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에 이어 집니다. >>> 現代에 無窮花 현대 무궁화 그러나 근화 즉 무궁화를 지금과 가치 무궁화(무궁화)라고 쓰게 되기는 극히 짧은 근대의 일이라 함니다. 아마 지금부터 이십오륙뇬 전 조선에도 개화풍이 불게 되어 양 인의 출입이 빈번하게 되자 그 때의 선진이라고도 하든 윤치호(尹致昊)씨 등의 발의로 '우리 대한에도 국가(國歌)가 잇서야 된다고' 한편으로 양악대도 세우고 한편으로 국가도 창작(?)할때 태여난, 上帝(상제)가 우리 皇上(황상)도으사 海屋籌(해옥주)를 山(산)가치 싸흐소서 權(권)이  瀛(환영)에  치사 億千萬歲(억천만세)에 永遠無窮(영원무궁)하소서 라는 노래의 부속듸여 생겻다고 하는, '東海(동해)물과 白頭山(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이라는 애국가의 후렴인, '無窮花三千里(무궁화 삼천리) 華麗江山(화려강산)' 이라는 구절이 끼일 때에 비로소 근화 근화, 즉 무궁화를 '無窮花(무궁화)'라고 쓰기 시작한 듯하담니다. 國歌 짓고 國花 국가 짓고 국화 그리고 이와 전후하야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선생등이 맹렬히 민족운동, 즉 국수 운동을 이르킬 때에 조선을 무궁화에 비겨 청산가튼 웅변을 현하가치 토할 때마다 '우리 무궁화 동산은… '하고는 주먹이 깨여질 듯이 책상을 두르리고 연단이 부서질 듯 발을 굴럿슴니다. 아마 이러한 자극과 동긔로 근화가 무궁화로 변하야 그 때에 국민이 라고 하든 사람의 귀에 익어지고 입에 오른 듯함니다. 엇잿든 이 때를 전후하야 근화를 무궁화라고 뚜렷이 쓰기 시작하고 또한 이것으로써 조선의 국화(國花)를 만든 듯함니다              (무궁화)라는 저를 쓴 동긔는 순전히 보기 좃코 뜻깁게 하노라고 쓴것 이지요. 일시는 이화로 일시 이화 근화, 즉 무궁화가 위에 긔록한 바와 가치 그 때에 비로소 국화가 되엿다 하야 국민의 숭상을 바덧다는 것은 아니외다. 몬저 쓴 바와 가치 이천오백년 전 녯날부터 조선 나라에는 근화가 만허서 중국 사람의 눈에는, 君子之國 多木槿之華 군자지국 다목근지화 로 보혔고 또한 그보다 좀 느져서 《해동역사(海東繹史)》에 고려시대에 중국에 글을 보낼 때에 고려를 근화향(槿花鄕)이라고 자칭하였스니, 근화가 고래로 조선에 만헛든 것은 사실이 증명하는 바임니다. <<< 내일 다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