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로 양주 관아가 있는 유양동이나 의정부시내로 가기보단나룻배, 좀 더 이후에는 광진교를 이용해 천호리, 삼전나루 일대 시장을 많이 이용했을 것 같아 - dc official App
정정) 천호동은 1963년에 서울에 편입되면서 처음 생긴 지명. 원래는 곡교리
무슨 배를 타고 천호리를 가 ㅋㅋㅋ 그냥 기차타면 청량리까지 꽂아주는데 ㅋ
ㄴ 맞다... 근데 남양주 지역에 철도 들어온게 일제강점기에서도 후반기네 생각해보면 ㅋㅋ 광진교도 30년대... - dc App
특히 퇴계원 금곡 마석에선 경춘선타면 성동역(현 제기동역)까지 꽂아줬고 ㅋ
그리고 철도 없을때도 서울 동대문이 거리상으로 가까운데 그런 변두리 깡촌에 왕래할 필요 없이 그냥 서울로 바로 갔을걸?
ㄴ 조선왕조때도 한양도성을 직접 생활권으로 경기도민 많았을까? - dc App
이사람 최소 청량리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 경원선, 중앙선, 경춘선 생기기 이전인 조선시대부터 청량리는 서울(사대문안쪽)에서 경기동부나 강원 중부로 가는데 반드시 거쳐가야하는 교통의 요지였음...
220.79 // 도성 밖 최소 성저십리까지는 서울 생활권이었음...
그리고 근대화 이전 흙파먹고 살던 시절엔 교통편이 부실했을 뿐만 아니라 보릿고개 넘기기도 힘들어서 무슨 장보러 나가느니 할 일이 별로 없었어.
시골사람들 읍내 장보러 나가는것도 신작로가 닦이고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활성화된거지 조선시대나 일제 초기까지는 거의 자급자족하고 살았다. 신발이 필요하면 농사짓고 남은 볏짚으로 짚신 만들고, 반찬이 필요하면 뒷산이나 들에서 나물 뜯고....
근대화 이전엔 생활권이니 뭐니 옆동네 왕래할 일도 거의 없이 집안에서 혹은 마을 안에서 자급자족하는게 대부분 사람들의 생활이었는데 교통과 상업이 발달한 현대인의 모습에 대입해서 생활권이라는 말을 갖다붙이긴 뭐하지.
사람이 살았을까?
그리고 1963년 이전 서울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중북부는 경기도 양주군이었음...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도봉리...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 상계리...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신내리 등등...
조선이 화폐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은것도 왕래를 할 일이 없으니...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