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날 만에 들어왔네요. 주기적으로 바쁠 때가 있어 마침 식갤에 많은 일이 있을 때 어울리지를 못했군요. 아직고 바쁘구요. 그러나 일과 중 아주 잠시 들러 사진들을 조금씩 감상했답니다. 두 군데의 지역 출사가 있었고 가을 합동 출사회가 공지 되었군요. 함께 모여 경험을 공유하고 정을 나누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생활의 행복한 장을 이룬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러니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시간의 경험적 결과물들이 되풀이 되는 동안 상대적 쓸쓸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러면서 또 새로운 만남의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이구요. 그런데 식갤에서의 만남은 꽃 사진 촬영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꽃 중에는 숲이나 초지, 슾지의 야생화들이 주 매개가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다른 종류의 만남과는 다른 측면이 있을 것 같군요. 만남, 함께 하는 즐거움, 정을 나누는 행복감 말고 꽃을 찾고 사진에 담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욕망이 더해지는 것이겠지요. 숲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말하곤 해요. 공원이 아닌 자연 숲에 무리지어 놀러오는 사람들이 숲에 가장 해롭고 자연 숲에 무리지어 사진촬영하러 오는 사람들이 그 다음 해롭다구요. 우리들은 흔히 경험의 일회성을 이야기 하지요. 그러나 숲의 입장에서는 일회성이 아니라 연속성이겠지요. 가을 합동 출사지로 예정된 노고단의 아픈 경험이 그 연속성의 슬픈 결과를 말해 줍니다. 모든 사진에서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자연의 뭍생명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되는 야생의 꽃 사진이나 식물풍경 사진에는 그 것을 담는 분에게 철학이 요구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철학인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고민이 필요하겠지만요. 여러날만에 들어와서 늘어놓은 넋두리였습니다. 아래에 넋두리의 본문이 있습니다. 즐거운 경험 나누신 분들에게 늦게나마 축하를 드리면서......

1.

2.

어떤 생태주의자의 잠언적 서사

   옛 스님들은 숲길을 걷거나 밭일을 할 때면    작은 들풀이나 작은 풀벌레들이 상하지 않도록    엉성한 성긴 신발을 신었답니다.    그러니 밭일 틈이나 걷는 도중에 한숨을 돌리려 할 때    마른 땅이나 작은 바위가 없으면 차마 엉덩이로 앉을 수 없어    잠시 쪼그리고 앉아서 쉬었다고 합니다.    만약 스님들이 조밀한 신발을 신고 걸었다고 한다면    만약 스님들이 엉덩이로 철퍼덕 앉았다고 한다면    그 아래 작은 생명들에게는 재앙이 되었을 것입니다.       옛 스님들의 모습과 그 속에 담긴 마음은    오늘 생태주의자들의 행동 방식이고 철학입니다.    숲길을 걸을 때, 숲 가나 숲 속의 꽃과 곤충을 찾을 때,    초원이나 습지를 걷고 그 속의 뭍 생명들을 살필 때    가능하다면 까치발로 걷고, 두 발의 부피 이상을 대지 않는 것은    생태주의자들의 자연스러운 의무입니다.    꽃과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생태주의자이어야 합니다.    옛 스님의 마음과 행동을 닮으려 할 때    숲을 침범에도 꽃과 숲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 스님들은 도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도를 높게 이루었다 하더라도 /FONT>    부처의 깨달음에 미치지 못했다고 스스로 겸허했기 때문입니다.    귀한 꽃과 귀한 여타의 자연 생명들은    그렇지 않은 다른 생명이나 꽃들보다 결코 귀하지 않습니다.    설혹 귀하다고 하더라도 그 주변의 다른 생명들이 어울려 주지 못하면    귀함도 사라질 뿐입니다.    사실 귀함은 슬픔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의 욕망과 침범이 만들어낸 슬픔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슬픔의 결과에 인간의 욕망은 또 귀함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생태주의자들은 이러한 순환의 고리를 부정하는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슬픈 존재들에 귀함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랑하는 자기 욕망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벗어나려 합니다.       숲을 침범하는 가장 강력한 슬픈 욕망은    숲을 통째로 갈아엎어 버리는 개발입니다.    숲을 침범하는 또 다른 슬픈 욕망은    이런저런 이유로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경우에 숲은 욕망의 도구이고 대상일 뿐입니다.    생태주의자들에게는 숲 속 뭍 생명들의 외침이 들려옵니다.    숲과 숲 속 생명들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지    어떤 한 존재의 욕망의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는 외침 말입니다.    숲은 너무나도 소박한 소망을 담아서 외침으로 말합니다.    '무리지어 오지 말아요', '요란하게 오지 말아요'    '우리 모두를 함부로 하지 말아요',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만 우리를 대해줘요'    이런 외침으로 말입니다.

3. 해오라비사초(꽃방동사니)

4.

5.

6.

7.

8. 해 진뒤의 안양 학의천에서.....광학 3X+ 2X 컨버젼렌즈+ 2X 디지탈줌

9.

10.

11. 오토레벨로 부리가 보이게 보정

12.

13. 가을 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