墓地頌                                                               - 고은 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나 그대 자손은 차례차례로 오리라. 지난밤 모든 벌레울음 뒤에 하나만 남고 얼마나 밤을 어둡게 하였던가. 가을 아침, 財寶인 이슬을 말리며 그대들은 잔다. 햇빛이 더 멀리서 내려와 잔디 끝은 희게 바래고 올 이른 봄의 할미꽃 자리 가까이 며칠만의 산국화가 모여 피어 있구나. 그대들이 지켰던 것은 비슷비슷하게 사라지고 몇 군데의 墓碑는 놀라면서 산다. 그대들이 살았던 이 세상에는 그대들의 뼈가 가마귀 깃처럼 운다 하더라도 이 가을 진정한 슬픈 일은 아니리라. 오직 살아 있는 남자들에게만, 아니 참다운 남자에게만 가을은 집 없는 산길을 헤매이게 한다. 절도 없어야 한다. 그대들은 이 세상을 마치고 작은 祭日 하나를 남겼을 뿐 옛날은 이 세상에 없고 그대들이 다만 옛날을 이루고 있다. 어쩌다, 잘못인지 노랑나비가 낮게 날아가며 이 가을 한 무덤 위에서 자꾸 저 하늘에도 무덤이 있다고 일러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데 그대들은 이 무덤에 있을 뿐 그대 자손들은 곧 오리라. 고은 시전집 1, 民音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