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생전에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었는데

흙을 떠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살아온게 벌써 30년 가까이 되었네요.

그래서 아주 작은 욕심을 품고 작년부터 베란다에 작은 화단을 만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삭막한 벽을 담쟁이로 뒤덮고 싶은 마음 뿐이었죠.

몇번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얇은 토사층이 물을 너무 빨리 증발시켜버리는 것 때문인가 싶어서

잔디를 같이 심어 주었더니 드디어 잘 자라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파란색이 보고 싶어 물망초도 도전에 봤는데요

애도 아니고 시간마다 가서 확인하면서 몇 밤 자고 일어나니 새 순이 돋아 있는 모습에 얼마나 귀엽고도 대견하던지ㅎㅎ 



얼추 잎이 커졌다 싶으면 한 아이씩 차례로 독립(!)을 시켰습니다.


잔디는 깎아줘야 겠죠?

그런데 옆에 모르는 애가 함께 자랐습니다. 토끼풀인가요?



올해는 특히 모르는 아이들이 날아와서 자기도 여기서 살겠다고 하는데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발단은 어느 촉촉한 날, 생각보다 서양 담쟁이(사진에 있는 건 국산)들이 벽에 붙지를 못해서 상심하고 있는데

저쪽 한편에서 남들이 잡초라 부르는 몇몇이 모여서 쑥쑥 자라고 있는거에요.

어려서부터 정원에서 잡초들은 주변 영양소를 어쩌고해서 뽑아줘야 한다는 얘기에 선입견이 생겨버려서,

구석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그 소위 잡초들을 뽑아 바닥에 던져버렸죠.


그 촉촉한 날에 바닥에 내팽겨쳐진 그 애들을 한 십분정도는 그냥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곳 어느 분의 키우기 시작한 이상 잡초가 아니란 말씀도 기억이 나고

내가 농작물을 키우는 것도 아닌데

주변을 폭력적으로 황폐화 시키거나 고약한 냄새나 자태로 불쾌감을 주는 것도 아닌

그냥 살겠다고 뿌리내리고 잎 펼치는 게 무슨 죄라고 멀쩡히 살아있는 걸 뽑아서 불태워야 하나 싶더라구요.

제 개인적인 심정과 얽혀서 얘기하자면 복잡하고 길지만

여튼 뿌리채 뽑혀 누워있는 애들을 그대로 흙 바닥으로 옮겨 주었어요.

그 대신 제대로 심어준게 아니라 눕힌 채로 그대로 흙위에 놓아주고

"그래도 살고 싶다면 스스로 일어나서 살아보렴"이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죠.



한번 쓰러지고 그대로 주저앉은 저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까마중인지도 모르겠고 주변 잔디들에게 얼마나 폐를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식구 대우는 해주고 있습니다.


화단의 모양을 어떻게 꾸미고 싶다거나 하는 계획같은 건 없습니다.

하지만 까마중이라 주장하는 저 아이들 포함해서

여기저기서 자라나는 동네 꼬마들을 그냥 두어도 괜찮은지가 고민입니다.


순진한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서로 죽이지만 말고 알아서들 잘 살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식물의 특성상 (특히 토끼풀로 의심되는 애들) 같이 두면 약한 아이들만 피해를 보게 될테니까요.


이상 식물이든 디씨든 아는 거 1도 없이 어리버리하게

일단 제 고민만 늘어놓았습니다.(뻔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