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식물에 비해

야생 괴근식물에 대해서는 커뮤니티에 정보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글을 남깁니다.


괴근식물이 유행하면서 많은 야생 개체들이 소비되고 있지만,

이 식물들이 실제로 밀렵된 개체인지, 불법인지에 대해서는 소비자 입장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괴근식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고, 원산지구 코피아포아 선인장 역시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산지에서 허용된 쿼터 안에서 합법적으로 채집되고 수출되는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는 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분명한 건,
연간 허용되는 쿼터는 정해져 있고 그마저도 사이테스 II급 식물에 한정된다는 점입니다.

이 과정에서도 밀렵 후 사이테스 농장에서 일정시간 관리한다면 쿼터 외의 야생 II급 식물이 유통될 여지가 있다는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반면, 사이테스 I급 식물은 상업적 거래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농장에서 씨앗부터 길러진 개체에 한해서 ID(Captive-bred animal or artificially propagated plant) 코드로만 유통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서는 1급 야생 괴근식물을 지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키포디움 바로니, 윈저리, 암본젠세, 그리고 포퀴에리아 파시쿨라타와 퍼푸시 등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개체들이 버젓이 거래되는데도 제재가 없을까요.


우리나라 환경청은 해당 식물이 실제로 야생에서 밀렵된 개체인지, 아니면 농장에서 실생으로 길러진 개체인지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서류만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행정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관련 문의를 해봐도
“그게 밀렵된 개체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느냐”는 식으로 되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행정은 식물의 실질적인 출처보다는 서류의 형식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이 때문에 이 식물들을 판매하는 업자들 모두를 밀수업자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대부분은 정식 서류와 검역 절차를 거쳐 형식적으로는 문제없이 수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1급 야생 식물을 직접 수입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서류가 발급되어 수입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관련 업무를 맡게 된 입장이라면, 행정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 방식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이 과정에서 서류의 형식과 실질적인 출처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야생 괴근식물 소비를 좋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1급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급 개체들 역시 실제로는 밀렵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현지의 환경을 고려하면 절차가 철저히 지켜진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사이테스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멸종 위기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사이테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사이테스가 국제 거래를 직접적으로 제한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이를 법제화해 관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이테스에 포함되지 않았더라도 IUCN 국제자연보전연맹의 레드리스트에는
멸종위기로 분류된 괴근식물들이 많습니다.
즉, 사이테스 여부는 ‘거래 가능 여부’를 가르는 기준일 뿐,
종의 보전 상태를 전부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서구권 식물 커뮤니티에서는 야생에서 채집된 괴근식물을 키우거나 이를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행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편입니다.

실제로 Reddit과 같은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야생 괴근식물 사진을 올릴 경우
해당 개체의 출처부터 문제 삼는 반응이 많고, 밀렵(poached) 개체를 키우는 것 자체를 부끄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존재합니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라기보다는, 생태 보전과 책임 있는 소비에 대한 문화적 인식의 차이로 보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이미 모르고 구매하신 분들께는, 그 개체만큼은 끝까지 책임지고 잘 길러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만 야생 괴근식물 소비를 고민하고 계셨다면,
한 번쯤은 이 구조를 알고 선택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