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궁화의 유래 >>> 어제에 이어서...... 조선시대로 오면서 이화(李花)가 이씨 왕조의 문장이 되었으므로 무궁화가 조선을 대표하는 꽃으로 표현되지 못하였으나, 여러 문헌과 작품에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홍직의 《국어대사전》에, "무궁화는 구한국 시대부터 우리 나라 국화로 되었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를 옛부터 '근역' 또는 '무궁화 삼천리'라 한 것으로 보아 선인들도 무궁화를 몹시 사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라고 하여 조선 후기 개화기(開化期)를 거치면서 다시 무궁화를 우리 나라의 상징화(象徵花)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 20년을 살다 간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가 쓴《풍류한국》을 보면 프랑스, 영국, 중국등 세계의 모든 나라꽃이 그들의 황실이나 귀족의 상징이 전체 국민의 꽃으로 만들어 졌으나, 우리 무궁화만은 유일하게도 황실의 이화가 아닌 민중의 꽃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졌고, 무궁화는 평민의 꽃이며 민주 전통의 부분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 청 단심계 : 품명 파랑새 *** 우리 민족과 무궁화를 결부시켜서 이야기한 것은 여러곳에서 찾을 수 있고, 우리 스스로는 옛부터 우리나라를 '무궁화 삼천리'라 하면서 은연중 무궁화를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압박속에서 무궁화가 겨레의 얼로,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서 뚜렷이 부각되어 고통속의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