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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팔순을 맞으시는 할머님의 유일한 취미가 바로 식물을 돌보시는 것인데

가족들이 의례상 받아오거나 주변 사람들이 못 키우겠다며 맡기신 다 죽어가는 동양란이나 호접란을

언제 그랬냐는 듯 푸릇푸릇하게 살려내는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심에도, 볕이 좋은 날이면 집 구석에 있는 커다란 산세베리아까지 어찌저찌 끌어다 베란다에 내놓으시고는

제가 할테니 무리하지 마시라 해도 원래 다 고생에서 나오는 보람이라며 할 말이 없게 만들기도 하셨지요.

그러다 몇 년 전 뇌경색으로 한 번 쓰러지신 이후 제 생전 처음으로 할머님께서 화분에 물 주는 날을 까먹으신 걸 보았습니다.

없던 일도 만들어서 하시던 부지런함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하여, 다루기 어려운 난들이 제일 먼저 말라갔고

찾아뵐 때마다 화분이 하나둘씩 줄어들어 결국 수 십개에 달하던 화분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3~4개 정도네요.

그마저도 이파리들이 손길을 하나도 받지 못한 채 사방으로 쳐져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이 친구들과도 인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지요.

요즘 들어 입버릇처럼 "옛날엔 죽어가던 화초도 살려내고 그랬는데 나도 참 다 됐나 보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들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자연이 그러하듯, 새 생명이 돋아나고 노쇠한 가지와 이파리는 부러지고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참 야속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적 제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기르시던 소철(당시 약 20살)이 화훼집의 분갈이 실수로 죽게 되어, 무척 슬퍼하셨던 걸 지켜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땐 할머님께 식물이 어떤 존재인지도 몰랐고, 어린 마음에 그냥 나무 하나 새로 들여오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넘어갔었지만

할머님과 함께 화분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란 지금에 와서야 그 상실의 무게가 퍽 와닿습니다.

한두달에 한 번씩 찾아뵐 때마다 이제는 화분이 아닌 작은 꽃다발을 사가곤 합니다만... 봄여름이니 시간을 내어 꽃나들이라도 모셔가보려 합니다.

내년, 내후년에도 할머님과 함께 꽃을 보며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집에 있던 소철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아 제 기억상 비슷한 크기의 사진을 주워왔습니다^^;

네잎클로버 일화가 문득 생각나 들러보았다가 두서없는 글이 길어졌네요.

갤러리 분들과 식물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