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상 본가를 떠나서 작고 건조하고 시끄러운 방에 살고 있습니다

본가는 벽 한면이 통창이었고 햇빛도 끝내주게 잘 들었어요


부모님은 난을 참 많이 키우셨는데

주말이 되면 난들을 화장실로 옮겨서 물을 주는게 루틴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난 외에도 크고 작은 식물들이 정말 많았네요


는 식물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신경써야 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제 방에 있던, 제 키보다 훨씬 큰 고무나무가 옆 방으로 옮겨질 때에도 전혀 서운하거나 슬프지 않았습니다


올 여름이 끝나갈 즈음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위치만 보고 선택한 방은 비싸고 좁았습니다

인테리어 컨셉인지 뭔지 시멘트가 그대로 노출된 벽 한 켠에서 잠을 청한 다음 날

윤기나는 잎을 가진 작은 콩고와 그보다 더 작은 벌레잡이 제비꽃을 들여오게 되었습니다


콩고의 줄기라고 생각했던 끝부분이 말리고

그 말린 부분이 나도 모르는 새 펴지고

말랑말랑한 새 잎이 나오는 것을 본 뒤로

식물에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카페에 있는 식물들의 이름을 대충 맞출 수 있게 되었고, 

몇 년을 지나다니던 길에 화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별다른 취미가 없었던 탓인지 지금 이 생활이 매우 즐겁습니다


하나둘씩 데려온 애들이 벌써 30개가 넘어갑니다

초보의 서툴고 거친 손길을 버텨내는 애들한테 종종 미안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식물이나 저나 낯선 곳에서의 첫 번째 겨울을 무사히 버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