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단심계 : 품명 칠보 >>> *** 자료는 어제에 이어집니다. *** 조선 왕조의 잔재(殘滓)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화의 물결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던 이 시기에,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절인 외교관복과 국가(國歌)의 표지에 무궁화가 등장한 것은 법령 제정의 의미를 떠나서도 무궁화가 이미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단심계 : 품명 원화 >>> 1919년 3월 1일 세계 만방에 우리 민족의 독립이 선포됨에 따라서 수립된 상해 임시 정부에서는 3·1독립선언서 전문과 임시정부의 각료(閣僚)명단, 임시헌장, 선언문, 정강 (政綱)을 실은 독립선언서를 발행하였다. 이 대한독립선언서의 상단에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무궁화가 도안되어 자리잡고 있다. 무궁화가 우리 나라 국화임을 명실상부(名實相符)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하고 반복되는 애국가의 후렴구일 것이다. <<< 청단심계 : 품명 ps 80-1 >>> 애국가는 우리 나라의 국가(國歌)로 국기와 더불어 우리 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고래로 숭상되어 오던 무궁화는 개화기부터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재인식 되었고 대한제국시대에는 이미 국화로 언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일제의 침략기 에는 독립지사들에 의해 우리 국가의 표상(表象)으로 지켜졌다. 이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무궁화는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가의 위상(位相)을 정립하기 위하여 정부 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부터 국가를 상징하는 휘장으로 의장 화되는 등 우리 나라 국화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 홍단심계 : 품명 불꽃 >>>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무궁화의 특성은 우리 민족정신의 표상으로 부각 (浮刻)되었고, 오늘날에는 무궁화가 관념 속의 국화로만 인식되지 않고 우리 주위에 심고 가꾸어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꽃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농다리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충북 유형문화재 제28호    농다리는 언뜻 보아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물을 건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농다리라는 이름은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자연석을 축대 쌓듯이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의 너비가 그 위에 올려진 상판보다 넓으므로, 튀어나온 교각의 양끝이 지네 발처럼 보이는 것이다. 두께가 각각 1m가 넘는 교각들은 양끝을 유선형으로 오므려 물살의 저항을 덜 받게 하였으며 너비가 3m 쯤 된다. 그 위 한가운데에 길이 1.7m 안팎, 두께 0.2m쯤 되는 돌판을 한 개 또는 두 개씩 걸쳐서 상판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교각의 수가 28개였다는데, 지금은 양쪽으로 두 개씩이 줄어서 24개만 남아 있다. 다리 전체의 길이는 현재 93.6m에 이른다. *** 찾아주시는 벗님들께 죄송하오나, 왼손의 불편함이 예상외로 오랜 치료를 요구하므로, 님들의 방에는 댓글을 쉬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