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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 전체를 관통하는 일본의 매력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마음을 끝없이 편안히 놓을 수 있는, 깊은 편안한 포근함.

조곤조곤 옛 추억을 나누며 끝없는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스윗 노스텔지어 토-크.


이 둘은 한국엔 전혀 없는 것이다.


첫째, 군대와 산업화 때문에, 편안함이 한국의 국가적인 문화가 아니다. 그저 달려가는 문화가 한국 문화인데, '다이나믹 코리아'라고도 이름 붙였었지만, 이젠 발전도 끝났고 그런 코리아의 유효기간은 끝이 났다. 그런데도 아직 군대와 산업화 문화 잔재 때문에, 가만히 포근한 편안함에 안겨드는 그런 '평안'의 감성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 이를 누리면 '빠져있네'라거나 '아싸 새끼'라고 비아냥 거리고 탄압의 군홧발을 조인트에 시전한다.


꿈깸마. 일햄마. 정신차렴마. 아무튼 무조건 니가 '노오력'을 더 햄마. 라고.


이제 요즘 시대에는, 이런 식의 군홧발 드라이브를 더 이상 걸 수 없다는걸 알지만, 계속해서 이런 식의 킥이 들어온다. 다른 정답을 모르니깐. 그저 습관대로 쪼인트 까기 고문을 끝없이 되물림 시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한국 문화 자체 속에, 피상적이지 않은, 깊이 있는 감성의 문학적 노스탤지어와 추억의 문화가 부재하다.


좌파와 전라도 인간들은, 더러운 친일파의 나라인 대한민국이 우선 없어져야만 하기에, 당연히 추억하고 싶은 것들이 없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과거란 무엇인가? 첫째도 더러운 친일, 둘째도 더러운 친일, 셋째도 오로지 더러운 친일 행위 뿐이다.


속히 사라져야할 저주스런 친일파의 나라에 무슨 추억? 같은게 있을리가 만무. 그래서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오직 북조선만이 우리 한민족의 순수함과 전통성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며 감정을 투영하고 숭배하고 있다.



우파 인간들은, 첫째 항에 언급한 군대 문화와 산업화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무슨 깊은 회상에 잠긴다는 것 따위는


그냥 마음 약한 새끼가 게으름 피운다 치부하고, '추억팔이'니, '감성팔이'니 온갖 비하하는 용어를 붙여 욕을 하고 비웃고 저주한다.


물론, 바로 위에 언급했듯, 좌파 인간들이 온갖 감성팔이로 일단 슬픔과 불만을 뽑아낸 뒤, 그 해결책으로 아! 너무 순수한 우리 북조선! 이런 ㄱㅈㄹ ㅈㄴ해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경계를 늦출 수 없어서 그리움과 회상의 감성을 개무시 하려는 점도 분명히 있다.


또한, 그 이전에 한국은 전세계 1위 사기죄의 나라이기 때문에, 항상 불신을 품고 있는 것도 일견 당연한 방어 기제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행복한 추억을 그리움으로 회상하는 노스탤지어는 실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추억이 곧, '행복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이 애지중지 하는 문학적 전통이 곧 그들의 전부인 것처럼,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인간의 행복'이란 추억과 기억 속에 곱게 소중하게 감추어진 보석과도 같은 것이다.


사람이 내면에 지닌 것이라곤 두뇌에 저장된 기억들이 전부인데, 이런저런 사용법과 같은 이공과학적, 매뉴얼적, 현용적, 비즈니스적 기억 내용의 용량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인간적인 재미가 있었거나 개인적이고 인상적인 경험이나 주관적 체험적 기억이 남는다. 바로 이 후자의 기억속에서 행복의 보석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 행복한 기억이 단기적 과거의 것일 수도 있고, 조금 오랜 기억일수도, 또한 너무나 옛날의 일일 수도 있다. 한국인들처럼 이런 기억들의 회상이나 나눔이 일절 금지되어 있으면, 한국인은 당연히 돈을 얼마를 벌든, 행복을 찾을 수 없는 불행한 인간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움과 추억이 이렇게나 소중한 것인데, 추억을 짓밟아 놓고선, '왜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는거지?' 하고 궁금해 하고 앉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러나 행복은 추억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유럽의 선진국들, 그리고 일본은 그렇게나 자신들의 전통과 과거와 옛 정취를 소중하게 보전하고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인이 일본에 가면, 그리움과 추억의 회상을 소중히 하는 포근한 편안함과 친절함을 만나게 된다.


일본 문학의 깊음이 또한 진중하듯, 일본인들에겐, 행복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으로써 천천히 대화를 나눠가며, 이윽고 행복을 발견해내는, 그러한 매우 깊고 따뜻하고 포근하며 진솔하게 대화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면 더욱 놀라게 된다.


그렇게, 일본은 한국인들에게 행복을 되찾아 준 것이다.


추억과 노스탤지어를 잃어버린 한국인, 그것을 이야기할 채널도 방법도 잊어버린 한국인에게. 있다고 해도 싸구려로 곧잘 짓밟혀 버리는.


그렇게 해서 내면의 행복이 완전히 사라진 한국인에게.


일본은 변치 않는 편안한 포근함으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섬세한 문학적 언어로. 추억을 가만히 나누며, 그리움을 나누며, 이야기해주고, 다독여주고, 껴안아 주면서 이윽고 그리움과 추억의 노스탤지어 속에 숨겨져 있던 행복과 인간성의 보물을 되찾아주었다.


그렇게 일본은 한국인에게 행복의 비결을 가르쳐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