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기사에 대하여 김정상은 《무궁화보》에서 "무궁화가 조선의 국화로 적힌 것은 이 신문이 최초인 듯하고 개화 이전에는 무궁화가 책 속에 적혀 있을 뿐이고 민족의식 에 들지 못하였다." 고 결론지었다. 우호익의 〈무궁화고〉에는. "무궁화는 부지불식 간에 조선의 이상화가 되었으며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 문일평(文一平)의 호암전집(湖岩全集)중 《화하만필(花下慢筆)》에는, "근세 조선이 이 꽃으로서 국화를 삼는 것이 이러한 사적(史的)인 유구한 관계가 있었 던 때문이다." 라는 구절등 계속해서 발표된 글에 무궁화가 조선의 국화였음을 규정하 고 있다. 한서(翰西) 남궁 억의 무궁화에 대한 사랑은 남과 달랐다. 한일합방(韓日合邦) 이후인 1910년 11월부터는 배화학당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길러주기 위하 여 우리 나라 지도에 무궁화를 수놓게 하였다. 1919년 9월에는 홍천 보리울에 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무궁화 묘포장(苗圃場)을 만들어 무궁화를 심고 가꾸어, 나누어 주면서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 배달계 반 겹꽃 ; 품명은 적지 못 합니다. >>>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는 민족운동을 일으킬 때마다 조선을 무궁화에 비기는 웅변 을 토하여 무궁화를 민족의 상징으로 부각시겼는데, 이 시기가 독립협회의 창설(創設) 과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었을 때이므로, 1890년대 후반이었다. 한편, 대한제국(大韓帝國) 시대인 1900년에 외교관복이 칙령 제15호로 제정되었는데, 가슴 부분에 금수(金繡)한 근화(槿花)의 수로 등급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1902년 우리 나라 최초로 제정 공포의 역사가 있는 국가(國歌)〈대한제국 애국가〉가 같은 제목의 책으로 인쇄되어 졌는데, 이 책의 표지에 태극을 중앙에 그리고 주위에 네 송이의 무궁화를 그렸다. 이녀석을 자세히 아시는 분 계신가요? 짐작은 하는데 확정을 짓고 싶어서 덧 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