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한가지 음습한 취미가 있다.
그건 바로 누군가의 식물 성장을 훔쳐보는 것이다. 처음엔 소품이었던 식물이 대품까지 되었다고 자랑하는 글을 보면 머릿속에서 도파민이 싹 돌아버린다. 식물 관음증이다 이말이야.
이 갤러리에도 나의 식물 관음증 해소를 위해 희생당한 갤러들이 여럿 있다. 본인들은 모르겠지. 앞으로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 식물이 자라나는 걸 자랑해달라고 후후후...
아무튼 이렇게 식물갤에서 여러모로 신세?를 졌으니 나도 응당 보은을 해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의 레몬이들의 성장기를 자랑해보겠다.
오늘도 무척 사랑스러운 나의 레몬들. 오늘로 벌써 생후 100일차가 되었다.
요즘은 물 줄때 이녀석들 근처에서 미약한 레몬 향기까지 난다. 지들도 그새 제법 자랄만큼 자랐다고 티를 팍팍 내는데 내 눈에는 아직 부족하다. 더 향기뿜뿜이 필요하다.
빛도 먹고 물도 먹어라!! 너희를 성장시키란 말이다! 너희들은 최강의 레몬이 될 녀석들이다!
그나저나 레몬들이 개인 편차가 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여덟녀석들이 전부 다 다를 줄은 몰랐다. 심지어 한 씨앗에서 갈라져나온 쌍둥이들도 다르다. 이 무슨 대자연이여.
아무튼 100일차 기념으로 레몬들 사진을 뒤적뒤적 해보았다.
???: 아 응l애에요.
식집사 2개월차에 무슨 용기였는지 레몬청 담그고 나온 씨앗들을 발아시켜보기로 했다. 원래 오렌지레몬같은거 키워보고 싶었는데 시트러스에서 응애 딸려왔다는 글을 진짜 여럿 봤다. 때문에 무서워서 아예 응애 딸려올 걱정 없게끔 씨앗부터 키워버리자는 정신 나간 마인드로 발아를 도전하였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이놈들이 열매 맺기까지 7년이상 걸린다는거를 미리 알았으면 아마도 그냥 삽목묘를 하나 사버리지 않았을까...
아무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솜이 없어서 키친타올에 물뿌리고 제발 자라나라 만 골백번 외친것 같다. 저 중 절반만이라도 뿌리 내리면 다행이라 생각해서 열 개나 놓았는데...
보다시피 90%가 뿌리 내리기 성공. 이때가 11일차 정도.
저 중 너무도 튼튼하고 길쭉한 뿌리를 가진 놈은 나중에 아아주 크고 튼튼한 이파리를 가진 레몬으로 자라난다.
이때까지만 해도 뿌리 활착에 실패해서 결국 다 죽었다는 글들 때문에 겁 먹어서 저것들이 전부 제대로 된 싹을 틔울지도 의문이었음.
그로부터 8일 후.
쌍둥이 새싹 발견.
위 사진에서는 안보이는데 뿌리가 두 갈래인 씨앗이 있었다. 난 그게 다 하나의 씨앗인 줄 알았지. 알고 보니 레몬 같은 시트러스류는 쌍둥이 새싹 확률이 다른 씨앗에 비해 높다고 한다.
보통은 한쪽에 양분 몰아줘야 해서 없애준다고 하는데, 나는 막상 저렇게 살아보겠다고 새싹 틔운걸 보니까 맘 약해져서 없애지는 못하고 보험(?)용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로 부터 일주일 뒤.
다들 으쌰으쌰 자라주는 중. 하지만 이상하게 한 개의 씨앗에서 새싹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었다.
혹시 너무 빛이 강해서일까 싶어 그녀석만 좀 더 깊이 묻어주기도 해보고 또 싹이 안 나와서 얕게 묻어주기도 해봤는데 꺼낼때마다 뿌리는 제자리... 분갈이 시기까지 뭔가 달라진게 없으면 넌 죽소 마인드로 일단 놔둬보았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났다.
