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할아버지 댁에서 살 때 일입니다.


그 당시 저희 동네에는 작은 할아버지 댁이 있어 자주 놀러가곤 했었는데,


작은 할아버지께서는 집 앞에 n자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어


그곳에 포도를 가꾸어 매번 여름이면 그것을 한 송이, 두 송이씩 따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마음에 그 달콤한 포도가 좋아 우리도 작은할아버지네 댁처럼


집 앞에 n자 조형물을 만들어 포도를 심어보자고 할아버지를 졸라댔고


할아버지께선 알았다고 말씀을 하시더니 세상에, n자 조형물을 대나무를 이용해 만드신것까진 좋았는데


그곳에 포도가 아닌 수세미를 심으시더군요. 물론 건강면에서나 수세미 물을 채취하고


과육 속 수세미를 얻는것도 나쁘진 않았겠지만 어린아이 시각에선 달고 맛있는 포도가 아닌 수세미에 눈이 갈 리 없었지요.





그런 제 마음도 모르고 수세미는 야속하게 조형물을 타고 쑥쑥 자라서,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박 줄기가 늘어진 집처럼 넝쿨이 멋있게 늘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당시 어린 마음에


그런 외견에도 불구하고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작물이 아니란 생각에 툴툴대고 있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께선 수세미에 붙어 잔뜩 늘어가는 달팽이가 고민이라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저보고 매일 그 달팽이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제가 원하던 작물을 심은것도 아닌지라 저는


어떻게든 꾀를 부리려고 생각을 했고, 그러던 와중에 수세미를 심은 화분 끄트머리에 소금을 살살 뿌려놓게 되었습니다.





효과는 좋았습니다. 소금이라면 질색하는 달팽이들이 그 덕에 화분을 타고 기어올라올 일이 없었기에 이전에 올라온 달팽이들만


모조리 처리하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소금을 하루에 조금씩 뿌려놓는 습관을 가지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오후, 제가 자리를 비운새에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지요. 그 덕에 화분 끝에 놓인 소금들은 빗물을 타고 흘러


수세미가 심어진 토양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결국 염분기때문에 수세미는 오래가지 못하고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제아무리 물을 많이 주어 희석시키려고 해도 한번 흙에 소금이 스며들면 살려낼 방도가 없더군요.





물론 수십년 농사를 지어오신 할아버지가 제가 했던 행동을 모르실 리는 없었겠지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절 딱히 추궁하시거나


뭐라하시지 않고 노랗게 말라죽은 수세미를 파내고 흙을 갈아내시고나서 새 모종을 심으셨습니다.


그러나 어린시절의 저는 철없게 그 때도 포도를 심지 않는 할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나이를 한두 살 먹으면서 포도란 작물이 결코 하루이틀 심어서 과실을 볼 수 있는 식물이 아닌 것을 알게 되고,


추운 겨울날 콜록이는 제게 할아버지께서 건넸던 물이 수세미 물을 섞은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시에 제가 할아버지를 속이고 꾀를 부렸던 일들, 포도를 심지 않는다고 툴툴댔던 일들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근 3년이 되는 올해, 어린 나이에 철없었다는 한 마디로 변명하기에는


소금젖은 땅에 심어진 수세미마냥 가슴이 아릿아릿하게 아프네요.





2016년, 함부로 부르기엔 다소 민망한 병신년 새해.


여러분들은 저같은 실수 하지 않고, 후회없는 한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올해에는 베란다의 짐들을 치우고 수세미를 한 번 키워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