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온 후로 이제까지 살아온 환경과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고등학교, 의과대학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며 의사가 된 후로 인턴, 레지던트를 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군대에 온 후로는 이전에 비해 시간이 매우 많고 여유롭다.


근무환경도 치열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업무량 자체가 많지 않다.


하루를 잘게 쪼개 빽빽하게 써온 지 십년이 넘었는데,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달라진 환경은 근무지다.


대부분의 군부대가 그렇듯이 나의 근무지도 산골 오지에 있다.


항상 건물로 빽빽한 나름의 도시에서 살다가 논밭이 있는 농촌에 오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출퇴근때마다 논밭, 비닐하우스, 산의 나무들... 이런 풍경을 보게 된다.


또 농사짓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읍내에서도 도시에서는 자주 보지 못했던 픽업트럭같은 큰 차들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환경이 바뀌니 취미도 달라졌다.


의대생때부터 나는 유튜브 요리영상을 보고 배워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예전에 제이미 올리버였나? 어떤 요리사 유튜브의 요리 영상을 봤는데 자기가 키운 허브를 그 자리에서 뜯어서 요리에 쓰는 걸 보고 그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상상만 해봤었지 실제로 도전해본 적은 없었다.


올해 여름에서 가을 쯤 읍내 다이소에서 바질 키우기 세트를 샀다.


파스타 만들 때 넣어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식집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바질은 무럭무럭 자랐다.


유튜브 보고 순지르기도 하고, 순지르기 한 바질을 물꽂이 하기도 했다.


파스타 해먹을 때 잎 몇장 따서 넣어먹으면 향이 폭발했다.


이제 다른 허브도 키우고 싶어졌다.



인터넷에서 로즈마리를 샀다.


화분째로 오길래 그대로 키워도 되는지 알고 거기에 물만 주며 키우려다 결국 말려 죽이고 말았다. ㅜㅜ


이후에 다시 도전해보려고 어느 지역 놀러갔을 때 마침 원예농장 같은 것이 있길래 다시 로즈마리를 사왔다.


이번에는 분갈이를 해주고 키웠다.


혹시 몰라서 저번처럼 죽일까 분갈이를 한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원래 분갈이를 해줘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로즈마리, 바질을 키우기 시작했고, 당근마켓에서 보이는 식물들로 하나하나 늘려갔다.


지금은 올리브나무, 고수, 율마, 페퍼민트, 제라늄, 아레카야자, 고무나무 까지 늘렸다.



일단 처음 시작했던 바질, 로즈마리는 식용으로 쓸 수 있고, 실제로 많이 떼서 먹었었다.


그리고 쓰다듬을 때 나는 향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올리브나무도 올리브를 수확해보려고 산 거였다. 알아보니 열매 안 맺는 품종으로 잘못 사온듯 하다.ㅜㅜ


또 제라늄, 페퍼민트도 향이 좋고 고수도 식용으로 마라탕 같은 곳에 넣어 먹으려고 산 것이다.


그런데 아레카야자, 고무나무는 그냥 관상용으로 샀다.


이제 향이나 식용이라는 실용성보다 그냥 식물이 예뻐서 키우는 경지에 달해버렸다.



또 화분의 흙을 만지면서 어렸을 때 흙놀이 하면서 놀았던 생각도 난다.


요즘은 놀이터에 흙이 많이 안 깔려있던데 요즘 애들은 흙놀이를 안하면서 크는건가?


그리고 산세베리아 라는 단어가 뭔가 익숙해서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엄마랑 같이 집에서 키웠던 화분 같기도 하다.


그런 추억에 동심이었던 그 때가 생각나며 마음이 애틋해진다.



나는 원래 식물 키워야겠다고 특별히 생각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위에서 말한 요리 영상에서 허브 뜯어먹는 것을 볼 때를 제외하면 어떤 식물에 감흥을 느낀적이 거의 없었다.


예전에 내 생일이었나? 친구가 다육이 화분을 선물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이런걸 왜 줬지? 라는 생각을 하며 대충 키우다가, 위에서 무거운게 떨어져서 그대로 사망해버렸던 적이 있다. ㅜㅜ


내 생각에 이렇게 식집사 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하나다.


군대에 오고나서 눈에 보이는게 논밭이고, 비닐하우스였기 때문이다.


날마다 보는 풍경이 그렇다 보니 나도 식물을 키우는 걸 하고 싶어졌던 것 같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크 라캉이 말한 철학으로 인간은 언어와 문화라는 타자의 세계로 진입되며, 타자의 욕망을 눈치채고 자신의 욕망을 형성해간다는 것이다.


내가 식물을 키우고 좋아하게 된 과정이 위 문장으로 설명되는 것 같다.


이 지역에서 매일 보이는 논밭과 비닐하우스도 어쩌면 '타자'의 풍경이 나에게 스며든 결과였을 것이다.


나는 내 취향이 아주 확고하고 남의 영향을 잘 안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자와 같이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는 동물인 것 같다.



군대에 오고 나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어 즐겁다.


앞으로도 또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욕망을 욕망하게 될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을 글로 많이 남겨봐야겠다. (픽업트럭도 갖고싶다. 사이버트럭 사고싶다. ㅜㅜ)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은 어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욕망을 갖게되었는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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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내가 식집사가 된 과정)군대에 온 후로 이제까지 살아온 환경과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고등학교, 의과대학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며...blog.naver.com



블로그에 남긴 글인데 식물 얘기라 식갤러님들도 봐주시면 좋을것 같아서 여기도 올립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사해서 넣으니까 65535자 제한 걸려서 글 올리는데 애먹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