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식물에 딱히 열광하지도 않고요. 키운 식물이 두 자릿수를 넘기지 못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합니다만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는 게 하나쯤 있는 그런 평범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장미에 대해 알고픈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봤을 뿐이에요. 난데없는 변덕처럼. 장미에 대해 그저 그냥 검색했을 뿐입니다. 장미는 항상 덩굴에서 자라날까... 장미는 어쩜 이리도 색깔이 다양할까... 흑장미와 백장미는 존재하는지, 뭐 그런 정보를 말입니다.


옛날이라서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네요. 왜 장미를 검색했을까. 왜 그런 시간에. 왜 그런 존재를 검색했을까. 태어나서 꽃 하나 제대로 기억해 본 적도 없는 인간이 장미를 검색할 이유가 뭘까. 지금에서는 도저히 생각나진 않습니다. 기억 속엔 오로지 휴대폰과 사진뿐. 수없이 많은 사진들을 넘겨봤던 장면밖에 없더군요.


그러한 장면 속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이 '키라리'라는 이름의 장미입니다.


처음에 봤을 땐 이것도 장미인가? 싶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장미는 보통 선명한 단색이지 않습니까. 가장 유명하기로는 붉은색. 선혈보다 채도가 약간 더 높은 그런 색이야말로 장미라고. 저희는 어느 순간부터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했지요.


다만, '키리라' 석 자. 그리고 사진 한 장. 제가 생각하던 장미와 모양새가 사뭇 다르더랍니다. 하얀 장미에 몇 방울 피를 튀겨 둔 모양새가 썩 괜찮게 보인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다음으로 본 붉은 장미에서 잠깐 생각이 멈췄습니다.


키라리는 흰색과 적색이 어우러진 꽃입니다. 흰색이 배경일지 적색이 배경일지 모릅니다. 그만큼 붉은색과 흰색이 잘게 쪼개졌거든요. 서로가 서로에게 스민 모습으로 액체를 흉내 내는 고체다웠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꽃에 피가 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그다음 장면에서 본 붉은 꽃 또한 새빨간 색상이지 않더랍니까. 붉고 새빨간 선혈보다도 더 선정적인 혈색 말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태까지 본 장미의 3할은 모두 붉은 색으로 기억했습니다. 장미도 아닌 주제에 난데없이 튀어나온 모란과 상사화조차도 붉었습니다.


이들 모두 피가 많이 묻기로 따지자면, 훨씬 많이 묻었을 테지요. 그런데도 저는 이들에게서 피라는 개념을 도저히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꽃잎에 맺힌 이슬마저 붉게 달아올라도, 검붉은 장미가 피딱지와 똑같은 색을 가졌던 순간에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흰색이 첨가된 키라리를 볼 때. 유일하게 피 묻은 꽃잎을 느꼈던 것입니다. 키라리만이 유일하게 흰색을 섞었지 않습니까. 피가 묻을 곳이 있어야만 피를 묻힐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유일하게. 키라리에서만 유일하게 피의 표상을 떠올릴 수 있었지요.


그때 그 무의식이 은연중에 생각하기를, 유일하다는 존재가 참으로 감명 깊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똑같은 꽃들. 그중에서 유일하게 흰색을 섞을 꽃만이 제 눈에 남은 상황. 묘하게 긴장되고, 또 신기한 고양감이 단전에 맺히더군요.


해서, 무의식중으로 한 번 더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만약 이 꽃이 제가 기억하는 단 하나의 꽃이 된다면 이게 얼마나 특별한 일 일지에 관하여 말입니다.


생각해 보시죠. 저는 꽃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일생 평생 관심 가져본 적 없는 종류이지요. 제가 아는 꽃의 이름은 누구나 들어본 꽃이요. 유명하고 아름다운 만큼 흔해져 버린 안타까운 것들밖에 없었습니다.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 하나 없이, 제 머리로 들어와 버린 불청객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사랑하는 꽃은 세상의 어떤 부분으로 따져 보아 유일무이한 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버린 것입니다.


키라리는 유일했기에 그 누구에게서도 가질 수 없었던 감상을 제게 이끌어 냈습니다. 그게 제가 키라리를 기억했던 이유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이유이고, 하나뿐인 꽃이 될 수 있었던 계기입니다.







키라리는 유명한 꽃이 아닙니다. 사진을 직접 봤으면서도 실존하는지조차 모르는 꽃입니다. 어쩌면 한 송이 장미를 사칭하는 사투리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글을 올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혹시 키라리를 키우시는 분이 계신다면, 사진 한 장을 내어주실 수 있으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