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등 기관장 공석에
말련·싱가포르 16조 고속철
컨소시엄 참여 판단 유보
수년간 준비 사업 허공에





[서울경제] 주요 공공기관장의 부재가 장기화하면서 각종 사업 추진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수년간 준비해온 해외 수주에까지 찬물을 끼얹고 있다. 

총 사업규모 16조원의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사업 입찰제안서(RFP) 공지가 지난해 12월 말에 나오면서 본격적인 글로벌 수주전이 시작됐지만 한국은 정작 핵심 참여 공공기관 수장들의 공백으로 입찰제안서 준비에 제동이 걸렸다. 정권이 바뀌면서 앞뒤 보지 않고 임기가 남아 있는 공공기관장들을 밀어내면서 발생한 촌극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해외수주에 나섰던 것과 달리 현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업계와 관계부처에 따르면 말싱 고속철 사업 수주를 위한 한국 컨소시엄에 지분참여 의사를 밝혀온 코레일과 한국철도시설공단 등이 판단을 유보했다. 최고 의사결정자인 기관장이 수개월째 공석인 탓이다. 홍순만 전 코레일 사장은 임기가 1년 넘게 남았던 지난해 7월 말 자진사퇴했다. 코레일은 6개월째 부사장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말싱 고속철 사업 수주에 함께 참여해 관련업체를 모았던 한국철도도시시설공단 이사장도 2개월째 공석이다.

문제는 입찰제안서 제출일까지 6개월 정도 남았는데 기관장 공백이 길어지면서 유지보수와 SI를 담당하는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이 컨소시엄 참여에 미온적인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점이다. KT(통신)와 삼표E&C(궤도), LS산전(신호)는 아예 빠졌다. 50개 업체로 모였던 컨소시엄은 현재 10개 업체 수준으로 줄었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지난 2015년부터 준비했던 작업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새 사업자들을 모집해야 하는 실정이다.

컨소시엄 참여기업의 한 관계자는 “사업성이 좋다고 판단돼 각국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글로벌 은행에서 앞다퉈 금융비용을 대겠다고 하는 상황인데 공공기관 수장의 공백으로 대규모 수주기회를 날릴 판”이라며 “정권이 바뀌고 정부가 이 사업에 관심이 없다는 게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 이유”라고 지적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공공기관장 공백으로 각종 사업 추진에 타격을 받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한국전력KPS의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유지보수 계약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원전 공기업은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운영 및 운영지원 계약까지 끝마친 상황. 문제는 8일 준공을 코앞에 두고 정의헌 한전KPS 사장이 돌연 사표를 내면서 계약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는 점이다. 4기 전체에 대한 유지·보수 계약이 체결되면 향후 60년간 약 4조원 안팎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입맛만 다시게 될 공산이 커졌다. 한국농어촌공사도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아 있던 정승 사장이 지난해 말 물러나면서 분위기가 침체됐다. 농어촌 현장을 누비며 가뭄과 지진 대비 등을 꼼꼼히 해왔던 터라 직원들의 아쉬움은 더 크다.

공기업 수장은 물론 국책연구기관장들까지 임기를 채우지 않고 물러나는 분위기다.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 중에서는 한국감정원이 10개월 넘게 인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사장 공모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공항공사 등도 교체 가능성이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 중에는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 5곳(동서·남동·남부·중부·서부)을 포함해 한국가스기술공사·한전KDN·한국전력기술 등도 공공기관장 공모에 나섰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과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도 줄줄이 사의를 표하며 주요 경제연구기관장도 공석이 됐다.

우려되는 점은 비어 있는 100여석의 공공기관장 자리가 전문성 없는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들로 상당수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선임된 한국가스안전공사 신임 사장은 가스안전 분야와 관련이 없는 정치인 출신 김형근 민주당 원내대표 비서관이다. 한국도로공사 사장에는 이강래 전 의원이 임명됐다. 상황이 이렇자 17일 임기 만료된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후임으로 문재인 캠프 출신의 이상직 전 의원 본인이 하마평을 퍼뜨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