이젠 정말 분갈이 해야 할 시간. 그동안 기다려보았던 씨앗은 결국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세카이로 보내주었다.
생후 51일차. 드디어 분갈이 완료.
하나의 씨앗을 잃었으나 보험 새싹이 분갈이 도중 분리되는 바람에 플마 1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0의 손실이 발생하였다.
분갈이 직후 한 새싹의 이파리가 프릴마냥 칠렐레 팔렐레 변해버리긴 했지만 이 이후로도 저런 모양의 신엽들을 내보내는 걸 보면 문제 없어 보인다.
월동준비. 저때가 10월 중순이었다.
식물등 하나를 새로 구매하였다. 방 테마컬러에 맞게 파랑파랑한 테르티알을 구매했는데 초록이들 대거침범으로 다 와르르르르.
비하인드가 하나 있는데, 배송사에서 실수했는지 저걸 두 개를 보내주었다. 16일에 하나, 18일에 하나. 이런 식으로. 바로 판매자에게ㅈ문의 때리고 회수 엔딩.
그리고 10월 말, 친구에게 흰색 화분 중 제일 윤기나고 건강해보이는 녀석을 나눔해주었다.
어느덧 생후 86일차.
허전해진 자리에는 가습기가 들어왔다.
확산형 전구라지만 제일 가운데가 명당 자리이므로 레몬들은 (사각 화분을 제외하고) 이틀에 한 번씩 시계방향으로 로테이션을 돌리며 명당을 차지한다. 쌍둥이 레몬들아 미안해...
이 시기 레몬이들의 길이 편차가 너무 심해서 식물등은 매번 자리 주인이 바뀔 때마다 업다운업다운
그리고 오늘 100일차.
절반 정도 발아할 것으로 예상한 레몬이들은 한 놈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사히? 자라나고 있다. 최하단부 이파리가 갈변되는 녀석들도 있으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래서 일단은 크게 손대지 않고 있다.
원래는 두마리만 남기고 전부 나눔하려 했는데 날씨가 춥다보니 겨울 동안은 내가 데리고 있으려 한다. 과연 나눔을 할 수 있을지도 문제. 각자 개성이 강하다보니 구분하기가 쉬워서 이름까지 지어줬는데...
여튼 나의 100일생 레몬들의 으쌰으쌰 성장기를 읽어줘서 고맙고, 언젠가 레몬이 열릴 그날까지 열심히 가꿔보겠다.
+)
형제들 중 처음으로, 그리고 아직까지도 유일하게 가시를 뽐내고 있는 이녀석은...
어느덧 가시가 없는 이파리 사이에서 곁가지를 틔울 준비를 한다.
제일 큰 레몬도 따라서 곁가지를 틔울 준비를 한다. 니들 형제였니???
갑자기 만세레몬이 될 준비를 하던 이녀석은...
만만세 레몬으로 성장하였다.
외목대의 꿈은 점점 멀어져간다...
레몬은 아니지만 최근 좋은 화분으로 이사를 간 화마퀸의 잘린 줄기들은...
너무 추워진 베란다를 피해 실내로 피신한 동백 옆에서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레몬 씨앗부터 열매까지 겁나 오래 걸린다고 씨앗부터 안 키우는 사람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삽목묘 하나 키우되, 옆에 새싹도 하나 키워보는거 추천. 이놈 하루하루 자라나는거 보는게 꿀잼이다.
내년 봄이 기대된다. 더 더 더 자라다오. 아니, 무사히 자라다오...
넘 멋진데용 봄이 기대되네요! - dc App
글 넘 재밌댜 개추개추
글 재밌게 잘 쓴다 다음편이 기대 돼 죽지말고 쑥쑥 커다오
와 재밌다 넘 이쁘다 - dc App
8번 넘이쁜
좋아좋아 - dc App
당장 내년에 레몬수확각인데?????? - dc App
엄청나다 축백일 ^^ 식물 관음증이란 게 내가 이 글로 보니 뭔가 신나고 재미있네? ^^ 무록무럭 자라서 열매 맺는 그날까지 홧팅 - dc App
어머나 예뻐라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