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가 조선시대 때 어땠는지는 몰라도 왕십리는 상인, 중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들음 서울 사투리 중에 \'~하걸랑\' 이게 왕십리에서 나온 말일 정도로 꽤 큰 상권이었던 것 같은데 그게 언제 어디로 다 간건지 알 수가 없어 왕십리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진짜 오래된 음식점 이런거 빼고 별 흔적이 없는 것 같음 소월아트홀 뒤쪽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기와집들도 여러채 있었던 것 같은데
댓글 8
강남 개발 하면서 상권이 다 그쪽으로 넘어간거 아님?
익명(218.238)2018-01-30 00:19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싹 없어질 수가 있나
두루마리(blackbee99)2018-01-30 00:20
서울 안살아서 모르겠는데 유동인구가 많아야 상권이 유지가 되잖아.
익명(218.238)2018-01-30 00:21
조선시대땐 걍 서울 성곽 나가면 죄다 논밭이었는데 상권은 무슨. 성저십리와 영등포 대방동이 개발된게 일제시대이고 그 외의 시역은 죄다 60~80년대 산업화시대나 그 이후에 개발된 거임.
익명(61.100)2018-01-30 00:22
청량리는 조선시대땐 모르겠는데 일제시대때는 경원선 중앙선 만나는 역으로 겁나 흥한건 맞을거다. 그때당시 경원선은 서울에서 동해안 나가는 최단루트라 엄청 중요한 노선이기도 했고
-(sh01040609de)2018-01-30 00:23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성저십리는 지금으로 따지면 도봉구, 수서 이정도 변두리 느낌이었음.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엄청 작았을 때인데 외곽에 상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지.
익명(61.100)2018-01-30 00:24
서울성곽안에서는 상권이 당연히 발전됐고..
자미성(112.151)2018-01-30 09:25
서울..성 동쪽에 있다고 해서..성동이라는 지명이 유래된건데 .시전은 허가받는 성곽내에 있는 상권이라고 이해하면 되고.난전은 성곽밖에 펼쳐진 상권이라고 보면 되는데..지금의 동대문,성동구쪽이 난전이 펼쳐진 곳이라고 보면 되며...추후 이것이 세금등 문제가 되다보니....난전을 없앤다...라는 의미로서 "금난전권' 이런 용어도 나오게 된거죠...서울성곽 동쪽인 지금의 동대문구,신당동쪽으로해서 왕십리쪽 방면은 서울로 들어가는 길가였기에..유추해 볼수 있슴
강남 개발 하면서 상권이 다 그쪽으로 넘어간거 아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싹 없어질 수가 있나
서울 안살아서 모르겠는데 유동인구가 많아야 상권이 유지가 되잖아.
조선시대땐 걍 서울 성곽 나가면 죄다 논밭이었는데 상권은 무슨. 성저십리와 영등포 대방동이 개발된게 일제시대이고 그 외의 시역은 죄다 60~80년대 산업화시대나 그 이후에 개발된 거임.
청량리는 조선시대땐 모르겠는데 일제시대때는 경원선 중앙선 만나는 역으로 겁나 흥한건 맞을거다. 그때당시 경원선은 서울에서 동해안 나가는 최단루트라 엄청 중요한 노선이기도 했고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성저십리는 지금으로 따지면 도봉구, 수서 이정도 변두리 느낌이었음.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엄청 작았을 때인데 외곽에 상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지.
서울성곽안에서는 상권이 당연히 발전됐고..
서울..성 동쪽에 있다고 해서..성동이라는 지명이 유래된건데 .시전은 허가받는 성곽내에 있는 상권이라고 이해하면 되고.난전은 성곽밖에 펼쳐진 상권이라고 보면 되는데..지금의 동대문,성동구쪽이 난전이 펼쳐진 곳이라고 보면 되며...추후 이것이 세금등 문제가 되다보니....난전을 없앤다...라는 의미로서 "금난전권' 이런 용어도 나오게 된거죠...서울성곽 동쪽인 지금의 동대문구,신당동쪽으로해서 왕십리쪽 방면은 서울로 들어가는 길가였기에..유추해 볼수 있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