11286&ASection=001001
성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 중 하나인 순심 중 고등학교를 건립, 학교부지(64814평)를 출연하고 낙동강 돌밭 나루터 중심 남한 제일 큰 정미소인 남일(南一)정미소와 역 까지 왜관읍내를 관통 소철가(小鐵街) 레일을 깔아 경부선을 이용 쌀 대량수송로를 확보 막대한 부를 이루면서 독립자금과 교회건립 교육사업에 많은 기부를 하였다.
정재문 선생이란 사람이 만들었다는데 다른 기사를 보면 빼박 쌀 수탈용이니 친일파 ㅋㅋㅋㅋ
친일파 찬양이라니 사스가 그동네
잘하면 선형 복원도 가능할듯.
김제궤도, 강경궤도는 아무 문헌자료도 없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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