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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갤은 처음 와봐요.
먼저 글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미리 사과드릴게요.



작년에 가족이 크게 아프고 그 간병을 하게 되어서 직장을 그만 두고 프리랜서가 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에 갇히게 됐어요.

제 손길이 없으면 식사도 대소변도 못 하는 가족을 돌보는게 너무 지쳐서, 아주 잠깐이라도 힐링을 하고 싶어서 꽃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뭘 키울까 고민하다가 리시안셔스 꽃이 너무 예쁘기에 무작정 씨앗을 샀죠.
...  그 애가 얼마나 천천히 크는 줄도 모르고요.ㅎㅎ

씨앗을 화분에 심고, 아침에 내놓았다가 해가 지고 아픈 가족에게 저녁을 주고 나면 걷어들였는데.

한달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나더라고요.
받아온 흙에 숨어있던 잡초만 피고.


그렇게 한달을 기다리니까 싹이 트고, 거기서 두달 쯤 지나니까 새끼손톱보다 작은 잎이 엄지손톱만큼 커지고.
다른 식물보다 한참 늦게 크는 리시안셔스 새싹에
얘는 왜 이렇게 안 클까.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물어볼 곳도 없어서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찾아 겨우겨우 키웠어요.

그 끝에 2월 초에 심었던 꽃이 7월말이 되어서야 피더라고요.
꽃이 너무 예뻐서 그간 왜 안 피냐고 혼자 애태웠던게 전부 잊혀질 정도로요.

그래서 친구들한테도 자랑하고.
괜히 블로그를 파서 글도 올려보고.
마지막으로 제가 간병하던 가족에게도 자랑했어요.

아프셔서 눈도 잘 못 뜨시던 분이 예쁘다고 좋아해주셔서 기뻤어요. ㅎㅎ
그냥 저만 힐링을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아픈 가족도 좋아해주니까 더 좋았어요.

그런데  씨앗에서 꽃이 피기까지 참 오래 걸렸는데.
져버리는 건 너무 순식간이더라고요.

겨우 키운 꽃이 아까워서 절화도 못 하고 뒀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져버려서 속상했죠.
이럴 거 그냥 다년생 식물을 키울걸 그랬다고 후회도 했어요.

그래서 리시안셔스가 져버렸을때 식태기가 와서 한동안 식물은 쳐다도 안봤어요.
또 그때쯤 제가 간병하던 가족의 병환이 심해지기도 했거든요.
이젠 아름다운 것, 추한 것은 물론이고 본인께서 낳고 키운 자식도 못 알아보셨거든요.

그렇게 식물 키우기는 완전히 잊고 살다가, 몇달 전에 가족이 돌아가셨어요.
장례식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함께 유품을 정리하고. 사망신고를 하고 통장을 해지하고.

한동안 정신없었던 주변정리가 끝나고.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서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는데.
갤러리에 작년에 찍은 리시안셔스 꽃이 있더라고요.

그 꽃 사진을 보니까 싹이 안터서 마음 졸였던 것, 기껏 새싹이 텄어도 자라는 속도가 느려서 마음고생했던 것.
그리고 겨우겨우 꽃이 피었을 때 기뻤던 것.
마지막으로 그 꽃을 보고 참 예쁘다고 한, 이미 세상에 없는 가족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저녁에 충동적으로 씨앗을 샀어요.
작년, 잘 크지 않아 부던히 애를 먹인 리시안셔스 씨앗을요.ㅎㅎ
그리고 사는 김에 욕심내서 스토크 씨앗도 샀어요.


그렇게 전 올해도.
잘 안 크는 리시안셔스와 그 옆에서 쑥쑥 자라는 스토크를 키우게 됐습니다. ㅎㅎ
작년에도 그랬지만 리시안셔스는 정말 안 자라네요. ㅎㅎ 파종하고 두달이 지났는데 이제야 세번째 새싹이 돋았어요.

하지만 작년처럼 조급하진 않네요.
식물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르듯, 리시안셔스도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또  키우느라 고생한 것에 비해 허무하다 싶을 만큼 꽃이 빨리 져버려도 이젠 괜찮을 것 같아요.
제게 예쁜 꽃을 피워줬다는 것으로 만족하려구요. ㅎㅎ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듯이. 아무리 아끼는 사람이나 식물도  제 욕심껏 오래 곁에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거 같더라고요.


오랜만에 볕이 좋아서 화분을 내놨다가.
아 리시안셔스 얘는 왜 이렇게 안 크지, 하고 작년과 똑같은 생각을 하던 중에 문득.
작년, 키우기 막막해서 눈팅만 하던 식물갤이 생각나서 들어왔다가 이렇게 긴 뚱글을 남겨요.


재미없고 길어서 죄송합니다.
대신 작년, 힘들게 키웠던 리시안셔스 사진을 놓고 갈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제가 되면 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