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는 자주 저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곤 하셨습니다.


한때는 텐트며 각종 캠핑 용품까지 구매하실 정도였던 부모님이셨지만

세월이 흐르며 나이가 드시고 저도 졸업 후 점점 바빠지면서 어느 순간 가족여행은 먼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한달 쯤 전 아직 무더울 무렵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과 강원도 시골로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차마 못 하셨던 이런 저런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산책을 하던 와중에

근처의 밭에서 문득, 햇볕을 받아서 퍼렇게 되버린 탓인지 혼자 버려져 있는 감자 한 알을 발견했습니다.


혼자 남겨진 그 감자 한알이 너무 외로워 보였던 탓일까요,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저는 그 감자를 주워서 서울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식물 키우는 것이라고는 초등학생 시절 강낭콩 관찰하기 따위의 것들이 전부였던 제 인생에

난데없이 감자라는게 불쑥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봤자 이가 나간 컵에 물을 담아서 그 위에 감자를 얹어둔 것일 뿐이었지만요.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시시한 것이었지만 제 마음은 마치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두근거렸습니다.


그날부터 매일 아침에 집을 나서며 물을 갈아주고 밤늦게 집에 오자마자 감자의 상태를 살피는 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를 1주일, 싹이 올라온 걸 봤을 때는 정말 뛸듯이 기뻤습니다.

이 숨막히는 빌딩 숲 사이의 생기라곤 없는 잿빛 방에서 초록빛 싹을 틔워준 녀석이 정말 기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별것도 아닌 감자에 정을 주게 되었습니다.

다 큰 수염난 남자가 아침마다 컵에 담긴 감자를 보며 헤헤 거리는 모습이 누군가는 기분나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 시퍼런 감자에 점점 더 정을 쏟게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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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싹을 틔운걸 보고 너무 안심했던 것일까요,

그 후에 지속된 철야로 늦잠을 자버리면서 물을 갈아주지 못하고 허겁지겁 집을 나선 적이 3일 정도 있었습니다.


하루이틀 정도는 냅둬도 괜찮겠지 했던 것이지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후회가 됩니다. 그때 조금만 일찍 일어났었더라면, 하는 후회가요.


그렇게 4일째 되는 날 감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차 싶어 물을 갈아주며 검색을 해 보니, 이미 감자 내부가 썩기 시작했을 거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애써 그 글을 무시했습니다. 다 읽기도 전에 창을 닫아 버렸습니다.

도시의 숨이 턱턱 막히는 아파트 숲에서 싹을 틔울 정도로 굳센 아이가 3일만에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물을 갈아 줌에도 점점 더 냄새는 심해져만 갔습니다.

햇볕을 못 봐서 그런가 싶어 베란다에 내놓아 보기도 했습니다만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기를 다시 1주일

냄새가 악취로 변하고 표면에 흰색 곰팡이 같은게 피기 시작한 것을 보고 나서야 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 녀석을 죽였다는 너무나도 싫은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게 도심 사이의 초록빛 새싹은 사라지고 상해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하나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감자가 뭐라고 그새 정이 들어버린 저는 차마 음식물 쓰레기라고 적힌 통 안에 녀석을 두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아파트 화단에 그 감자를 버리듯이 던져놓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는 좀 더 흙속에 묻어 주고 싶었습니다.

마지막만큼은 제대로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내 잘못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쌓여서

흙에 심어 둔다면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무리한 바램이 무의식적으로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귀가 시간은 항상 밤 11시가 넘을 무렵이었고 예외는 없었습니다.


오밤중에 시커먼 아저씨가 화단을 파고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한 것이겠지요.

아파트 경비원 분들이 너무나도 열심히 일하신 덕에 순찰을 피해서 땅을 파고 앉아있을 틈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저는 뻔뻔하게도

제멋대로 데려와 정을 붙여 놓고는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 하나의 생명체에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집을 나설 때마다 잡초가 무성한 화단에서, 점점 더 쌀쌀해지는 날씨와 함께,

그 감자가 외롭게 점점 더 썩어가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강제로 보게 되겠지요.


저에게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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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키우던 감자가 죽어서 너무나도 침울하다, 라고 말하면 바보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깟 감자 따위가 뭐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혹자는 사람의 제일 뛰어난 능력이 다름 아닌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으로 보는 능력'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감자 하나 때문에 울적해져서는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장문의 글을 적는 제 자신이 뭔가 한심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차가운 가을 바람 때문인지 더 쓸쓸한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