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4월, 심심풀이로 화분에 심었던 옥수수 한 알이 생명의 싹을 틔웠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녀석의 떡잎에 화분과 집안에서 감당할 녀석이 아님을 고작 5일만에 깨닫게 된 나는 동네 텃밭에 어르신들의 양해를 구하고 옮겨심었다. 그리고 5월, 6월..., 잠시 성장이 더디나 싶던 녀석은 내가 준 비료와 장마철 쏟아지는 빗물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장마철이 지나고 바쁜 일이 어느정도 마무리된 오늘,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텃밭에 들러 옥수수를 보았다. 어느샌가 땅밖으로 조금 보이는 붉은 뿌리, 내 가슴께까지 오는 키..., 앙증맞은 그놈은 자기도 작물이기 이전에 하나의 생명이자 식물이라고 열렬히 주장하듯 정수리에 꽃을 피워놓고 있었다.


나는 감격했다. 저놈이 자그마한 옥수수 씨앗 하나일때가 엊그제같은데, 언제 이렇게 자라서 꽃도 피우고 했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비가 온다는 핑계를 대가며 텃밭에 심어둔 옥수수는 제대로 살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는데 제 힘으로 자라나서 꽃까지 피운 걸 보니 이 맛에 사람들이 농사 짓는구나 싶었다.



그래....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옥수수 꽃에 알알이 있는 시커먼 점들이 꽃의 일부일 줄 알았다. 시벌.



감격에 겨워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간 순간, 나는 그것을...아니, 그것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알알이 달린 꽃 사이사이에 진딧물들이 드글거리고 있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녹색과 검은색 점들의 향연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은 나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이 빌어먹을 진딧물놈들이 내 옥수수에 먹을 게 뭐 있다고 들러붙어서 히히덕대고 있는가. 있지도 않던 환 공포증까지 생길 것 같은 끔찍한 모습이었다. 옥수수 꽃보다 진딧물들이 더 많이 있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시발 쓰면서도 소름끼치네 진짜 거지같은 진딧물 새끼들 멸종했으면 좋겠다 이새끼들은 삶에 도움이라고는 요만큼도 되지 않으면서 드글드글하게 몰려다니면서 식물 줄기에 달라붙어 혐오감만 불러일으킨다.


나는 당황했다. 내 화초 인생은 반년도 되지 않았고, 나는 해충을 겪어본 적 없었다. 그나마 흐릿한 기억 속 거미줄 쳐진 채 다 시들어가는, 유치원에서 받은 노란 꽃 화분이 있어 내가 그때 응애에게 당했으나, 하고 최근에 깨달았을 뿐이다. 그랬다. 나는 장비도 약도 없는 맨몸이었다.


나는 소름이 끼치는 두 팔을 문지르며, 우선 버려진 컵을 주워 물을 들이부어보았다. 하지만  옥수수 꽃 사이사이에 내집처럼 편안한 주거공간을 마련한 무단점거 씨발 진딧물 새끼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십...


두 번째. 살살 흔들어보았다. 될 리가 없었다. 나는 울고 싶었다. 풀이 우거진 텃밭에서 무슨 벌레가 튀어나와 내게 붙어올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고, 발치에서는 모기새끼가 날아다니며 내 종아리를 뜯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진딧물들을 보며 생각했다. 신이시여, 이 빌어먹을 버러지들을 어찌해야 좋습니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죽이면 되는 것이었다. 비록 내가 벌레를 꺼리는 편이고 저것들이 죽이기 힘든 위치에 있다고는 하나, 나는 해야만 했다. 내 옥수수가 저놈들의 한끼 식사로 기력을 쪽쪽 빨리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근처의 나뭇가지를 주워, 천천히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옥수수 꽃과 녀석들이 쓸려나가며 으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꽃이 상하지 않게 하며 수백 마리의 진딧물을 몰살시키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일이라, 한낱 인간인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울고 싶었다. 진딧물들만 멸종했어도 내가 이렇게나 비참해지지 않았을텐데 왜 이것들은 모기, 파리, 바퀴벌레와 더붙어 멸종되지 않고 쓸데없이 끈질기게 자손을 이어나가며 나를 괴롭게 만드냔 말이다. 해충만 없었어도 농약을 사용할 필요가 없엇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은 지금보다 조금 더 아름다웠을텐데.


결국 나는 미쳐버렸다. 저것들은 눈에서 치워야겠고, 나뭇가지로는 섬세함이 부족하고. 남은 것은 내 팔 아래 달린 다섯 개의 손가락 뿐이었다. 저것들을 만지는 것은 끔찍하게 싫었지만, 나는 그 이상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수줍게 꽃피운 내 옥수수를 지켜야 했다. 저놈들을 필히 멸하며 내 옥수수를 건드리는 자들의 말로를 알려야 했다.


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옥수수의 꽃술을 흝었다. 진딧물들이 우수수 쏟아져나온다. 손가락을 문질러 한 마리도 빠짐없이 확인사살했다. 내 눈을 속여야 했다. 진딧물들이 살아서 내 손가락 위를 기어다니는 걸 본다면 내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40분에 걸쳐, 나는 내 손이 닿는 곳까지의 모든 진딧물들을 두 손으로 죽였다. 손가락에서 시발 그런 냄새가 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게 남은 것은 진딧물의 시체로 더러운 옥수수 꽃과 두 손, 그리고 모기에게 강제로 헌혈당한 종아리 뿐이었다. 순간 나는 뭘 위해 이런 학살을 하고 있엇던 것인가, 하고 현타가 왔다. 내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착각이 남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쓰면서 생각하는건데 이 소름끼치는 혐오감이 아직도 안 사라지고 있다 시발.



집에 돌아와서 손 씻고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 손꼽히게 혐오스러운 경험이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후유증을 남긴.



진딧물은 씨발이다. 진딧물만 멸종했어도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지 않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