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gall.dcinside.com/rgrc/530 (원글)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가 줄어드는 게 아니다.

마음을 열어도 괜찮은 사람이 줄어드는 거다.


어렸을 땐 외로움이 결핍인 줄 알았다.

지금은 안다. 고독은 선택이다. 그것도 꽤 현명한.


나는 뼈 빠지게 가난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사채 쓴 조폭들이 집에 들이닥쳐 아버지를 팼다. 경찰서를 드나들던 그 시절, 우리 셋은 복층 고시텔에 살았다. 아버지는 아랫층, 어머니와 나는 윗층. 그 좁은 공간에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결심했다.

반드시 성공해야겠다.

그 결심은 순수하지 않았다. 질투와 시기로 뭉쳐 있었고, 어린 나이에도 꽤나 꼰대 같은 구석이 있었다. 세상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혼자 결론 내리는 놈이었다.


회사생활은 쉽지 않았다. 나는 그걸 실력으로 찍어눌렀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불킥할 흑역사들이 쌓일수록,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

이기심을 줄이고 이타심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성공은 쫓을 때보다 내려놓을 때 따라왔다.

직장인으로서는 또래 중 꽤 높은 자리, 꽤 괜찮은 숫자들이 통장에 찍히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자산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늘 겸허했다. 허세 부릴 토대가 없었으니까.


그 시절 내 동창들은 화려했다.

호주로 유학 가고, 영국에서 스포츠매니지먼트 학사를 따고, 중국 명문대를 나왔다. 나는 고작 열심히 해서 회사원으로 성공했을 뿐이다.

걔네 부모님이 물려줄 자산에 비하면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한국을 골랐던 그 동창들은 그저 그렇게 살아버렸다. 인스타그램엔 골프, 외제차, 또 골프, 또 외제차.

그리고 내가 작은 성공을 이뤘을 때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았다. 돌아온 건 시기와 질투뿐이었다.

그때 알았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외로움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걸.


20대 초반, 나는 디시에서 훈수나 두고 헛소리 싸는 중년들이 이해가 안 됐다.

30대가 되어 다시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조금 안다.

소득이 커지고 삶에 여유가 생길수록, 주변 사람은 오히려 줄어든다. 단순한 이유다.

내가 매주 스노보드 타러 갈 때, 그 사람들은 삼겹살 구워 먹고 싶은 거다. 취미가 달라지고, 원하는 게 달라진다. 그게 나쁜 게 아니다. 그냥 그런 거다.


처음 러닝 갤에 글을 올렸을 때, 꽤 재밌었다.

운동하고, 서로 으쌰으쌰하고, 뭔가 생산적인 에너지가 있었다. 그래서 일본 러닝 갤을 만들었다. 일본에서 뛰는 나의 일기장으로 쓰려고.


한 명, 두 명 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으면서도 씁쓸했다.

이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 그러니 그냥 가볍고 캐주얼하면 좋겠는데, 어느새 또 그 특유의 관계 강요가 시작됐다. 훈지, 댓글 의무, 특정한 말투. 그 문화가 조용히 압박해왔다.


런구오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랜선 친구처럼 같이 뛰는 게 좋았다. 잠깐은, 진짜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은 익명의 바다였다. 나를 그냥 고닉 취급하며 함부로 구는 사람들.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더 개방할까, 아니면 그냥 나가떨어질까.

결론은 간단했다. 그 사람들에게 마음 여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러닝 크루에도 몇 번 나갔다. 사진도 찍혔다. 하지만 질려버렸다. 자존감이 낮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군중 속에서 오히려 더 외로웠다.


온라인에서, 크루에서, 오래된 친구들에게서 나는 계속 같은 결론을 만났다.


정을 붙이는 곳을 잘못 고르면, 그 정이 독이 된다.

고독을 적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무 데서나 소속감을 구걸한다. 고독을 친구로 두는 사람은 진짜 연결이 올 때 알아볼 수 있다.


나는 후자가 되기로 했다.


오래된 생각이야 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이젠 오래된 생각이 확신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