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양심

밤새 빗소리에 잠을 설쳤습니다. 어제는 시내에서는 시위대 때문에 교통 혼잡이 말씀이 아니었는데다가 일산 방향은 지하철까지 물이 차서 고생이 심했다던데 오늘은 또 얼마나 쏟아질른지 ... 창문을 열고 내다 보아도 비안개가 자욱하여 언제나 불암산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보이질 않습니다. 우울한 마음으로 출근을 늦추고 집에 앉아  '아침편지'를 씁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리지만 않는다면 빗소리보다 더 좋은 음악은 없습니다. 가만히 들어 보세요. 빗소리는 어떤 오케스트라도 낼 수 없는 자연의 대합창 소리랍니다. 방안에 앉아서 듣는 빗소리는 너무 멀리서 들려 희미하지만 포근해서 좋고,  우산을 받고 걸으면서 듣는 빗소리는 옷 젖는 것이 좀 귀찮지만 방울방울 큰 빗방울 소리, 작은 빗방울 소리를 세세히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듣는 빗소리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빨리 달리면 빗소리가 커지고 천천히 달리면 빗소리가 작아지는 소리의 맛 말입니다.

비가 오는 날 음식점에 들어갈 때 입구에 우산을 아무렇게나 주욱 꽂아 놓고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나올 때는 각자 양심껏 자기의 우산을 찾아 들고 나옵니다. 혹시 비오는 날 그런 식당에서 은근히 우산이 바뀌기를 바란 적 없으세요? 요즘처럼 우산이 여러 개 있어 어느 우산을 들고 나왔는지 얼른 기억이 안 날 때는 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가 비슷한 색깔의 새 우산이 눈에 띄면 펴보지 않고 그냥 들고 나오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특히 들어 갈 때는 비가 왔는데, 식사를 끝내고 나올 때 비가 개이면 슬쩍하기 십상이지요.

나의 헌 우산을 두고 남의 새 우산을 슬쩍 들고 나오고 싶어 내 양심에게 말합니다.
"펴보나 마나 이건 확실히 내 우산일 거야. 펴보지 말자구."
그럴 때마다 우산양심이 내게 속삭입니다.
"네 것은 훨씬 더 헌 것이야. 얼른 펴보라구."

비오는 아침, 곱게 간직했던 천사들의 꽃 우산을 꺼내보면서, 내게 우산양심이 있는 것을 고마워 합니다.


↓ 천사들도 가끔 우산이 바뀌기를 원할까? - 어느 가을날 일산 호수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