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던 석류 화분이 5개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키우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먹을 때엔 까면서 나온 껍질은 다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씨까지 또 버리러 내려가긴 귀찮아서 남는 흙에 버려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반년쯤 지났을까.. 

스위트 바질처럼 동글네모같이 생긴 싹들이 돋아난 겁니다.

처음엔 뭔가 싶어서 좀 두고보니 더 쑥쑥 자라나기 시작,

곧 싹이 6개가 되고 7개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바질은 아닌 것 같고.. 열심히 생각해보다 설마? 하는 생각에 찾아보았습니다.


석류구나.


그때부터였습니다.

꼭 살려서 크게 키워보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섣부른 분갈이로 7개가 넘던 싹 중에서 살아남은 건 5개...

분갈이 흙 배합부터 해충 구제, 가지치기까지 찾아봐가며 열심히 돌봐주었습니다.

뿌리파리 방제용 총진싹에 양분용 지렁이 흙.. 

화분은 페트병으로 만들었는데, 통풍이 안될까 구멍도 거진 20개씩 뚫어놓았습니다.

한여름에 퇴근하고 분갈이 흙 배합 맞춰보고, 커터칼로 페트병에 구멍을 뚫고 있으면 지치긴 해도 얼마나 뿌듯하던지!

석류 열매처럼 불타오르듯 붉던 줄기의 색깔..

바람 불면 살랑이며 흔들리던 연둣빛 잎까지 얼마나 이쁘던지요.


직장에 치이고 스스로에게 치이며 피해망상까지 극심해지고 있던 상황에서

석류는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페트병 화분 특성상 무럭무럭 뻗아나가는 뿌리,

쑥쑥 돋아나는 새 잎과 길어지는 줄기를 보면서 긴장뿐인 하루에 잠깐의 위로를 얻고는 했습니다.

매일 다음 날 출근으로 방 안에서 벌벌 떨고있던 제게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제가 주말 출근을 나갔던 사이,

부모님이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고 집안 물건들 자랑을 하다가 제 석류를 하나 주었다고 하더라구요.

제 세계를 빼앗긴 기분이었습니다.

갑자기 무지막지한 거인이 쳐들어와 얼굴 반쪽을 뜯어간 기분이었습니다.

신적인 존재가 내려와 네 인생은 쓸모없는 것이다- 라며 유년기의 기억을 떼어내간 기분이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프고 섭섭하고 대체 자랑이 뭐라고 

그깟 쓸데없는 것 때문에 내 소중한 석류를 선심 쓰듯 떼어줄 수 있는건지

애초에 부모님이면 자식의 물건들 정도는 그냥 가져가라고 할 수 있는건지...

나이가 몇살인데, 그깟 석류 하나에 그러냐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깟 석류가 아닌데...

집이고 대출이고 자산이고 그깟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전 제 석류에 시간과 정성과 희망을 쏟았습니다.

석류는 빨갛게 상기된 줄기를, 연둣빛으로 빛나던 잎을 흔들며 제 삶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석류를, 이런 것도 있다- 라며 대충 뭉개버릴 자산목록의 하나로 남에게 준다는 게 전 너무나도 슬픕니다.

나잇값이란게 대체 뭔지, 또 동심이란게 대체 뭔지..

우울한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